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錫 評論集

藝術과 生活 - 李泰俊의 文章

이강기 2015. 9. 1. 22:15

藝術과 生活

 

     - 李泰俊의 文章 - 

                      - 金東錫

 

 

   朝鮮文壇에서 李泰俊氏처럼 文章에 關心이 많은 이도 드물다. 그가 編輯하던 雜誌의 이름을「文章」이라 한 것이라든지「文章講話」라는 好著를 내 놓은 것이라든지 가 모두 이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의 小說이 더 雄辯으로 이 事實을 말하고 있다. 말을 골라 쓰기로는 芝溶을 따를 자 없겠으나 그는 詩人이라 그것이 當然하다 하겠지만 小說家가 말 한마디, 한 줄글에도 彫琢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世上에서 尙虛의 글을 文章으로 치는 바이요 누구나 그의 글을 아름답다 한다.


   그러면 이것이 果然 小說家가 小說로서 成功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尙虛 自身이 世界文學의 最大傑作이라 斷言한 톨스토이의「戰爭과 平和」를 읽고 우리는 巨大하고 切實한 리얼리티에 壓倒를 當하기는 하지만 톨스토이의 文章이 어떻다는 意識이 생기지는 않는다. 매슈 아아놀드가「안나 카레니나」를 評하여「우리는 이것을 一片의 生活로 보아야 한다. .....著者는 現實을 生起하는 그대로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小說은 이렇게 藝術을 喪失하는 대신에 리얼리티를 얻었다.」한 것은 小說의 本質을 把握한 말이라 할 수 있다. 小說의 大路는 散文精神이다. 그리고 散文精神이란「辭達而己矣」(말은 目的을 達하면 그만이다)라는 孔子의 말로써 端的으로 表現할 수 있다. 文章은 手段에 지나지 않는다.「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極端으로 말한다면 이렇게도 比喩할 수 있다. 文章만 가지고는 小說이라 할 수 없다. 아니「生活」이라든가「現實」과 遊離된 小說은 꺾어다 甁에 꽂은 꽃과 같아서 그 壽命이 길 수는 없다. 하물며 자랄 수 있을까보냐. 


   그렇다면 尙虛의 小說을 읽고 누구나 먼저 그 文章의 印象이 前面에 나타나게 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 作家들로서 가장 反省해야 될 것은.....散文을 手藝化시키려는데서 일어나는 <欲巧反拙>이 아닐까. 이것은 누구에게보다 내 自身에게 하는 말이다.」(無序錄)

 

   尙虛는 自己의 小說을 이렇게 批判했다. 尙虛 自身이 文章에 置重했기 때문에, 읽는 우리에게도 文章의 意識이 앞서는 것이다. 그것은 小說로서는「欲巧反拙」이라 아니 할 수 없다. 人物이 躍動하는 生活, 이 生活을 讀者 스스로 體驗하게 만드는 것이 小說이다.「農軍」이나 「돌다리」같은 極少數의 例外的 作品을 빼 놓으면 그의 短篇은 擧皆가 詩的이오 隨筆的이다. 그의 長篇은 新聞小說인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短篇에다 물을 탄 것 같다.....短篇을 채우기에도 모자라는 그의「生活」과「現實」이 어찌 그보다 크고 깊은 長篇小說을 채울 수 있으랴.


   尙虛의 短篇은 모두 私小說이 아니면 骨董品을 어루만지는 솜씨로 平凡치 않은 人物을 이야기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作家自身이 그렇게 行動하고싶되 弱한 性格 때문에 따를 수 없는 寧越令監이기도 하고「달밤」의 主人公 黃壽建같은 반편이거나「서글픈 이야기」의 姜君같은 虛無主義者이기도 하다. 이러한 作品에서 李泰俊의 兩面을 抽象할 수 있다---살려고 꿈틀거리는 그와 모든 것을 傍觀한 그, 다시 말하면 生活者와 虛無主義者의 對立이다.


  「自然으로 돌아가야 할 건 西洋 사람들이지. 우린 반대야. 文明으로 都會地로 歷史가 만들어지는 데로 자꾸 나가야 돼.... 」이렇게 作家는 寧越令監의 입을 빌어 自己의 一面을 내세운다. 이러한 一面이「農軍」이나「돌다리」같은 一見 尙虛 답지 않은 作品을 쓰게 하였다. 또 記者요 作家로서 이렇게도 외쳤다.

 

  「나의 붓은 칼이 되자. 저들을 위해서 칼이 되자. 나는 한 잡지사의 기자가 된 것 보다 한 군대의 군인으로 입영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아무 일도 없소)

 

   나의 무덤 우에 花環대신 칼을 넣어 놔 달라 한 하이네의 氣槪를 연상케 하지 않는가. 하지만 붓은 結局 칼일 수가 없다. 칼을 찬 巡査部長에게 追放을 당하는「失樂園 이야기」의 主人公「나」는 生活戰線에서 敗北한 作家 李泰俊氏의 自畵像이다. 그래서 그는 戰爭中에 낚시질과 사냥을 다녔다. 또는「夕陽」에서와 같이 骨董品을 玩賞하며 古蹟을 巡禮했다. 아니「事實」한테 屈한 것은 尙虛 하나 뿐이 아니다. 朝鮮文壇 全體가 戰爭에게 壓倒당한 것이었다. 아니 世界를 통털어 文學은 第一線에서 總退却을 한 것이었다.「文章」이 廢刊되기 전에 英國에서는「Criteion」과「Mercury」가 없어졌다. 藝術은 暴風에 속절없이 슬어지는 한 송이 꽃이었다. 


