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錫 評論集

朝鮮文化의 現 段階

이강기 2015. 9. 1. 22:20

朝鮮文化의 現 段階

 


       - 어떤 文化人에게 주는 글 -
              - 金東錫

 

   最近 어떤 雜誌 卷頭에「讀書論」이라 題하여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藝術에 關한 敎養도 이 땅에서는 一般的으로 大端히 貧弱하다. 어떻게 보면 日帝 三十六年 동안에 그래도 命脈을 維持해 온 것은 藝術方面 뿐이오 그러니 만치 藝術方面은 다른 方面보다 좀 나은 것 같이도 생각이 되나 나의 보는 바로는 안즉 멀었다. 하늘의 별같이 數많은 政界의 要人중 失禮의 말이나 文學 美術 音樂 等에 關해 無識程度를 벗어난 이가 몇 분이나 되느뇨. 이러한 意味에서 나는 數個月 前에 美國 라이프誌 表紙에서 呂宋煙을 물고 칸바스를 向해 彩筆을 휘두르고 있는 前 英國首相 처칠氏의 寫眞을 보고 역시 우리와는 다르구나 하는 感銘을 깊이 하였다.」

   이 글을 쓴 분은 한 때 朝鮮에서 손꼽힌 文化人의 한 사람이다. 그러니 만치 八.一五 以後에는 이렇다 할 文化的 活動을 하지 않았건만 雜誌編輯者가 特別待遇를 해서 참 오래간만에 쓴 이 분의 글을 卷頭에 실었을 것이다. 이 분의 이름을 말하지 않더라도 讀者는 이 引用文만 보더라도 이 분이「文學 美術 音樂 等」에 關해서 敎養이 높으신 분이라는 것을 判斷하기에 不足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雜誌編輯者와 더불어 이 분의 文化觀을 重要視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引用한 글을 分析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命題를 꺼낼 수 있다.

(一) 朝鮮民族은 文化的 敎養이 大端貧弱하다.
(二) 朝鮮의 政治的 指導者들은 大部分이 文化에 對해서 無識하다.
(三) 前 英首相 처칠氏는 文化의 敎養이 높다.

   第一 命題에 對해선 異論이 있을 수 없다. 朝鮮民族의 主體인 勞動者 農民은 「文學 美術 音樂 等」커녕 낫 놓고 격字도 모르게 시리 만들어 논 것이 日本帝國主義다. 一年 삼백 예순 닷새 뼈가 빠지도록 勞動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운 그들이었다. 朝鮮民族의 九十퍼어센트 以上을 차지한 勤勞階級이 이러한 環境에 있었으니 文化가 特殊한 個人에 의지해서 간신히 命脈을 이어 온 것은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朝鮮民族의 文化的 敎養이 貧弱할 수밖에.


   第二命題는 좀 註를 달아야 할 것이다. 朝鮮의 政治的 指導者를「하늘의 별같이 數많은 政界의 要人」이라 한 이 분의 意圖를 어떻게 理解할 것인가. 左건 右건「政界의 要人」이 하늘의 별같이 數가 많다는 말은 文句 그대로 理解하기는 困難하다. 誇張이 아니면 諷刺일 것이다. 리얼리스트로 自處하는 이 분이 어찌해서「政界의 要人」을 修飾하는데 모 푸로프르(適語)를 쓰지 않고 이렇게 理解하기에 뒤숭숭한 文句를 使用했을까. 이것은 Obscurum per Obscurius인지 모르나 精神分析學的으로 理解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卽 이분은 文化의 敎養이 없는 者들이 文化의 敎養이 높은 自己보다도 政治的으로 要人이 된 것에 對해서 아니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當然히「政界의 要人」이 되어야 할 自己는 되지 못했는데 다시 말하면 自己같은 사람을 빼놓고는「政界의 要人」이 있을 수 없는데「文學 美術 音樂 等에 關해서 無識程度를 免하지 못한」사람들이「政界의 要人」이 된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이 비위에 맞지 않아 하늘의 별같이 數가 많아 보인 것이다. 이것은 이 분 뿐 아니라 朝鮮의 이른바 文化人들이 품고 있는 潛在意識이다. 政治를 輕視하는 文化人은 民族의 政治的 運命이 어찌되든 吾不關焉이라는 藝術至上主義者거나 이러한 潛在意識의 所有者일 것이다.


