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錫 評論集

詩와 行動 - 林和論

이강기 2015. 9. 1. 22:07

詩와 行動

 

     - 林和論 -

               - 金東錫

 

   「文協」의 議長인 林和氏가 政治的으로 民族解放을 위하여 얼마만한 役割을 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詩集「玄海灘」을 통해서 본다면 그는 詩人이면서 詩人이 아니었다. 한때 林和의 이름을 드날리게 한「네거리의 順伊」를 다시 한번 보자.

 

눈바람 찬 불쌍한 都市 鍾路 복판에 順伊!
너와 나는 지나간 꽃 피는 봄에 사랑하는 한 어머니를
눈물 나는 가난 속에서 여의었지!
그리하여 너는 이 믿지 못할 얼굴 하얀 오빠를 염려하고,
오빠는 가냘핀 너를 근심하는,
서글프고 가난한 그 날 속에서도
順伊야, 너는 마음을 맡길 믿음성 있는 이곳 靑年을 가졌었고,
내 사랑하는 동무는..............
靑年의 戀人 근로하는 女子 너를 가졌었다.

 

   이 詩는 編順이 年代順으로 된「玄海灘」맨 처음에 있고 그 以前의 것은「轉向期의 作品」이오 그 보다도 前의 것은「어린 다다이스트이었던 時期의 作品」이며 이 詩集이 林和氏가「作品 위에서 걸어 온 精神的 行程을 짐작하기엔 過히 不足됨이 없다」(後書) 하였으니 이것으로서 世上에서 말하는 프로 詩人 林和를 論하기 시작하자.
   同志가 檢擧된 뒤면(그 여윈 손가락으로 지금은 굳은 벽돌담에다 달력을 그리겠구나!) 鍾路 네거리에서 順伊를 붙들고 울 것이 아니라 무슨 行動이 있어야 할 것이지「불쌍한 都市」니「눈물나는 가난」이니「얼굴 하얀 오빠」니「가냘핀 너」니「서글프고 가난한 그 날」이니 하다가,

 

어서 너와 나는 번개처럼 두 손을 잡고,
내일을 위하여 저 골목으로 들어가자.

 

했으니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간 센티멘탈리즘이 아니고 무엇이냐. 누가 林和의 詩를 일컬어「얻은 것은 이데올로기뿐이오 잃은 것은 藝術이라」하는가. 이 詩 어느 구석에 剩餘價値 學說과 唯物史觀이 숨어 있다는 말이냐.「믿지 못할 얼굴 하얀」林和! 그와 대조되는 行動人도「용감한 사내」「근로하는 靑年」이라 하였을 뿐 抽象的이다. 알짱 具體的이라야 할 데 가서는 抽象的이 되어버리는 것이 詩集「玄海灘」전체가 지니고 있는 흠이다. 檢閱! 그렇다. 罪는 日本帝國主義에 있다. 하지만「階級을 위해 울었다」는 것 만으로선 詩人도 될 수 없고 共産主義者도 될 수 없다. 운 사람이 어찌 林和뿐이랴. 무솔리니 같은 者도「二十前에 社會主義者가 아니면 사람이 아니다」하지 않았던가.


   形象化가 가장 잘 된 다시 말하면 眞實을 가장 잘 表現한「골프場」에서도 林和는 센티멘탈리즘을 벗어나지 못했다.

 

까만 발들이 바쁘게 지내간다.
이슬방울이 우수수 떨어지며
흙 새에 끼었던 흰 모래알이
의붓자식처럼 한 귀퉁이에 밀려난다.
그러면 어린 풀닢들이 느껴 운다.

 

   이렇게 感傷的인 詩가 또 어디 있겠는가. 흰 모래알이 의붓자식이 되고 풀잎들이 느껴 우는 世界 - 이런 世界는 詩人의 觀念속에나 있지 實在할 수는 없다. 그러면 林和는 왜 이다지도 슬펐을까.

 

아이들아, 너희들은 공을 물어오는 사냥개!

 

   아이들을 이렇게 부려가며「담뱃대 같은 공채」를 가지고 골프를 하는 부르조아지를 批判하려면「資本論」이 되어버리니 林和는 詩人인지라 불쌍한 아이를 붙들고 울다가 모래알과 풀 포기에까지 그의 눈물이 스며든 것일까. 아니다. 肺病으로 다 죽게된 文學靑年이 城밖을 거닐다가 골프場 밖에서 멍하니 바라볼 때, 시시덕거리는 健康한 有閑男女를 볼 때, 장난해야 될 나이의 아이들이 어른의 장난감을 주어다 주는 光景을 볼 때, 히스테리컬하지 않으면 센티멘탈하게 되는 것이었다. 슬픈 林和, 가난한 林和, 病든 林和. 그러나 골프하는 부르조아지를 쫓아가서 주먹으로 지를 勇氣도 없고 골프공을 주어오는 나 어린 프롤레타리아를 얼싸안고 목놓아 울 愛情도 없는 林和였다. 春園이 民族主義者然하되 - 事實은 호랑이를 그린다고 개를 그린 作家이지만 - 詩를 쓰면 센티멘탈리즘의 捕虜가 되어버리는 것과 매 한가지로 共産主義者然하는 林和의 詩가 感傷的인 理由는 그도 또한 病든 知識人이기 때문이었다. 鍾路 네거리에서 順伊를 붙들고 울었다는 詩가 春園의

