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錫 評論集

詩를 위한 詩 - 鄭芝溶論

이강기 2015. 9. 1. 18:10

詩를 위한 詩

 

     - 鄭芝溶論 -

                 - 金東錫

 

   술을 마시면 망나니요 - 술 취한 개라니 - 이따금 뾰죽집에 가서「告悔」와「領聖體」를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朝鮮文壇에서 純粹하기로는 아직까지 鄭芝溶을 따를 者 없다.「詩를 위한 詩」, 이것은 決코 말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다. 내 손으로 내 목을 매달 듯 朝鮮말을 抹殺하려던 作家와 評論家가 있는 이 땅에서 한 평생 朝鮮詩를 붙들고 늘어질 수 있었다는 데는 芝溶이 아니면 어려운 무엇이 있다. 碧初나 爲堂이나 安在鴻氏나 李克魯氏도 깨끗한 듯 하되 결국은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 아니면 頑固 덩어리라는 것을 中央文化協會에서 出版한「解放記念詩集」이 雄辯으로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日本帝國主義의 彈壓 밑에서 가장 純粹한 行動人이 누구였나 하는 것은 좀 더 두고 보기로 하고 鄭芝溶氏의 詩는 가장 純粹한 精神이었다.


   詩集「白鹿潭」은 이가 저리도록 차디차다 할 사람도 있을 게다. 아닌게 아니라 希臘의 大理石같이 차다. 허지만 春園처럼 뜨건체 하는 사람이 아니면 玄民처럼 미지근한 사람들이 橫行하던 朝鮮文壇에서 이렇게 깨끗할 수 있었다는 것은 祝賀하지 않을 수 없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란다. 차고 凡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長壽山 속 겨울 한밤 내 - 」

이 以上 精神의 純粹를 지킨 사람이 있다면 나서라.


   허긴 芝溶에게도 한 때 靑春은 있었다.「鄭芝溶 詩集」第二部를 보면, 거기엔 카페도 있고 鄕愁도 있고 紅春도 있었다. 靑春은 가장 華麗한 詩의 東山이오 시들은 조선, 메마른 조선, 젊기 전에 늙어버리는 조선에도 靑春의 詩가 있었다.


   사람은 胎中에 열 달 있을 동안 人類가 地球上에 單細胞生物로 태어나서 오늘날까지 進化해 온 過程을 되풀이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生涯를 通하여 그 精神의 變遷過程을 觀察하면 이것은 누구나 스스로 內省할 수 있는 일이다. 人類의 精神史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詩와 散文이 각각 어느 時代에 屬할 것인가. 하나는 靑春의 것이오 또 하나는 老年의 것이다. 아니, 靑春에도 벌써 散文이 섞인다. 自我 밖에 있는「事實」이 壓倒的이 될 때 詩의 季節은 지나가고 散文의 時代가 오는 것이다. 이리하여 現代를「事實의 世紀」라 하는 것이며 이「事實」을 認識하는 데는 科學을 따를 者 없고 또 科學은 더 많은 生産을 가져온다. 그래서 現代를 科學時代라고 하는 것이다. 現代人이 일찌감치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이 異常할 理 없다.


   詩人 鄭芝溶도 또한 現代人인지라 現代의 意識이 없을 수 없다.「太極扇」은「詩」와 現代意識을 對質시킨 象徵詩라고 보면 興味가 있다.

 

이 아이는 고무뽈을 따러
흰 山羊이 서로 부르는 푸른 잔디 우로 달려드는지도 모른다.
이 아이는 범나비 뒤를 그리며
소스라치게 위태한 절벽 갓을 내닫는지도 모른다.

이 아이는 내처 날개가 돋혀
꽃잠자리 제자를 슨 하늘로 도는지도 모른다.

(이 아이가 내 무릎 우에 누은 것이 아니다)

새와 꽃, 인형 납병정 기관차들을 거나리고
모래밭과 바다, 달과 별 사이로 다리 긴 王子처럼 다니는 것이려니,

(나도 일측이, 점두록 흐르는 강가에
이 아이를 뜻도 아니한 시름에 겨워 풀피리만 찢은 일이 있다.)

이 아이의 비단결 숨소리를 보라.
이 아이의 씩씩하고도 보드러운 모습을 보라.

