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放前 雜誌記事 모음

八字說을 基礎로 한 朝鮮民族의 人生觀

이강기 2016. 9. 28. 16:00
잡지명개벽 제14호  
발행일1921년 08월01일  
기사제목八字說을 基礎로 한 朝鮮民族의 人生觀  
필자魯啞  
기사형태논설  

八字說基礎로 한 朝鮮民族人生觀

魯啞

어떤 부인이 잉태 못하는 것을 걱정하야 자궁수술할 여부를 그의 친지에게 뭇는 양을 보앗습니다. 그는 아들을 목슴과 가티 여기는 朝鮮여자의 열정과 잉태 못하는 朝鮮 안해의 비애를 보입니다. 그는 자궁수술의 難易와 수술 후의 유효여부를 한참이나 걱정스러이 뭇더니 문득 自嘆하는 어조로 「다 八字지」하고 한숨을 지옵니다. 그 말을 들은 친지는 新교육을 바든 여자라, 팔자가 무슨 팔자냐고 반박을 합니다. 그는 한참 묵묵하더니 이윽고 극히 자신 잇는 어조로 「팔자지, 팔자에 태어나는 게지, 웨 어떤 이는 왕으로 태어나고 어떤 이는 거지로 태어나나」하야 왕이 거지 될 수도 업고 거지가 왕이 될 수도 업는 것을 말하고 다시 여러가지 예를 들어 사람의 一生禍福은 都是 팔자에 태인 것이라, 인력으로 면할 수도 변할 수도 업다는 숙명론을 말합니다. 그러나 얼마 잇다가 그는 다시 친지를 향하야 「수술하면 잉태가 될가」하고 무릅니다. 그는 「자궁의 위치의 잘못됨이 成胎치 못하는 원인인 경우에는 수술만 하면 10에 5는 成胎를 한다」는 대답을 듯고 일어나 가면서
「글세 秋節을 기다려 수술이나 하여 볼가」하고 다시 「그러나 팔자야」합니다.

나는 여긔서 朝鮮 민족의 생활의 根柢에 깁히 박힌 무서운 신념의 불길을 보고, 아울러 그 신념이 과학적 新人生觀을 맛나 다소간 동요하는 빗을 보이면서도 아즉도 여전히 朝鮮민족의 생활을 지배하고 힘이<35>잇슴을 보앗습니다. 그 신념은 곳 八字說입니다.

그 부인은 자기가 잉태 못하는 것을 팔자라 하고, 세상사람의 부귀와 빈천과 壽夭가 전혀 이 팔자에 달린 것이라고 밋습니다. 그러면서 新의학에서 자궁수술을 한다는 말을 들으매 과학의 힘에 의지해 볼가 하고 반신반의의 생각이 나지마는 그래도 수십백代 遺傳을 통하야 그의 피에 흐르는 민족적 신념의 魔力을 벗어날 수가 업서서 「수술을 해볼가」, 「그래도 팔자지」하는 중간에서 방황하고 잇습니다.

이것이 다만 그 부인만의 심리상태일가요. 이 부인의 사상은 현대 朝鮮 민족의 사상을 대표한 것인가 합니다. 朝鮮 민족의 인생관의 基調를 成한 근본사상은 팔자설입니다. 王公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그 사상의 근본의 근본을 캐어 보면 숙명론인 팔자설입니다.

그러나 이 숙명론의 鐵軛의 압력에 눌린 朝鮮 민족은 여러가지 음양설과 雜神敎에서 겨우 歸依의 위안을 求합니다. 팔자의 一點이나 一劃은 인력으로는 도저히 변할 것이 아니오 오즉 神의 힘으로만 다소간 완화할 수 잇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神이란 百種千種입니다. 山神, 木神, 水神, 마울, 대감, 서낭당가튼 자연물의 神, 또 그러한 자연물에 접하는 神, 帝釋天, 三神, 부텨, 菩薩, 閻羅使者가튼 西域으로서 이주하야 朝鮮化한 諸神, 男鬼, 女鬼, 兒鬼, 독갑이 가튼 사람 죽어 된 귀신, 다음에는 祖先숭배에서 온 祖先의 혼령, 다음에는 道敎에서 들어온 天地日月星辰의 모든 仙官, 神將, 또는 집의 모든 부분을 지키는 귀신, 즉 守門將, 竈王神, 成造神, 마당귀신, 울안귀신 이러한 무수한 神들입니다.