형제여 자매여
남녀를 그리워 그 가슴속이 그리워,
성문밖에 서서 울고 기다리는 나를
보는가 - 보는가.

 

한 詩와 무엇이 다르냐. 그 때나 이 때나 民族이든 階級이든 정말 위할 마음이 있거든 암말도 말고 民族과 階級을 위하여 實行하라. 春園이 民族을 위해서 쓴다는 詩나 林和가 階級을 위해서 쓴다는 詩가 다 詩로서 失敗한 것은 둘 다 不純했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네들 하나를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이 民族을 위하느니 階級을 위하느니 하고 그것도 散文이 아니오 純粹해야 할 詩로 떠들어댄다는 것은 病든 知識人의 自意識이 낳은 悲哀였다. 


   또 檢閱 檢閱하지만「네거리의 順伊」가 파스되는 檢閱은 너무 허술해서 林和의 詩조차 허술한 울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기에 日帝의 壓迫이 甚해가서「玄海灘」의 詩들이 壓殺을 당할 지경이 되었을 때 정말 詩가 誕生하였다.

詩人의 입에
마이크 대신
재갈이 물려질 때
노래하는 열정이
沈默 가운데
최후를 의탁할 때
바다야!
너는 肉體의 곡조를
伴奏해라.

 

이「바다의 讚歌」가 林和의 詩集 맨 끝에 있고 林和 自身이「<바다의 讚歌>는 이로부터 내가 作品을 쓰는 새 領域의 出發點으로써 특히 넣었다고 할 수 있다」한 것은 興味있는 事實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林和는 詩人으론 아직도 出發 前이다. 芝溶처럼 單純치 않은 林和인지라 詩에만 滿足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詩를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8月15日 以後「文協」의 議長이 되어 文化政策家로 발벗고(?) 나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林和의 觀念 속엔 얼마나 굉장한 詩가 들었는지 모르되 作品行動으로 볼 때 아직 一家를 이룬 詩人이라 할 수는 없다.


   「感激癖이 詩人의 美名이 아니고 말았다. 이 非定期的 肉體的 地震 때문에 叡智의 水源이 崩壞되는 수가 많았다. 情熱이란 賞揚하기 보담도 어떻게 整理할 것인가 官僚가 地位에 自慢하듯이 詩人은 貧乏하니까 情熱을 唯一의 것으로 자랑하던 나머지 턱없이 침울하지 않으면 슬프고 울지 않으면 히스테리컬 하다... 」(鄭芝溶 「詩의 威儀」)(文章1.10).


   이것은 林和評이 아니면서도 - 事實은 林和評인지도 모른다 -「玄海灘」에 適用하면 빈틈없다. 感激癖이「玄海灘」의 詩들을 익기 전에 땅에 떨어진 풋사과의 꼴을 만들어 버리었다. 感激符號(!)가 200 가까이 사용되었으니 詩 하나에 平均 넷 以上을 使用한 폭이며 感激符號(!)의 代用品이라고 볼 수 있는 疑問符號(?)가 150 이상이 나오고「오오」라는 感歎詞만 해도 서른 아홉인가 나온다. 이 밖에도「아아」같은 感歎詞와

 

願컨대 거리여! 그들 모두에게 傳하여다오!
잘 있거라! 故鄕의 거리여!

 

