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行動
- 林和論 - - 金東錫
「文協」의 議長인 林和氏가 政治的으로 民族解放을 위하여 얼마만한 役割을 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詩集「玄海灘」을 통해서 본다면 그는 詩人이면서 詩人이 아니었다. 한때 林和의 이름을 드날리게 한「네거리의 順伊」를 다시 한번 보자.
눈바람 찬 불쌍한 都市 鍾路 복판에 順伊!
이 詩는 編順이 年代順으로 된「玄海灘」맨 처음에 있고 그 以前의 것은「轉向期의 作品」이오 그
보다도 前의 것은「어린 다다이스트이었던 時期의 作品」이며 이 詩集이 林和氏가「作品 위에서 걸어 온 精神的 行程을 짐작하기엔 過히 不足됨이
없다」(後書) 하였으니 이것으로서 世上에서 말하는 프로 詩人 林和를 論하기 시작하자.
어서 너와 나는 번개처럼 두 손을 잡고,
했으니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간 센티멘탈리즘이 아니고 무엇이냐. 누가 林和의 詩를 일컬어「얻은 것은 이데올로기뿐이오 잃은 것은 藝術이라」하는가. 이 詩 어느 구석에 剩餘價値 學說과 唯物史觀이 숨어 있다는 말이냐.「믿지 못할 얼굴 하얀」林和! 그와 대조되는 行動人도「용감한 사내」「근로하는 靑年」이라 하였을 뿐 抽象的이다. 알짱 具體的이라야 할 데 가서는 抽象的이 되어버리는 것이 詩集「玄海灘」전체가 지니고 있는 흠이다. 檢閱! 그렇다. 罪는 日本帝國主義에 있다. 하지만「階級을 위해 울었다」는 것 만으로선 詩人도 될 수 없고 共産主義者도 될 수 없다. 운 사람이 어찌 林和뿐이랴. 무솔리니 같은 者도「二十前에 社會主義者가 아니면 사람이 아니다」하지 않았던가.
까만 발들이 바쁘게 지내간다.
이렇게 感傷的인 詩가 또 어디 있겠는가. 흰 모래알이 의붓자식이 되고 풀잎들이 느껴 우는 世界 - 이런 世界는 詩人의 觀念속에나 있지 實在할 수는 없다. 그러면 林和는 왜 이다지도 슬펐을까.
아이들아, 너희들은 공을 물어오는 사냥개!
아이들을 이렇게 부려가며「담뱃대 같은 공채」를 가지고 골프를 하는 부르조아지를 批判하려면「資本論」이 되어버리니 林和는 詩人인지라 불쌍한 아이를 붙들고 울다가 모래알과 풀 포기에까지 그의 눈물이 스며든 것일까. 아니다. 肺病으로 다 죽게된 文學靑年이 城밖을 거닐다가 골프場 밖에서 멍하니 바라볼 때, 시시덕거리는 健康한 有閑男女를 볼 때, 장난해야 될 나이의 아이들이 어른의 장난감을 주어다 주는 光景을 볼 때, 히스테리컬하지 않으면 센티멘탈하게 되는 것이었다. 슬픈 林和, 가난한 林和, 病든 林和. 그러나 골프하는 부르조아지를 쫓아가서 주먹으로 지를 勇氣도 없고 골프공을 주어오는 나 어린 프롤레타리아를 얼싸안고 목놓아 울 愛情도 없는 林和였다. 春園이 民族主義者然하되 - 事實은 호랑이를 그린다고 개를 그린 作家이지만 - 詩를 쓰면 센티멘탈리즘의 捕虜가 되어버리는 것과 매 한가지로 共産主義者然하는 林和의 詩가 感傷的인 理由는 그도 또한 病든 知識人이기 때문이었다. 鍾路 네거리에서 順伊를 붙들고 울었다는 詩가 春園의
형제여 자매여
한 詩와 무엇이 다르냐. 그 때나 이 때나 民族이든 階級이든 정말 위할 마음이 있거든 암말도 말고 民族과 階級을 위하여 實行하라. 春園이 民族을 위해서 쓴다는 詩나 林和가 階級을 위해서 쓴다는 詩가 다 詩로서 失敗한 것은 둘 다 不純했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네들 하나를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이 民族을 위하느니 階級을 위하느니 하고 그것도 散文이 아니오 純粹해야 할 詩로 떠들어댄다는 것은 病든 知識人의 自意識이 낳은 悲哀였다.