   朝鮮의 政治的 指導者는 監獄이나 地下室에서「呂宋煙을 물고 칸바스를 向해 彩筆을 휘두르고 있는 前 英首相 처칠氏」처럼 한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植民地를 가진 帝國의 政治家와 帝國의 植民地의 政治家가 같을 수 없는 것이다. 日帝 三十六年동안 朝鮮에서 詩나 읊으고 그림이나 그리고 바이올린이나 키면서 民族解放의 鬪士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러므로 시방 朝鮮 政治家의 比重을 文化의 敎養程度로 저울질해서는 안 될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文化人들이 朝鮮政治의 領導權을 主張할 수는 없는 것이다. 日帝時代엔 기껏해야 現實에서 逃避해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政治的으로 過誤를 犯하지 않는 사람이 드문 文化人들이 인제 와서는 政治의 領導權을 主張한다면 機會主義者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民族이 또다시 壓迫을 받게 되면 또다시 文化속으로 逃避하거나 反動을 하거나 할 것이다. 事實 朝鮮民族의 歷史的 發展을 妨害하던 封建主義와 日本帝國主義는 아직도 이 땅에서 發惡을 하고 있어서「라이프」誌의 表紙나 보고 있는 샌님이「政界의 要人」이 될 수 없는 情勢이다. 그러므로 第二命題는 이렇게 뒤집어 꾸며야 할 것이다.「朝鮮의 文化人은 大部分이 政治에 對해서 無氣力하다.」


   第三命題는 文化의 本質을 規定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처칠의 呂宋煙과 彩筆」은 文化를 象徵한다. 그러면 果然 이것이 옳은 文化觀인가? 처칠은「文學 美術 音樂 等」보다는 탱크와 大砲를 더 所重히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은 앙드레 모로아가「佛蘭西는 敗했다」에서 如實히 알려주고 있다. 戰爭을 準備하지 않고 文化에만 專心한다고 佛蘭西의 인테리겐챠를 辱한 사람이 처칠이다. 그 사람이「라이프」誌 表紙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해서 文化人이라고 速斷할 수는 없다. 우리는 무솔리니가 바이올린을 키는 寫眞을 雜誌에서 보아왔고 히틀러가 畵家라는 新聞報道를 읽어왔다. 허지만 그들은 文化人이기커녕 가장 무서운 文化의 敵 - 파시스트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처칠의 關心이 탱크나 大砲인 것은 事實이지만 그것은 政治家로서의 처칠이지 人間 처칠은 아니다.「呂宋煙을 물고 칸바스를 向해 彩筆을 휘두르고 있는」처칠이야말로 人間 처칠인 것이다. 이러한「人間性」이 朝鮮의 政治家에겐 缺如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見解는 이 분이「讀書論」에서 비로소 披瀝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佛蘭西 文化人 앙드레 지드가「蘇聯紀行」에서 蘇聯엔 人間性이 눌려있다고 말했을 때 이 분이 新聞紙上에서 贊意를 表하다가 코를 잡아 떼인 일이 있었다. 이런 것 저런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처칠의 呂宋煙과 彩筆」을 보고「역시 우리와는 다르구나 하는 感銘을 깊이 하였다」한 것은 朝鮮 政治家에서 發見할 수 없는「人間性」이 처칠 같은 貴族的 政治家에게는 豊富하게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처칠의 呂宋煙과 彩筆」은 果然 우리가 오늘날 우러러 볼만한 人間性의 象徵인가?「失禮의 말이나」呂宋煙을 물고 칸바스를 向해 彩筆을 휘두르는 前英首相 처칠氏는

 

菜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하던 陶淵明의 現代的 케리커츄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陶淵明을 가지고도 文化를 代辯시킬 수 없는 오늘 朝鮮의 現實이어든 하물며 그 俗된 亞流에 지나지 않는 처칠이랴. 陶淵明을 흉내내어 菊花를 鑑賞하는 國民黨의 頑固派들을 辱한 魯迅의 글이 생각난다. 처칠의 呂宋煙과 彩筆에 얼이 빠지는 샌님은 한번 다시 自己의 文化意識을 內省함이 있을과저.


