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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상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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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라이트 재단'이
26일 발족한다. 뉴라이트(신보수) 운동의 이론을 체계화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할 조직으로 주목된다. 경제사학자 안병직(70)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사장을 맡는다. 23일 경기도 과천 자택에서 만난 안 교수는 역사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글로벌리즘(국제주의)의 시각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재해석해 내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계간지 '시대정신'을 뉴라이트 기관지로 확대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뉴라이트의 정치적
움직임과 관련해서는 "뉴라이트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상단체지, 이해관계를 다투는 정치단체가 아니다"면서도 "우리와 정책 방향이 같은 정당이나
후보라면 협력할 수 있다"고 밝혔다.
◆ "현 정부 악하지는 않아"=안 교수는 지난해 말 한 웹진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부를 '건달 정부'라고 비판했다. "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지금도 그렇게
평가하는가"라고 묻자, 그는 "현 정부가 악한 사람들은 아니다. 뭘 좀 모르는 게 문제다. FTA 추진은 잘하고 있다. 그런데 잘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정부가) 무엇을 모르나"라는 질문에는 "우리나라가 지난 100년간 발전해 온 근본 동력이 국제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답했다.
그는 "FTA 협상은 완전 개방 방향으로 적극 추진해야 한다. 한국 역사를 통틀어 우리는 국제 관계
속에서 살아왔다. 우리는 새로운 국제환경에 적응하는 데 탁월하다. 걱정할 것 없다. 한.미 FTA를 통해 한.미 동맹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잘될지는 의문'인 것은 "복잡한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텐데, 그럴 만한 철학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글로벌리즘 vs 자주노선=안 교수의 학문적 관심은 '한국 경제가 지난 100년간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다. 그
분석틀이 글로벌리즘이다. 즉 우리 사회 근대화의 성공 비결을 일본.미국과의 국제 관계에서 찾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한때
민족주의 좌파 경제학자였다. 1970년대 한국 사회를 '식민지 반봉건사회'로 규정했다. 한국 사회가 정치.경제적으로 제국주의에 종속됐다는
주장이었다. 진보세력의 세계관인 '민족주의 자주노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안 교수는 80년대 중반 급히 시각을 바꿨다. 일본
학자들의 보수적인 중진자본주의론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의 변신에 따라 한국 학계와 운동권도 함께 출렁였다. 한국 근현대사를 보는 시각이 좌파든
우파든 그에게 기대고 있는 셈이다. 그의 옛 이론을 여전히 믿고 있는 진보 좌파에 대해 그는 "많은 사람을 구렁텅이로 모는 짓을 그만둬야
한다"고 충고했다.
◆ 전향의 변(辯)=안 교수는 좌에서 우로 변신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70년대 말 한국 자본주의가
국제수지의 불균형 때문에 붕괴할 거로 봤어요. 그런데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80년대에도 한국 경제가 망하지 않고 살아나는 겁니다. 큰 쇼크를
받았지요. 내가 사회를 잘못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는 84년 일본 교토대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 교수가
제기한 중진자본주의론을 접하고 이를 한국 자본주의에 적용하게 된다. 중진자본주의론이란 20세기 후반 '선진국 따라잡기'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가 성장했다는 이론. 안 교수는 한국과 같은 신흥공업국(NICs)을 중진자본주의의 성공사례로 확신했다.
◆ 뉴라이트의
이론적 대부로= 80년대 운동권이었다가 우파로 변신한 세력, 즉 '전향 386'은 뉴라이트의 핵심 세력이다. 대부분 안 교수의 중진자본주의론에
영향을 받았다. 85년 일본 도쿄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던 안 교수는 귀국해 '낙성대 연구소'를 만들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 한반도의 경제가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창했다. 60~70년대는 중진자본주의론으로 읽어냈다면, 일제시대는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풀어낸 셈이다.
현재 낙성대 연구소장인 이영훈(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그의 수제자다.
안 교수는 "앞으로도 우리는 국제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발전의
동력을 끌어들여야 한다. 자주노선을 주장하는 것은 북한의 실패 사례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라며 우리 사회의 현안에 대해서도 국제주의 관점을
강조했다.
◆ "독도는 가만 있는 게 상책"=일본 생활 이후 지일파(知日派)로 꼽히는 그에게 독도 문제를 물었다. 안 교수는
"우린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독도는 우리가 사실상 영유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일본이 매년 독도 문제를 들고 나오는 건 그렇게
안 하면 국제법상 자연스럽게 우리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일일이 맞대응할 필요가 없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데 왜 그래'하면서 슬쩍 넘어가는 것이 좋단다. 역대 정부는 그렇게 해왔다. 노무현 정부가 굳이 강경으로 문제를 크게 만든다는
해석이다. 그는 "현 정부가 선진화 정책을 펴려고 한다면 일본과 협조해야 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그런 생각은 안 하고 국민 관심만 끌려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 "뉴라이트는 올드라이트와 달라"=안 교수는 "뉴라이트는 출신 배경이나 사상의 폭이
올드라이트(구 보수)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뉴라이트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 자유주의로 전환한 사람들이 핵심"이란다. 뉴라이트는
권위주의.부정부패와 맞서 싸운 사람들이다. 사상적으로는 공산주의까지도 논의가 허용되는 다양한 사회를 추구한다.
글=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안병직은 누구… 한때 '운동권 교수' 80년대 우파로 전향
1936년 경남 함안생.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을 마친 후 65년부터 같은 학교 전임강사로 부임해 2001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재직했다.
대학 취직 후 줄곧 학생운동을
지원해 온 '운동권 교수'였다. 스스로 '자생적 사회주의자'였다고 말한다. 많은 운동권 학생들이 그의 지도를 받으며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한나라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확인하면서 80년대 중반 사회주의에서
자유주의로 전향했다.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이론으로 70년대 자신이 주장한 '식민지 반봉건주의론'을 폐기하고, 보수적 시각의 '중진자본주의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했다. 85~86년 일본 도쿄대 교수를 지낸 후 87년 귀국해 설립한 '낙성대 연구소'에서 한국경제 100년의 발전사를
글로벌리즘의 관점으로 재해석해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01년부터 일본 후쿠이(福井)대 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올해 또
다른 일본 대학의 교수직 제안을 받았으나 사양했다. 뉴라이트 재단 이사장을 맡는 것을 계기로 국내에 계속 머물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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