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왕이가 김정은 팔을 툭툭 치면 북한은 어떻게 반응할까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조선일보
2020.12.02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지난달 25~27일 서울을 다녀갔다. 그가 체류하는 동안 보여준 거만함과 외교적 결례도 문제지만, 중국 정부 내 서열이 20위권에 불과한 외교부장의 방한에 우리 당·정·청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한 건 조선 시대 명나라에서 칙사라도 온 것 같은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접견실에서 민망한 자세로 왕이 외교부장에게 자리를 안내하는 장면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다. 현 정부의 대중국 저자세는 문 정부가 자초한 외교적 고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정부 인사들은 그간 미국에 대해 할 말과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쏟아내 왔고, 일본에 대해서는 마치 대일 항쟁기라도 되는 양 ‘죽창가’를 외치며 노골적으로 반일을 선동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현 정부와 관계가 덜 껄끄러운 주요국은 중국뿐이다. 그래서 더욱 중국 호감을 사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현 집권 세력의 삐뚤어진 역사관이다. 현 정부 인사들은 기본적으로 6·25 전쟁의 성격에 대해 소위 ‘항미원조’의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는 최근 시진핑 발언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25 전쟁은 미국의 침략 전쟁이고 한국이 이에 가담하였다는 말인가. 말로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부르짖지만 기본적으로 주한 미군을 한민족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로 보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다음으로 정책적 고려 요인이다. 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는 데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또는 건설적 역할이 긴요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은 우리만의 목표가 아니며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 발전에도 필수적인 조건이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3회 중국 방문과 시진핑의 평양 방문은 중국이 얼마나 초조하고 조바심을 갖고 있나 보여줬다. 중국은 혹시라도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깜짝 딜을 통해 중국이 아니라 미국 쪽으로 기울지는 않을까 우려했다고 해석된다.
이러한 친중 태도는 현 집권 세력이 내걸고 있는 민족주의와 자주의 관점에서 모순됐다. 민족주의와 자주를 구현한다면 모든 외세에 대해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중국에 대해서는 우리 주장을 이야기하지 않고 할 말을 못 하는가. 현 정부가 고대하고 있는 시진핑의 방한은 2017년 문 대통령의 방중에 대한 답방이다. 현대 국제사회에서 정상 간 답방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데 왜 현 정부는 국민에게 대단한 외교 성과인 양 설명하는가.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에 오면 한국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갖고 대통령을 예방하는 정도면 족한 것이다. 그런데 왕이 부장을 만나기 위해 당·정·청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하였고, 특히 자가 격리 중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친전과 꽃바구니를 보냈는데 중용의 ‘유천하지성위능화(唯天下至誠爲能化·오직 지극히 정성을 다해야 변화를 만든다)’는 구절을 인용하며 “코로나 와중에 방한하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고 한다. 이낙연 대표는 대권 후보 중 한 사람이다, 벌써 중국의 ‘책봉’을 염려하는 것일까.
중국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라 하더라도 우리 정부 고위 인사들은 우리 국민 자존심도 생각했어야 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외교부장을 접견하면서 문 대통령처럼 민망한 자세로 안내한 적이 있을까. 감히 지도자 동지 팔을 툭툭 치도록 놓아두었을까. 미국⋅러시아⋅일본 정부는 중국을 대하는 한국 행태를 보고 앞으로는 ‘중국처럼 한국을 거칠게 다루어야 저런 대접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한국 외교가 길을 잃고 헤매는 가운데 허황한 기대에 빠져 중국에 자발적인 과잉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얻는 것도 없음은 물론, 중국에 휘둘리기까지 하는 상황을 보면서 조선조 말에 이 땅에 감국대신으로 와서 조선 국정을 휘둘렀던 위안스카이가 지하에서 미소를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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