   그러나 現實을 떠난 桃源境에서 人間性을 찾으려 한 陶淵明의 理想이 오늘날도 朝鮮 文化人 속에 뿌리 깊이 숨어있다는 事實을 否認할 수는 없다. 世界를 둘로 갈라 논 두 가지 對立되는 巨大한 事實이 이 땅에서 부딪치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이 때에 그 混濁한 속에서도 오히려 티끌 한 점 없는 眞空과 같은 靜謐을 찾으려는 文化人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讀書論」의 筆者도 善意로 解釋하면 이러한 사람의 하나일 것이다. 自古로 東洋文化의 理念은 現實을 支配하려는 데 있지 않고 現實에서 逃避하는 데 있었다. 老子의「無」나 고오타마의「涅槃」이 무엇보다도 이것을 雄辯으로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이것은 東洋에 限한 것이 아니다.


   한 때 歐羅巴의 天地를 뒤덮은 文化運動인 르네상스의 理念도 페이터가 말하듯「音樂的 狀態」卽 바하의 音樂이 表現힌「無限」에 있었던 것이다.「飄飄乎如遺世獨立羽化而登仙」하려는 것이 東西洋을 莫論하고 文化人의 理想이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도 바하의 音樂을 들을 때 牧溪의 그림이나 高麗瓷器를 볼 때, 세익스피어나 陶淵明의 詩를 읽을 때, 現實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우리와는 역시 다르구나 하는 感銘을 깊이」하는 것이다. 그러나「처칠의 呂宋煙과 彩筆」에 얼이 빠진 샌님처럼 얼이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구름을 뚫고 솟은 塔도 華麗한 宮殿도
莊嚴한 寺刹도 크나큰 지구ㅅ덩어리까지도
아니, 宇宙全體도 끊어져
無로 돌아갈지니라. 우리는
꿈과 똑같은 內容이며 우리의 짧은 生은
잠으로 끝막느니라.
      세익스피어「颱風」四幕一場

   이러한 世界觀을 가지고 現實에서 逃避한 文化를 그냥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시방 朝鮮의 現實이다. 一言以蔽之하면 니힐리즘이 朝鮮文化의 理念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李朝 五百年동안 文化는 兩班들이 明哲保身하는 데 必要한 道具였고 日帝 三十六年 동안 文化는 特殊人들이 奴隸된 身勢를 自慰하는 데 使用한 手段이었다. 다시 말하면 李朝封建主義와 日本帝國主義가 朝鮮의 文化를 現實이나 大衆과 乘離된 畸形的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文學 美術 音樂 等에 關해 無識程度를 벗어난 분」은 몇 분 안되고「하늘의 별같이 數많은」人民大衆은 新聞하나 읽을 수 없는 朝鮮이 되었다. 이러한 朝鮮에서「처칠의 呂宋煙과 彩筆」에 넋을 잃고 있는 사람이 文化人이라면 그러한 사람에게서 民主主義를 內容으로 하는 民族文化 建設을 期待할 수 없을 것이다. 朝鮮文化의 現段階가 民族文化요 그 具體的 內容이 民主主義라는 데 對해서는 異論이 있을 수 없지만 누가 그 文化建設을 擔當하느냐에 對해선 問題가 있을 것이다. 呂宋煙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처칠氏가 스탈린氏를 文化 破壞者라고 생각하듯이「처칠의 呂宋煙과 彩筆」에 얼이 빠진 샌님들은 李朝나 日帝時代에도 文化를 享樂할 餘裕가 있었드니 만치 文化的 敎養이 높은 것은 事實이다. 그러나 八.一五의 革命을 겪은 오늘날도 이러한 샌님들은 如前히 李朝나 日帝 때 같은 文化的 特權階級이 되려하는 것이 탈이다. 李朝 封建社會에서 文化가 兩班階級에서 獨占되었던 것이나 日帝 植民地에서 特殊한 階級만이 文化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더라도 八.一五의 革命이 온 오늘날도 文化를 民族에게 돌려보내려 하지 않고 높은데서 人民을 내려다보는 傲慢한 態度를 取하는 文化人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는 封建主義와 日本帝國主義의 殘滓일 것이다. 