하는 種類의 命令形이 많다.「靑年」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도 이 詩集의 特徵이오 絶叫니 怒號니 하는 말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日帝의 壓迫에 못 이겨 몸부림친 靑春의 姿態다. 하지만 울고 몸부림치는 것은 예술로선 詩 以前이오 政治로선 센티멘탈리즘이다. 林和氏 自身이 누구보다 그것을 더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後書에서「쓸 때에 그렇게 熱中했던 所謂 努力의 所産이란 것이 뒷날 돌아보면 이렇게 초라한가를 생각하면 부끄럽다기 보다도 一種 두렴이 앞을 선다」고 告白하였을 것이다. 一言以蔽之하면「玄海灘」의 詩는 거의 다 流産된 情熱이랄까. 詩는 感激의 培養이 아니라 感情의 敎養인 것이다. 사과나무도 野生으로 제멋대로 자라나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어늘 詩의 흙은 과일의 정성스런「剪定」없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보냐. 崔載瑞가 林和의 詩는 아직 粗雜함을 免치 못하면서도 커다란「內部世界」를 가지고 있다 한 것은 詩가 뭔지 백판 모르고 한 소리요 詩는 表現을 떠나서 存在하는 것이 아니니 表現으로서 失敗한 글은 火山같은「內部世界」에서 터져 나왔다 해도 詩라 할 수 없다. 또 林和의 詩를 무슨 工場의 機械소리처럼 요란스럽게 만든 原因의 하나는 林和는 詩를 目的으로 하지 않고 手段으로 썼다는 것이다. 詩와 行動 새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는 自意識이 林和로 하여금 詩의 세계에 安住하지 못하게 하고 壓力의 强한 現實을 詩로서 움직여보려는 靑春의 蠻勇이 그를 詩人으로서 誤謬를 犯하게 한 것이었다. 물론 우리들 靑年時代에 누구나 한번은 犯해야 되는 아름다운 誤謬이지만 -.


   朝鮮의 詩도 이미 서른의 고개를 넘었다. 靑春의 興奮만 가지고 詩를 쓰는 過誤는 淸算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玄海灘」의 詩가 興奮뿐이라는 것은 絶對 아니고 오히려 崔載瑞 등이 떠들어대는 이른바「知性」이 너무 빠져 나와서 詩의 音樂을 喪失하게 하였다. 그 證據로는「玄海灘」은 처음부터 끝까지 줄글(散文)로 내리써도 조금도 어긋나는 데가 없을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玄海灘」은 散文을 잘라서 詩모양 늘어놓은 詩集 아닌 詩集이다. 眞正한 知性이란 分類할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니 自己의 世界에서 詩的인 것과 散文的인 것을 따로 따로 놓아서 表現하지 못하고 宇宙가 코스모스가 되기 前 混沌이었을 때와 같은 思想을 羅列한다는 것은 科學의 世紀인 現代에 있어서 知性의 所産이라 할 수는 없다.

分明히 太初에 行爲가 있다....

고「地上의 詩」는 結論지었지만 詩는 分明히 말이지 行爲는 아니다. 詩를 떠나서 詩人의 行爲가 있을 수 없다면 詩는 行爲가 되겠지만.

 

   林和여 自意識을 淸算하고 現實 속에 自我를 송두리째 담아버려라. 農民이 되든지 勞動者가 되든지 그때 비로소 푸로 詩人으로서 林和가 이 땅의 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知識人이 農民이 된다든지 勞動者가 된다는 것은 不可能에 가깝다. 그래서 林和의 詩가 8.15 이후의 것도 自意識을 버리지 못했다. 


   허긴 林和氏가 詩人이 되어야만 맛이 아니다. 政治의 舞臺에서 進步的인 役割을 하고 있는 그를 볼 때 明哲保身을 金科玉條로 하는 朝鮮의 知識階級을 위하여 模範이 되어주기를 祝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가「文協」의 議長이 되었을 때도 文化界에서는 聲援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文協」이 龍頭蛇尾가 된 것은 原因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애초에「한 데 뭉치자」는 式의 無原則統一이었다는 것이 最大原因이다. 그러니 8.15의 興奮도 가시고 해서 文化人들도 自己決定段階에 이르렀으니 議長인 林和氏가 뚜렷한 統一案을 내세워 가지고「文協」을 改造한다면 다시 蘇生하는 길이 있을 것이다. 組織體란 애초부터 대가리와 팔다리가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오 細胞를 形成히야 되는 것이니 적어도 그 自體로서 살고 成長하는 것이라야 한다.「文協」이 처음엔 크고 차차 적어졌다면 그것이 組織이 아니라 名簿였다는 것을 意味하게 된다. 더군다나 그 속에 文化人이 아니면서 文化人 행세를 하는 不純分子가 끼어 있다면 그 組織體는 날이 갈수록 內部에 龜裂이 커지는 것이다.


   林和氏가「玄海灘」에서 詩人으로서 失敗한 것은 現代人으로선 不名譽도 아무 것도 아니다.「玄海灘」의 詩가 行動하려고 몸부림치던  그의 怒號요 絶叫였다면 이제야 말로 行動人으로서 빛날 때가 왔다. 自由新聞에 發表된 詩「길」은 氏의 이러한 決意의 表明이라고 보면 意味深長한 것이다.(이것이 그냥 詩에 그친다면 또 하나 失敗한 詩일 것이다).

 

말 두렵지 않고
말 믿지 아니 할 것을
나에게 익혀준 그대는
기인 沈默에 살어
어려운 行動에 죽고
.....................................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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