이러한 모든 귀신에게 빌어 팔자의 點劃을 개정하려 하는 예식을 가르쳐 祭祀라 하고 그 중에 제사 밧는 神의 종류를 딸아 祖先의 忌日祭, 佛供, 山川祈禱, 七星祈禱, 굿, 마지, 告祀, 山神祭, 龍神굿, 서낭祭, 經, 무르츠개 등 여러가지 종류가 잇습니다. 이상에 말한 것 중에 山川祈禱, 七星祈禱, 龍神굿 가튼 것은 특별한 경우에 하는 것이어니와 祖先의 忌日祭, 四時의 告祀(어떤 집에서는 굿과 佛供까지) 가튼 것은 거의 어느 집에서나 다 行하는 연중행사외다.

그리고 혼인이나, 喪事나, 먼 여행이나 기타 특별한 大사건이 잇슬 때에는 누구나 특별한 정성으로 告祀를 지냅니다.

그리고 祖先의 분묘의 자리가 子孫의 운명에 관계한다는<37>신념은 墓地規則을 復歸케 할만큼 견고하며 집의 方位도 그러합니다.

지금도 시골서는 四時에 牛, 鷄를 잡아 그 洞里의 수호신인 城隍祠에 祭를 지내며 旱魃이나 惡疫가튼 재앙이 臨할 때에는 특별한 祭를 지냅니다.

근년에(특히 平安北道지방) 무당과 장님이 차차 더욱 勢를 어더 촌락에서는 북소리 꽹과리 소리가 끈히지 아니하며 病人이 생기면 의약을 救하기 전에 먼저 무당이나 장님의 집으로 가서 어느 귀신이 發動하는가를 뭇고 다음에 漢藥을 써보고 최후에 洋藥을 써볼 형편입니다.

누가 朝鮮민족의 종교를 유교라 합니까. 윤리적으로 유교의 영향을 바든 것은 사실이지마는 朝鮮민족의 근본신앙을 作한 것은 (그것이 어느 시대부터 시작되엇는지는 아즉 역사적으로 확언할 수 업지마는) 숙명론적 雜神敎외다. 입으로 孔孟의 道를 부르짓는 儒者의 집도 孔孟의 道를 談하는 것은 밧사랑뿐이오 한번 中門을 들어서면 곳 숙명론적 雜神敎의 세상이외다. 그 雜神敎의 승려가 무당이라는 여성인 모양으로 이것의 가장 열렬한 信徒도 대부분 여성입니다. 얼마 전에는 大闕이 이 雜神敎의 본부라 할만한 형편이엇나니 무당서방 叅領은 누구나 다 아즉 잇지 아니한 것일 줄 압니다.

이러케 朝鮮민족의 근본신념이 숙명론적 雜神敎이기 때문에 외국으로서 수입되는 종교도 차차 朝鮮化하야 숙명론적 雜神敎의 색채를 띄게 됩니다. 부텨님은 원래 숙명론적도 아니오 잡신교적도 아니지마는 朝鮮민중은 그 역시 木神이나 대감가튼 성격을 맨들어 노코야 맙니다. 그보다도 더 새로운 사실은 耶穌敎의 한운님이니 朝鮮에 들어온지 아즉 얼마가 아니되엇지마는 朝鮮민중은 그를 西洋서 온 대감이나 龍神가튼 이로 알아 병을 고치며, 여자를 생산케 하며, 돈을 모흐게 하며, 잇다금 當場의 罰을 나리워 집에 불을 노코 인명을 상해하는 큰 귀신으로 알게 됩니다.

