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記事를 읽는 재미

육참총장(남재준)과 ‘칼의 노래’

이강기 2015. 10. 28. 10:09

육참총장과 ‘칼의 노래’

이상호기자 lsaho@munhwa.com
소설 ‘칼의 노래’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TV 주말사극으로 이어지는등 ‘이순신 신드롬’을 만드는데는 노무현 대통령이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여름 노 대통령은 직접 TV에 나와 ‘칼의 노래’를 읽어 보라고 권했고 올봄 탄핵안이 가결된 뒤에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 책을 다시 집었다. 소설은 왜적과 부조리한 조선 조정이라는 두개의 적과 마주친 이순신 장군이 느끼는 고뇌를 다루고 있다. 소설이 풀어가고 있는 선조 임금등 기성 정치세력과의 갈등, 정치권력의 무의미성과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등이 대한민국의 개혁을 이끌며 외세와 내부 공격에 직면한 노 대통령으로서는 무척 공감했을 법하다.

군 검찰이 장성진급 심사에 대한 투서를 빌미삼아 육군 본부를 압수수색하자 사표를 던졌던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또한 이순신장군의 열렬한 추앙자이다. 지난해 4월 막 취임한 남재준 육군 참모총장이 계룡대의 육군 본부 간부들에게 ‘이순신론’을 강의한 적이 있다. 당시 정신교육 내용이 알려지자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원문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쓰기도 했다.

“승부욕은 운동선수에게 필수자질이지만 군인은 절대 승부욕이 있어서는 안된다. 병법에 ‘무릇 장수는 전장에 임해서 그 가족을 잊고 전쟁터에서는 승부를 잊고 접전을 하면서는 생사를 잊는다’고 나와 있다. 승부를 생각하면 절대 이길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승부욕을 버리고 살았다. 승부욕에 집착하면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명예를 버리고 인생을 구차하게 살게 된다.”

남총장은 원칙과 융통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자기 관사에 있는 오동나무 한 그루를 달라는 상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10년동안 변방으로 쫓겨 다녔다. 그러나 패하고 남은 12척으로 적선 300여척을 상대하여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우군에게는 고지식할 만큼 정직한 장수만이 적을 속일 수 있다.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주둔중이던 롬멜 장군은 생일날 부인이 찾아오면 자신은 전사책을 보고 부인은 오페라를 볼 정도로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었지만 적이 붙여준 별명은 사막의 여우였다.”

융통성과 처세에 대한 그의 언급은 얄팍한 세태에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융통성은 방책의 다양성이지 처세의 요령이 아니다. 처세술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버릴 수가 없고 유리한 쪽으로만 따라가므로 죽을 수가 없고, 죽을 수 없는 사람은 전투를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고지식한 것이 바로 정신적·도덕적 용기라는 것이다. 부인이 2000만원이 없어 빨리 치료 못하면 죽게 생겼는데 길을 가다 2000만원을 주웠을때 그 돈을 파출소에 갖다주면 고지식하다고 하겠지만 정신적·도덕적 용기가 없는 사람은 그돈을 들고 병원으로 가는 것이다.”

남 총장은 창군 56년 국군사의 대표적 지장(智將)으로 꼽힌다. 또한 30여년 군 생활 동안 부사관(옛 하사관)에게 단 한번도 하대(下待)를 않은 덕장(德將)으로도 유명하다.

항간에서는 현재 진행중인 군 검찰의 장성진급 비리 대표적 보수세력인 군 길들이기라고 말하고 있다. 혹자는 얼마전 국가보안법 폐지문제등으로 이념대립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남총장이 “정중부의 난…” 운운했다는 괴소문과 연관시키기도 하고 참모총장의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남재준 총장의 사표파동을 보면서 불현듯 소설 ‘칼의 노래’가 생각났다. 대통령과 육군 참모총장 모두 이순신이 되고 싶어 했지만 이제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오버랩되고 있다.

이상호 / AM7 편집장 soo-lj@munhwa.com

(2004년에 퍼 온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