(나는, 쌀, 돈셈, 지붕 샐 것이 문득 마음 키인다.)

반딧불 하릿하게 날고 지렁이 기름불 만치 우는 밤,
모와 드는 훗훗한 바람에
슬프지도 않은 태극선자루가 나붓기다.

   어른이 볼 때「詩」란 꿈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世界 自體가「詩」다. 芝溶은 詩人이기 때문에 現實을 括弧 속에 넣고「꿈」을 前面에 내세웠다. 詩人이란 要컨대 어린이의 世界를 讚美하는 者다. 英文學을 工夫한 芝溶이 沙翁(세익스피어)을 덮어놓고 빼리(J.M. 배리)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理由도 빼리가 永遠한 童心의 심볼인「피터 팬」의 창조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가 現代의 바리새敎라고 할 수 있는 化石이 되어버린 天主敎의 信者인 이유도 그 形式的인 儀式의 테 속에 들려는 데 있지 않고「어린이와 같지 않을진덴 天堂에 들어갈 수 없으리라」한「福音書」에 끌려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如何튼「鄭芝溶 詩集」의 本質은 童心에 있다 할 것이다.「해바라기 씨」와「피리」,이제부터라도 朝鮮文學에서 이런 씨는 얼마든지 뿌려도 좋고 이런 피리는 얼마든지 불어도 좋다. 童心을 잃는 날「詩」는 없어지고 말리라.


   그러나 芝溶도 이젠 나이 먹었다. 얼굴만 쭈구렁 바가지가 된 것이 아니라 맘도 나이 먹었다.「白鹿潭」은 차고 맑되 늙은이가 다 된 사람의 詩集이다.

 

「應無所住而生其心」(金剛經 第十章)

   이러한 禪師같은 詩는 좋다. 허지만 詩集「白鹿潭」에 집어넣은 散文은 무엇을 意味하는 것이냐.「詩」만 가지고「白鹿潭」을 채울 수 없던 芝溶 - 이 늙어빠진 芝溶아, 그대의 詩魂을 짓밟아 죽이려던 强盜 日本帝國主義를 물리치는 民族解放의 노래를 부르라.


   「解放記念詩集」에 있는 -「新朝鮮報」에도 났었다지 - 「그대 돌아오시니」는 좀 위태위태한 詩다.

國祠에 邪神이
傲然히 앉은 지
죽엄보다 어두운
嗚呼 三十六年!

하며「天照大神」이 없어진 기쁨을 노래한 것은 神社參拜를 强迫당하던 敎員으로선 詩가 됨즉도 하지만 이 詩를 天主敎會堂 속에서「臨政要人」들 앞에서 朗讀하였다는 데는 贊成할 수 없다. 芝溶이 聖堂엘 다니든 臨政을 지지하든 宗敎는 담배요 芝溶도 政治的 動物이니까 눈감아 준다 하더라도「詩」를 敎會堂에까지 끌고 들어가 눈코 달린 政治家에게 獻納한다는 것은 純粹하다 할 수 없다.「詩」는「詩」를 위해서만 存在할 수 있는 것이다.


   허긴 예수도 - 떠가는 구름도 움켜잡을 수 있다고 믿었던 人類의 最大 詩人도 - 十字架에 못 박혀 죽을 때,「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하느님이시여 왜 나를 버리시었나)하고 絶望의 부르짖음을 남기었거늘 現代에 더욱이 朝鮮에서「詩」만 가지고 살라는 건 無理한 注文일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詩人이 天主敎堂이나「臨政」밖에 기대 설 데가 없다는 말이냐. 軍政廳을 가보고 와서「공기가 탁하고 복작거리는 광경이 지옥이야 지옥, 뭐니뭐니 해도 여기가 天堂이지」하고 梨專의 象牙塔을 讚美했다는 芝溶, 그렇다 누가 오건 官廳은 官廳이다 - 폰시오 필라투스 以來 人間性을 잃어버린 곳이 아니냐. 허지만 象牙塔을 避難處로 알아선 안 된다. 詩彈을 내쏘는 토치카가 되어야 한다. 尙虛의「靑春茂盛」이 梨專에서 失敗한 것은 그것이 散文이었기 때문이다. 身老心不老다. 芝溶이여 인디언 썸머를 노래하지 않으려나. 이것은 결코 비양거리는 것이 아니다. 누구모양 女學生을 데리고 高飛遠走하는 喜悲劇을 演出하지 않는限 그대의 戀情을 읊은들 罪될 것이 무엇이랴. 점잖은 개 부뚜막에 잘 오르는 朝鮮封建主義를 打破하는 데 詩人이 한몫 본다면 그런데서 차라리 빛나라.