朝鮮서 가장 민중에게 영향을 만히 주는 經典이 무엇입니까. 四書五經입니까. 新舊約聖經입니까. 나는 말하기를 이도 저도 아니오 鄭堪錄이라 합니다. 朝鮮민중 중에 鄭堪錄을 어더 본 사람은 몃명이 아니 되리다 마는 兒童을 除해 노흔 朝鮮민족 치고 鄭堪錄 중의 1, 2절을 못들은 者도 업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그 중에 몃句를 아니 밋는 者가 업스리라 합니다. 一世의 호걸인 大院王도 그의 필생의 정력을<37> 鄭堪錄에 예언된 李朝의 運命의 進路에 바치기에 다하엿다 합니다. 지금도 鷄龍山으로 사람들이 만히 모혀든다 하니 이것을 일부 愚民의 妄擧라고 一笑하여 버릴 수 업는 것이오 진실로 朝鮮민족의 혈액 중에 흐르는 숙명론적 인생관의 발로라 할 수 잇습니다. 鷄龍山으로 짐을 싸가지고 가는 者는 몃백이나 몃천에 지나지 못하더라도 「갓스면」 하는 생각을 품은 者는 수백만에 달할 것이며 「求人種於兩白」, 「求穀種於三豐이」라던지, 眞人이 從海島中出來라던지 「庚申辛酉 流血成川」, 「壬戌癸亥 萬事可知」 하던지 하는 예언을 확신하는 者, 半信하는 者, 그럴는지도 모르리라 하는 者는 거의 30세이상 된 朝鮮민족의 전부라고 할만 합니다. 누구나 혹은 신변의 위험을 두려하며, 혹은 人에게 迷者라는 嗤笑를 밧기를 꺼리어 筆舌에 이러한 뜻을 發치는 아니한다 하더라도 胸奧에는 이러한 생각을 祕藏하고 잇는 이가 저마다인가 합니다. 이는 다만 無교육한, 또 書堂式교육을 바든 者 뿐이 아니오 지식정도로 보아 중류이상인 계급도 이 遺傳的 미신의 臭氣를 脫하지 못합니다. 대저 新교육이나 新환경은 인생의 생활의 表皮를 변하나 그 心奧의 성격은 수십백代의 遺傳의 축적을 통하지 아니코는 變키 어려운 것입 니다. 학교에서 新교육을 바다 言辭로는 新생활을 하는 듯 하지마는 그의 心奧에는 여전히 祖先전래의 신앙과 인생관이 숨어 잇서 무슨 급한 일 重한 일을 당할 때마다 新교육에서 어든 表皮는 아모 힘도 업서지고 이 心奧의 괴물이 그 인격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은 부스럼이 나면 新式병원으로 가되 좀 생명에 관한 중병이면 漢醫에게 問하고 더욱 위중하게 되면 무당이나 장님에게로 가게 됩니다. 입학이나 졸업에는 날바지도 할 수 업지마는 혼인이나 搬移에는 宮合을 보고 날을 밧고 고사를 지냅니다.

우에 말한 婦人도 電燈미테서 윤전기에 인쇄된 신문을 보고 뜌마의 소설과 윌손의 연설을 보면서 그날의 天氣豫報를 이용 關王廟에 자식 빌러 갈 준비를 합니다. 그의 말하던 바와 가티 今秋에 건강이 회복되어 어느 의학박사의 손에 德國製 멧서로 腹部수술을 하게 된다 하면 그는 응당 수술 前에는 수술을 무사히 지내게 해달라고 어느 부텨님이나 대감께 빌 것이오, 수술이 무사히 된 뒤에는 자식 점지하기를 빌다가 만일 남자를 어드면 이는 수술과 神明의 덕일 것이오, 불행히 엇지 못한다 하면 이는 자식업슬<38>팔자일 것이외다.

이상에 말한 바와 가티 朝鮮 민족은 그 일상생활에나 또는 민족의 운명에나 그네의 心奧에 根柢 깁히 박힌 숙명론적 인생관의 지배를 밧습니다. 毋論 이러한 숙명론적 미신적 유전의 인생관의 마취에서 완전히 벗어난 者와 벗어나려고 애쓰는 者의 계급도 잇게지마는 그것은 아즉 少數외다. 李敦化씨는 朝鮮이 이미 사상적 혼돈기, 방황기가 지나가고 統一期에 入한다 하셧습니다. 이것은 朝鮮 민족 중의 最高한 지식계급이라 할만한 一계급만을 割取하여 노코 본 말이오, 朝鮮 민족 전체를 본 말은 아니외다. 朝鮮 민족 전체로 보면 겨우 舊사상이 新사상의 압헤 파괴되려 하는 「混沌期」에 入하는 初步라고나 할 수 잇슬가 합니다. 新사상의 風雨가 舊사상의 磐石을 완전히 霉爛하야 완전한 混沌期(天地가 새로 剖判하랴는)에 達함에는 아즉도 만흔 세월과 노력이 필요하리라 합니다.