   그러나 春園처럼 日本帝國主義의 走卒이 되지 않고 江原道 시골로 隱居해 버린 尙虛를 우리는 祝賀하지 않을 수 없다.「토끼 이야기」에 보듯이 그의 生活은 앞길이 탁 막히었다.    「현은 펄썩 주저앉을 듯이 먼 산마루를 쳐다보았다. 산마루엔 구름만 허이옇게 떠 있었다.」
   이것이「토끼 이야기」를 끝막은 文章이요 生活戰線에서 敗北한 尙虛 自身의 心境이었음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토끼 이야기」가 尙虛의 앞날을 約束하는 무엇이 있는 것은 그가 骨董品이나 墨畵를 바라보듯 하던 創作態度를 버리고 벌거벗고 生活 속에 뛰어들어 現實을 태클하려 한 데 있다. 眞正한 意味의 小說家로선 尙虛는「토끼 이야기」에서 出發하는 것이다.
   將來는 몰라도 아직까지의 作品活動을 總決算한다면 尙虛는 장르로선 小說形式을 取하였으되 그의 本質은 詩人인 데 있다해도 過言이 아니다.「靑春茂盛」같은 新聞小說까지 그 文章이 빚어내는 무지개 빛 燦爛한 느낌----詩가 讀者를 매료한다. 거기 나오는 人物들의 生活은 空中樓閣에 지나지 않는다.

 

 

  「實證, 實證, 이것은 散文의 肉體요 精神이다.」

 

라고 尙虛는「文章講話」에서 斷案을 내렸었지만 尙虛 自身은 그의 小說에서「實證」에 徹底하지 못했다. 小說의 實證精神이란 作家가 自我를 송두리채 털어서 生活에 投射하는 精神이다. 활을 떠난 화살같이 現實을 뚫고 들어가는 精神이다. 그런데 尙虛는 生活의 渦中에 뛰어들지 못하고 한 걸음 뒤에서 生活을 바라보았다.「그는 생각하였다. 단돈 삼십원으로도 달아날 수 있는 그 양복조끼에게는 세상이 얼마나 넓으랴! 싶었다.」(사냥). 골목에서 사라지는 「뒷방마님」의 뒷모양을 바라 본 感想만 가지고 小說을 쓰기도 했다. 尙虛의 文章이 繪畵的 그것도 墨畵인 것이 여기에 原因했을 것이다. 


   藝術家가 取할 수 있는 態度는 결국 둘밖에 없다. 生活을 肯定하느냐? 否定하느냐? 다시 말하면 藝術을 위한 藝術이냐? 生活을 위한 藝術이냐? 詩냐? 散文이냐? 尙虛는 形式은 散文을 取하였으되 精神은 詩人이었다.「서글픈 이야기」나「아담의 後裔」나「달밤」이나 다 主人公은 그 時代의 生活을 代表하는 人物이 아니다. 作家가 生活을 否定하는 데서 取材된 藝術的인 人間들이다.

 

 

   「나는 그(虛無主義者인 姜君)을 좋아하였다. 아니, 존경하였다.」

 

   이렇게 尙虛는 率直히 告白하고 다시 虛無主義를 버리고 現實로 돌아간 姜君이 眼鏡을 쓰고 金니를 박고 東西南北표가 달린 金時計줄을 달고 아들애 준다고 세 발 자전거를 사든 꼴을 보고 다음과 같이 然嘆長太息을 하였다.

 

   「나는 몹시 불쾌하다. 차라리 강군이 전날의 그 면목으로 밥값에 붙잡힌 누추한 여관에서 나를 기다린다면 나는 얼마나 반가워 뛰어가랴. 그러나 강군은 지금 금시계를 차고 금니를 박고 시원한 사랑을 치고 맛난 육식으로 나를 기다리겠노라 한다. 허허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左翼이 아니었던 尙虛가 부르조아의 本色을 나타낸 姜君을 보고 서글프게 느낀 것은 階級的意識이 아니라 詩人的인 理想 - 그것은 究極에 니힐리즘이다 -을 가지고 부르조아的인 生活을 否定한 데 지나지 않는다. 否定을 爲한 否定, 東洋人의 理想이 自古로 이러했다. 尙虛라는 號 自體가「虛」를 추구하는 李泰俊氏의 藝術觀을 雄辯으로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尙虛의 니힐리즘은 最近에 이르러서는 바하의 音樂같이「無限」을 바라보고 羽化登仙했다.