詩人의 입에
이「바다의 讚歌」가 林和의 詩集 맨 끝에 있고 林和 自身이「<바다의 讚歌>는 이로부터 내가 作品을 쓰는 새 領域의 出發點으로써 특히 넣었다고 할 수 있다」한 것은 興味있는 事實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林和는 詩人으론 아직도 出發 前이다. 芝溶처럼 單純치 않은 林和인지라 詩에만 滿足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詩를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8月15日 以後「文協」의 議長이 되어 文化政策家로 발벗고(?) 나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林和의 觀念 속엔 얼마나 굉장한 詩가 들었는지 모르되 作品行動으로 볼 때 아직 一家를 이룬 詩人이라 할 수는 없다.
願컨대 거리여! 그들 모두에게 傳하여다오!
하는 種類의 命令形이 많다.「靑年」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도 이 詩集의 特徵이오 絶叫니 怒號니 하는 말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日帝의 壓迫에 못 이겨 몸부림친 靑春의 姿態다. 하지만 울고 몸부림치는 것은 예술로선 詩 以前이오 政治로선 센티멘탈리즘이다. 林和氏 自身이 누구보다 그것을 더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後書에서「쓸 때에 그렇게 熱中했던 所謂 努力의 所産이란 것이 뒷날 돌아보면 이렇게 초라한가를 생각하면 부끄럽다기 보다도 一種 두렴이 앞을 선다」고 告白하였을 것이다. 一言以蔽之하면「玄海灘」의 詩는 거의 다 流産된 情熱이랄까. 詩는 感激의 培養이 아니라 感情의 敎養인 것이다. 사과나무도 野生으로 제멋대로 자라나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어늘 詩의 흙은 과일의 정성스런「剪定」없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보냐. 崔載瑞가 林和의 詩는 아직 粗雜함을 免치 못하면서도 커다란「內部世界」를 가지고 있다 한 것은 詩가 뭔지 백판 모르고 한 소리요 詩는 表現을 떠나서 存在하는 것이 아니니 表現으로서 失敗한 글은 火山같은「內部世界」에서 터져 나왔다 해도 詩라 할 수 없다. 또 林和의 詩를 무슨 工場의 機械소리처럼 요란스럽게 만든 原因의 하나는 林和는 詩를 目的으로 하지 않고 手段으로 썼다는 것이다. 詩와 行動 새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는 自意識이 林和로 하여금 詩의 세계에 安住하지 못하게 하고 壓力의 强한 現實을 詩로서 움직여보려는 靑春의 蠻勇이 그를 詩人으로서 誤謬를 犯하게 한 것이었다. 물론 우리들 靑年時代에 누구나 한번은 犯해야 되는 아름다운 誤謬이지만 -.
分明히 太初에 行爲가 있다.... 고「地上의 詩」는 結論지었지만 詩는 分明히 말이지 行爲는 아니다. 詩를 떠나서 詩人의 行爲가 있을 수 없다면 詩는 行爲가 되겠지만.
林和여 自意識을 淸算하고 現實 속에 自我를 송두리째 담아버려라. 農民이 되든지 勞動者가 되든지 그때 비로소 푸로 詩人으로서 林和가 이 땅의 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知識人이 農民이 된다든지 勞動者가 된다는 것은 不可能에 가깝다. 그래서 林和의 詩가 8.15 이후의 것도 自意識을 버리지 못했다.
말 두렵지 않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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