철도가 깔리고 전선이 노히고 아스팔트 도로가 되고 電燈 미테서 윤전인쇄기에 박아낸 신문을 보게 되엇지마는 이 민족은 정신생활은 아즉도 舊시대외다. 기차 타고 名卜과 名刹 차자 단이고 전등 켜고 고사 지나는 형편입니다. 電信電話線이 거미줄과 가티 얽히는 것이 朝鮮의 문명에 어떠한 관계가 잇는 것을 생각하기 전에 李氏 末端에 「千里長松, 一朝白立」이라는 鄭堪錄의 李朝 운명의 예언이 마즌 것에 더욱 흥미를 가지며, 철도와 朝鮮민족의 생활과 어떠한 것을 생각하기보다 철馬來嘶漢水濱의 예언이 마즌 것을 신통히 여깁니다. 南大門通이니 太平通이니 하는 길들은 20세기式이지마는 주민의 中門을 들어서면 모든 배치와 활동이 다 舊朝鮮式인 것과 가티 우리의 정신적 생활도 表新裏舊의 이중생활을 하는 중입니다.

이러케 因襲한 숙명론적 舊사상의 보루가 아즉도 깨어지지 아니하고 민생의 생명을 嘶殺하는 大碗口를 끈힘업시 듯는데, 게다가 또 近年에 日本을 거쳐 새로 수입된 洋式 숙명설마저 들어와 所在에 砲壘를 싸코 과학의 냄새를 띈 毒瓦斯를 발사합니다. 아즉 이러한 사상을 대표한 사상가나 文士의 명성은 들어나지 아니하엿지마는 근래 청년이 쓰는 시, 소설, 書簡, 談話 등에 흔히 「아아 운명이로다」, 「아아 내 운명이어!」하는 등 語句가 흔히 보이고, 또 이러한 語句는 독자에게 깁흔 共鳴을 주는 모양이니 <39>그것은 그럴듯한 일이외다. 대개 자기가 희미하게 생각하던 바를 남에게 분명히 들으면 자기가 생각치 아니하던 것보다 더욱 인상이 깁허지는, 심리와, 또 자기도 희미하게 미드나 올흔지 그른지 모르던 것을 자기보다 세력이나 知力이 우수한 者가 승인함을 보면 자기도 더욱 깁히 신앙하게 되는 심리를 통하야 그러케 됨이외다. 유전적 숙명론을 가진 우리 청년들이 철도와 電信과 비행기를 발명한 洋人의 운명론에 심취함은 진실로 그럴만한 일이외다. 기실 洋人의 숙명론은 洋人중에 가장 懶惰한 洋人의 造出에 불과하건마는.

中國으로써 수입된 五行說에 기초한 팔자설은 한문의 세력의 失墜로 더불어 衰하기도 하려니와 洋風에 불려 들어와 지식계급의 청년의 腦膸에 浸潤하는 洋式 팔자설이야말로 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이러케 숙명론적 인생관이 우리 민족의 생활을 지배한다 하면 거긔서 어떠한 결과가 生하엿는가. 이 문제야말로 우리가 깁히 생각할 것이니 지금까지 내가 累累히 진술해 온 것도 진실로 이를 위함이외다.

개인이나 민족의 盛衰興替는 오즉 팔자와 運數에 달린 것이니 이것은 족음이라도 緩和하는 방법은 오즉 神明의 陰祐를 빌기에 잇다 하는 숙명론적 인생관은 「懶惰」, 「僥倖」, 「迷信」, 「依賴」가튼 개인과 민족의 생활의 毒이 되는 諸惡의 어미가 됩니다. 懶惰, 僥倖, 迷信, 依賴! 이것이 우리 민족의 공통한 습성이 아닙니까.
生年月日時의 四柱八字와 相貌와 掌紋에 이미 일생의 吉凶禍福이 결정되엇다 하면 구태 심신을 勞하야 일할 것이 무엇입니까. 「부자될 팔자」가 아닌 者는 아모리 노력하여도 부자될 수 업고 「귀인될 팔자, 장수할 팔자」가 아닌 者는 아모리 수양과 修學과 위생에 힘을 써야 쓸대업슬 것입니다. 또 一國이 亡함도 運數니 구태 붓들려고 애쓸 필요도 업고, 興함도 運數니 구태 興케 하려고 경영할 필요도 업슬 것입니다. 그러한지라 自來에 소위 運을 알아 난세에 나오지 안코 산에 숨어 국가의 멸망을 초월시하는 者를 賢人이라 칭합니다. 國運이 기울어지매 一命으로써 이를 버티려 하지 아니하고 제손으로 제 목슴을 끈는 愚擧를 하는 者를 忠臣이라 합니다. 이러케 運이란 핑게로 「莫非運」, 「命也奈何」, 「天之亡我也」가튼 듯기조흔 漢文句로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고 乾乾, 孜孜히 進取하자 創作하자 建設하자<40> 挽回하자는 進取의 기상을 乏함이 모다 懶惰에 속할 것이외다.