   「오릉의 아름다움은 이 처녀가 발견한 이 소나무의 중턱에서가 가장 효과적인 포-즈일 것 같았다. 볼수록 그윽함에 사무치게 한다. 능이라기엔 너무나 소박한 그냥 흙의 모음이다. 무덤이라기엔 선에 너무나 애착이 간다. 무지개가 솟듯 땅에서 일어 땅으로 가 잠긴 선들이면서 무궁한 공간으로 흘러간 맛이다. 매암이 소리가 오되 고요하다. 고요히 바라보면 울어야 할지 탄식해야 할지 그냥 나중엔 멍-해지고 만다.」(夕陽)

 

   이것은 小說의 一節이라기보다 한 篇 詩가 아닌가. 尙虛의 文章이 아름다운 秘密이 어디 있는지 이것으로 짐작하기에 足할 것이다. 本來 美란「詩」의 世界지「散文」의 世界가 아니다. 壓迫과 搾取가 있는 社會란 醜하기 짝이 없는 것이며 그 壓迫과 그 搾取에 反抗하는 精神은「힘」이지(즉 量的인 것이다) 우리가 여태껏 使用하던「美」라는 槪念은 散文精神이 될 수 없다. 그러면 左翼 藝術觀은 從來 모든 美한 것을 否定하느냐?「詩」란 歷史的으로 볼 때 貴族社會의 産物이다. 단테의「神曲」이나 세익스피어의「리어王」이 貴族의 精神을 形象化한 것은 明白한 事實이며 特히 後者의 戱曲에 있어서 貴族階級의 말은 귀글(韻文)로 表現하고 市民階級의 말은 줄글(散文)로 表現했다는 것은 가볍게 볼 수 없는 事實이다. 封建社會가 무너질 때 詩도 무너져 散文이 되었다.

 

   「부르조아지이는 政權을 잡자마자 모든 封建的, 家長的, 牧歌的 諸關係를 破壞해 버렸다.....宗敎的 情熱이라든가 武士的 感激이라든가 平民的 人情이라든가 하는 神聖한 渴仰心을 어름같이 차디찬 利己的 打算의 물 속에 가라앉히고 말았다. 사람의 價値를 交換價値 속에 사라져 없어지게 하고 무수한 일껏 얻은 特許的 自由대신에 다만 하나인 말못할 商業의 自由를 設立했다.」(共産黨宣言)

 

 

   부르조아지이는 文學에 있어서도「詩」를 否定하고「散文」을 생산했다. 春園의「無情」이 젊은이들을 美國으로 留學보내고 大團圓에서는 工場과 産業을 讚美하는 文章을 넣었다. 春園은 朝鮮土着 부르조아지이를 代辯하는 作家다. 이미 春園은 否定되었다. 左翼의 散文이 誕生할 때는 왔다. 朝鮮의 散文이 完全히 脫皮해야 될 때는 왔다. 


   그러나 그것이 貴族社會의 것이든 市民社會의 것이든 藝術은 藝術이다. 다만 그것이「純粹」한 點에 있어서 貴族社會의 藝術이 市民社會의 藝術보다 優越하다는 것은 疑心할 餘地가 없다. 바하, 모차르트의 音樂이나 라파엘의 繪畵나 단테의 文學만치 昻揚된 詩精神이 어떤 市民社會에 또 있었느냐.「市民의 敍事詩」라는 小說은 不純하기 짝이 없었다. 그 標本을 우리는 春園의 글과 사람에서 불 수 있는 것이다. 朝鮮文壇이 人民의 審判을 받을 때가 오겠지만 藝術家는 꽃나무가 될 수는 없다. 아니, 꽃나무라 假定하자. 그 나무에 누가 물을 주느냐 하는 것이 問題가 된다. 서울에서 복작거리는 藝術家들도 革命의 暴風 속에서는 純粹할 수 없으리라. 左냐? 右냐? 朝鮮文化는 시방 歷史的 飛躍을 하느냐? 뒤로 물러서느냐? 이는 오로지 朝鮮文化人의 自己決定에 달려 있다. 


   民族解放後 革命段階인 오늘날 藝術家들이 果然 어떠한 役割을 할지. 自由란 藝術家들의 金科玉條이지만 朝鮮民族 全體의 自由를 팔아서 몇 사람 인텔리의 양키이的 自由를 獲得하느냐. 몇 사람 인텔리의 自由를 犧牲함으로써 朝鮮民族 全體의 自由를 獲得하느냐.


   尙虛여 決斷하라. 詩와 散文 새중간에서 徘徊할 때가 아니다.「將來에 成立할 우리 政府의 文化藝術政策이 서고 그 機關이 誕生하여, 이 모든 任務를 遂行하게 될 때까지 우선 現段階의 文化諸領域의 統一的 連絡과 各 部門 活動의 秩序化를 爲하여 形成된 協議機關으로서 現下 모든 文化의 總力을 모아 新朝鮮建設에 이바지하고자」하는 朝鮮文化建設 中央協議會 朝鮮文學 建設本部 中央委員長인 尙虛가 이제 또「純粹」를 主張할 수는 없는 立場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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