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싶은 詩 모음

그 겨울의 시

이강기 2018. 12. 26. 11:09

그 겨울의 시

            - 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 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 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 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 흘리다가

눈 산의 새끼노루 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