甚至에 학생들조차 시험의 及落第는 運이라 공부 잘하고도 낙제하는 수도 잇고 공부 아니하고도 우등하는 수도 잇다, 하며 야구나 정구가튼 경기의 승부도 운에 잇다, 는 말을 하게 되어 공부와 연습의 誠勤을 闕합니다.
숙명적임을 信함으로 무슨 일에나 그 일이 성공되도록 심신의 精力을 들이지 아니하고, 그 일이 성공되기를 오즉 僥倖에 맛기게 됩니다. 재산이면, 횡재, 졸부, 功名이면 우연한 기회의 異跡的 功名, 一국가나 민족에 관하야서 혹은 神人의 現出, 혹은 어떤 외국의 異跡的 援助. 학교시험에는 請이나 雜手로 僥倖的 우등. 이리하야 최고급의 志士도, 지식계급도, 실업가도, 학생도, 男도, 女도, 모다 각자의 所願의 功을 요행에서 成하려 합니다.
실력업시 학교에 입학하는 이도 요행의 信者, 넉넉한 인물과 금전의 예산도 업시 사업에 착수하는 이도 요행의 信者외다. 우리 중에 무슨 일을 경영할 때에 그 일을 일우게 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시하기에 족한 인물과 금전의 예산을 세우고 그러고 나서 비롯오 그 일에 착수하는 이가 며치나 됩니까. 만일 이러케 正經大道로 경영하는 사업이고 보면 결코 시작이 끗치 되고 龍頭蛇尾가 되는 추태를 現出하지 아니할 것이로되 근년에 우리 중에 넘우 만흔 사업들이 갑작이 蔚興하엿다가 갑작이 슬어지는 것은 요행이란 기초 우에 건설되엇던 증거입니다.

요행을 바라는지라, 남에게 (그 「남」이 神이던지 人이던지) 의뢰할 생각이 납니다. 「請을 한다」는 관념은 누구던지 가지고 잇습니다. 입학에서, 직업을 구함에나, 公事에나 「請을 하는 것」이 실력보다도 성공의 捷路로 압니다. 그럼으로 가장 우수한 세력을 가진 사람이란 가장 유력한 請을 할만한 上典을 모신 사람이외다. 古來로 朝鮮에서 勢道를 하던 者는 실력을 넉넉히 가진 者보다 請할 곳을 만히 가진 者엿습니다. 科擧에 장원급제도 請으로, 牧使 監司도 請으로, 陸軍叅領, 副領도 請으로, 죽을 죄를 면하는 것도, 남을 죽을 죄에 넛는 것도, 모다 請으로 되엇습니다.

그러고 一國의 경영조차 依賴로 일을 삼아 俄가 侵하거든 日에 請하고, 日이 侵하거든 淸에 請하얏습니다. 금일에도 혹은 美에 請하고 혹은 俄에<41> 請하야 만사를 남에게 의뢰함으로써 해결하려 하니 참 딱한 일이외다.

이러함으로 우리 중에 정신상으로나 경제상으로 독립한 생계를 가진 개인이 드믈어 一個의 有實力한 개인의 등에 數個 내지 數十百個의 無實力한 개인의 떼가 업혀 사는 지경이니 貧은 더욱 貧하고 弱은 더욱 弱하야질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부모의 보육하의 상당한 교육을 바닷거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자기의 생활을 자기의 줌억 위로 하여 간다는 독립자주성을 가지어 자기의 줌억 위로 엇지 아니한 지위나 재산을 坐享하기를 큰 수치로 알게 되고, 一步를 내켜서는 적극적으로 자기의 천재와 능력을 발휘하야 학술에나 사상에나 前人未到의 境의 闖入하고 富로나 貴로나 壽로나 出衆한 인물이 되리라는 氣槪가 잇서야 할 것이어늘 오늘날 우리 중에는 高等한 전문교육을 바든 者조차도 父祖의 遺業에 의뢰하는 穉態를 免치 못합니다.