자네는 人魚를 잡아
아씨를 삼을 수 있나?
......................................
.....................................
아무도 없는 나무 그늘 속에서
피리와 단둘이 이야기 하노니.

   日前에 吳章煥 말이 芝溶은 梨專의 先生이 되어 安易한 生活로 들어갔으니 詩가 나오기 어렵다 한 것은 同感이다.「文章」에서 그가 推薦한 詩人들은 朴斗鎭 趙芝薰 朴泳鍾을 비롯해 바야흐로 쪽빛보다 더 푸른 詩를 生産하고 있다. 芝溶의 시방 姿勢를 뛰려고 움추린 姿勢로만 보고싶다.


   언젠가 芝溶은 술에 곤드레만드레 醉하여 가지고「못쓰는 車票와 함께 찍힌 靑春의 조각이 흐려져 있고 病든 歷史가 貨物車에 실리어」가는 改札口에서 바래다주려 나온 吉鎭燮에게 손을 내저으며 폼으로 내려가면서,

「나처럼 좋은 親舊를 가진 사람은 幸福이야. 당신은 바래다주는 친구하나 없지 않소.」

하였다. 술과 親舊를 좋아하는 芝溶, 그대에겐 聖堂이고 臨政이고 가외의 것이다. 세익스피어도 親舊와 술을 마시다가 쓰러져 죽었다. 李太白이가 술 먹고 달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有名하지만 - .


   그러나 詩人도 밥 먹어야 하고 옷 입어야 한다. 李太白같은 詩人도 집에선 妻子가 쌀 사오라 옷 해줘 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하였다. 敬亭山 같은 安息處가 없이는 唐나라 貴族詩人도 구름과 새를 즐길 수 없었거늘 三十六年 동안 아니 五百하고 三十六年 동안 膏血을 빨린 朝鮮에서 詩를 읊으고 술을 마실 수 있었다는 것이 누구의 德인가를 認識하라.
  
   그대들 올아 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燦爛히 돌아오시니!

하고 그대가 맞이한 몇 사람 政治家보다도 이마에 땀을 흘려 낫을 잡는 사람, 헴머를 휘두르는 사람이 詩人을 밥 먹이고 옷 입히지 않았던가.「손발을 움츠리지 않고 五穀을 구별할 줄도 모르고 무슨 先生인가」(論語 微子) 하고 孔子를 꾸짖은 老人은 지팡이에 댓광우리를 뀌어 어깨에 메고 와서 지팡이를 꽂아 놓고 김을 메었다. 芝溶도 世上이 귀찮거든 田園으로 돌아가 自然詩人이 되는 것이 어떨고. 왜냐면 雜誌의 이름이「象牙塔」이라는 데 깜짝 놀라


「象牙塔이요? 人民戰線이 펼쳐졌는데「象牙塔」이 無事할까요 하였으니 말이다. 그렇다 人民戰線이 펼쳐졌다.

우리 모든 人民의 이름으로
우리네 人民의 共通된 幸福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人民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 吳章煥「病든 서울」

   그러나 芝溶이여 安心하라. 象牙塔은 人民의 나라에도 있다. 左翼小兒病者의 詩 아닌 詩를 보고 人民의 나라에는「詩」가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을 말지니 勞動者 農民 속에서「詩」가 용솟음쳐 나올 때 - 그것은 먼 將來의 이이기긴 하지만 - 가늘어지고 자자들었던 朝鮮의 詩가 우렁차게 三千里江山에 메아리칠 것이다.


   芝溶은 맑은 샘이어니 大河長江을 이루지 못할진데 차라리 끝끝내 白鹿潭인양 차고 깨끗하라.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白鹿潭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祈禱조차 잊었더니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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