미신에 대하여서는 우에 말한 것이 만흐니 다시 煩論하려 아니합니다.

또 懶惰하야 성공을 요행에 바라는 고로 猜忌가 생기고 허위와 巧詐가 생깁니다. 무슨 일이나 성공함은 오즉 실력에 잇다, 정직한 노력에 잇다 하는 신념이 강할진대 자기보다 偉한 공을 成한 者라고 이를 시기하야 모함할 필요도 업고 巧智詐計로 남을 들어 넘울 필요도 업슬 것이외다. 근일 東亞日報에 연재된 李朝人物略傳을 봅시오. 그 인물들의 서로 殘害함이 모다 猜忌와 巧詐로가 아닌가. 正業에 근면하는 농부는 이러한 惡을 行할 여유가 업습니다. 그는 부지런히 거름을 내고 물을 대고 기심을 매는 것만이 오즉 자기의 秋收를 만케 하는 길인 줄을 잘 앏니다. 그럼으로 그는 구태 이웃의 곡물을 해치려 아니하고 돌이어 旱災나 蟲災가 잇슬 때에는 大同의 患으로 이를 구제할 생각을 가집니다. 요행이나 猜忌나 巧詐를 꾸며내는 者는 흔히 懶惰한 者입니다. 제 노력을 안들이고 남의 노력으로 된 功을 앗으려는 者의 즐겨서 하는 바입니다.

法國의 석학 르본박사는 그의 著 민족심리학에 一國民의 역사는 반듯이 그 종족의 심리조직에 胚胎하는 것이라 하야 그 국민의 심리적 특징(해부적 특징에 대하야)만 알면 足히 그 국민의 생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판정할 수 잇스리라 하며 一國民의<42> 문명을 조직한 각 요소는 전혀 그 국민의 정신의 發現이라 하엿습니다. 그러고 국민정신은 극히 단순한 1, 2개의 근본사상을 기초로 하는 것이니 一國民의 萬般제도와 문물이 전혀 그 사상의 표현이라 하야 여러 민족의 실례를 들엇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라틴族은 복종을 조와하고 평등을 조하함으로 專制主義의 국가를 조하하고, 앵글로쌕슨族은 자주와 자유를 조하함으로 국가의 권력을 최소한도에 축소한 自治制度를 조하한다 하야 前者의 예로 박사의 고국인 法國과 西班牙를 들고 後者의 예로 英國과 美國의 예를 들엇고 또 라틴族의 미신적 이상적임과 앵글로쌕슨族의 과학적, 실제적인 특징을 지적하야 前者의 後者에 比하야 산업이나 식민지의 繁昌치 못함을 이 원인에 돌렷습니다.

또 박사는 초대의 로마와 末年의 로마의 국민의 근본사상의 변천이 로마의 성쇠와 흥망의 원인이 된 것을 지적하야 로마국민으로 하여곰 세계의 주인공이 되게 하던 奮鬪의 정신이 頹廢하야 姑息逸樂의 정신과 자리를 바꾸게 되매 大로마제국은 壞滅하엿다고 痛嘆하엿습니다.

어떤 민족이 흥할 때에는 그를 흥케 하는 일종의 근본사상이 잇고 망할 때는 그 사상이 頹廢된 때입니다. 그러고 그 근본사상이란 아모 幽玄奧妙한 것이 아니오 극히 단순한 것이니 가령 로마인의 奮鬪라던지, 希臘人의 審美性이라던지, 英美人의 실제적 성격이라던지, 印度人의 退嬰無爲의 성격, 中國人의 非사회적 이기심 가튼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현재의 쇠퇴를 招한 근본적 사상은 진실로 八字說을 중심으로 한 숙명론적 인생관과 딸아서 나오는 모든 병적 성격이외다. 그럼으로 우리 민족을 이 쇠퇴에서 끌어내는 근본방침은 爲先 이 咀呪바든 숙명론적 인생관을 타파함이니 이 사상이 다수의 朝鮮민족을 지배하는 동안 결코 금일의 쇠퇴를 벗어날 수 업는 것이외다. 다시 말하면 朝鮮민족을 쇠퇴로 끌어 너흔 재래의 근본사상을 그의 腦筋에서 刮去해 버리고 건전한 新근본사상의 植皮術을 행함이외다. 新인생철학을 주고 新신앙을 줌이외다.

그러면 이 숙명론적 사상을 타파하는 방법이 무엇일가. 그의 제1의 길은 과학교육이외다. 그 중에도 자연과학의 교육이외다. 과학의 교육은 다만 朝鮮민족의 생활의 물질적 풍부를 위하여서만 필요한<43> 것이 아니오, 진실로 그의 민족적 생명을 蠱毒하는 근본사상의 바틸스를 박멸하는 가장 효력이 위대한 注射요 祛惡生新한 膏藥이외다.

그런데 재래의 우리 新교육계에서는 과학, 특히 생물학가튼 자연과학은 輕히 여기는 弊가 잇섯는 듯합니다. 理科교육은 이를 밧는 학생은 물론이오 이를 주는 교사까지도 그 眞意義를 모르는 것 가틉니다. 어학이나, 역사, 문학가튼 것은 상당히 注重하면서도 과학은 輕히 여겻습니다.

해외의 유학생들을 보더라도 法, 政, 경제, 문학가튼 文科부류의 학과를 배우는 者만 만코 理科부류의 학과를 택하는 者는 적읍니다. 의학, 공학가튼 應用理學을 배우는 者는 혹 잇스되 과학을 위하야 과학을 배우는 者는 거의 업다고 할만합니다. 우리 중에 高等師範의 理科에 博物을 배운 이가 2, 3人 잇슬 뿐입니다. 그래서 아즉 朝鮮에는 과학적 정신, 과학적 空氣라는 것이 생기지를 못하엿습니다. 금후의 우리의 물질적 생활자료를 엇기에나, 민족적 新정신을 振作할 과학교육에 주력함은 극히 필요한 일이외다. 그보다도, 다만 과학적 지식을 학생의 두뇌에 주입하기보다도 동시에 과학의 眞意義, 즉 과학과 인생과의 관계를 분명히 알게 하야 과학적 지식을 가진 者만 되게 말고 과학적 정신을 가진 者가 되게 함이 필요합니다. 지식과 정신과는 결코 하나이 아니니 윤리적 지식을 가졋다고 반듯이 德잇는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리 윤리적 정신(情과 意를 主로 한)이 生한 뒤에야 그것이 行에 發함과 가티 과학적 지식이 잇다고 과학적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오 그 지식이 情意와 合하야 과학적 정신이 된 뒤에야 비롯오 그를 가진 者의 생활이 과학적이 되는 것이외다. 英國의 헉슬리, 德國의 헤켈가튼 이는 그 동포에게 과학적 정신을 주입하기로 유명한 학자들이외다.

다음 민족적 근본사상을 새로 줌에는 앵글로 쌕슨족의 인생철학의 정신을 주입함이니, 르 본 박사의 말과 가티 현대 諸民族 중에 가장 생활에 適者될 소질을 가진 者는 英美人이외다. 그네의 인생철학인 功利主義(Utilitarianism) 그것을 더 철학화한 實用主義(Pragmatism)를 실어들이는 것이 가장 긴요한 일인가 합니다. 毋論 甲민족의 사상을 고대로 乙민족에게 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마는 이 사상이 朝鮮민족에게 들어와 소화되고 흡수되는 동안에 朝鮮式 색채를 띄게 될 것은 면치 못할 일이오 또 致賀도<44> 할 일이지마는 우리에 가장 적당한 철학은 이것인가 합니다.

나는 이상에 지금까지의 朝鮮민족의 생활을 지배하던 근본사상이던 것과 그의 금일의 쇠퇴를 招한 원인이 이 근본사상에 잇스니 이것을 打破하기 전에 그는 신생의 道에 나서지 못할 것과, 그리함과 과학적 정신과 실용주의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엿습니다. 그러나 실용주의가 어떠한 것인가 함에 대하야는 여긔서는 말할 여지가 업슨즉 다 기회를 기다리려니와 이 小論이 민족의 前途를 우려하는 사상가, 교육가 諸君에게 微微한 참고가 되고 토론의 제목이 된다 하면 幸甚이겟습니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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