   朝鮮民族은 一般的으로 文化的 敎養이 貧弱한 것은 事實이다. 그러나 文化的 敎養이 豊富하다고 自負하는 이른바 文化人들이「처칠의 呂宋煙과 彩筆」이나 鑑賞한다고 - 李朝 五百年동안 日帝 三十六年동안 그러했듯이 - 朝鮮民族의 文化的 敎養이 豊富해 질 수는 없다. 地主가 잘 먹고 잘 입는 것이 農民이 잘 먹고 잘입는 條件이 될 수 없는거나 마찬가지로「讀書論」의 筆者같은 이른바 文化人들이 책이나 읽고 그림이나 보고 音樂이나 듣는다고 人民大衆의 文化的水準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地主가 農民에게 土地를 無償으로 돌려보내야 農民뿐 아니라 朝鮮民族 全體의 精神的 富가 急速히 增大할 수 있듯이 文化人도 無報酬로 人民에게 文化를 돌려보내야 朝鮮民族 全體의 精神的 富가 急速히 增大할 것이다. 地主가 땅을 거저 뺏기기가 싫듯이 文化人도 文化를 거저 내놓기는 싫다. 시방 朝鮮이 要請하는 것은「愛國心」인데 입으로만 떠드는 愛國心이나 自己의 特權階級만을 위하자는 愛國心이나가 아니라 眞正으로 民族을 위한 愛國心을 發揮하는 사람이 地主階級에서 찾기가 어렵듯이 所謂 文化人이란 사람에서 찾기가 어렵다. 정말 愛國心이 强한 地主라면 土地改革을 反對할 理 萬無하듯이 정말 愛國心이 强한 文化人이라면


菜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地主나 資本家들을 위하여는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면서 勞動者, 農民은 그러한 高價의 商品을 살 能力이 없다. 해서 蛇蝎視할 수 있을 것인가.


   시방 朝鮮은 부르조아 데모크라시의 段階라 하지만 日帝 三十六年 동안에 부르조아가 腐敗했음인지 政治의 推進力이 되기커녕 反動化해 가고 있다. 그래서 시방 朝鮮의 民主主義 勢力은 프롤레타리아의 領導下에 있다. 그러나 文化만은 將來는 몰라도 于先은 文化人이 領導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文化人이 프롤레타리아에게 地主의 土地를 無償으로 農民에게 주듯이 文化를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땅을 쥐고 늘어지는 地主가 結局 땅도 빼앗길 뿐 아니라 民族의 歷史를 背叛하는 反動分子가 되듯이 文化를 잃어버릴 뿐 아니라 民族의 政治的 方向에서 脫落하고 말 것이다. 事實「처칠의 呂宋煙과 彩筆」에 얼이 빠진 文化人은「政界의 要人」커녕 낫 놓고 격字도 모르는 農民만큼도 歷史가 가는 方向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이 흉보는「文學, 美術, 音樂 等에 關해 無識程度를 벗어나지 못한 政界의 要人」의 指導를 받아 勞動者 農民은 封建主義를 打破하고 日本帝國主義를 淸算하여 정말 朝鮮民族을 위한 獨立國家를 建設하기에 奮鬪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民族의 歷史를 無視한「無」를 理念으로 하는 文化는 現段階의 朝鮮文化가 될 수 없으며 이러한 民族의 歷史에서 超然한 文化人은 現段階의 朝鮮 文化人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시방 三千里 坊坊谷谷에서 大衆은 文化에 목말라 하고 있다. 이러한 大衆이 欲求하는 文化는「처칠의 呂宋煙과 彩筆」이 아닌 것은 勿論이다. 그들의 눈을 가리는 封建的인 또는 日帝的인 殘滓를 뚫고 解放의 太陽을 볼 수 있게 만드는 啓蒙的인 文化야말로 시방 朝鮮이 緊急히 要請하는 文化인 것이다. 民主主義의 文化 - 人民에 依하여 人民을 위한 人民의 文化를 建設하는 주춧돌을 놓는 工作者가 될 것이 文化人이 當面한 使命일 것이다. 勿論 그러한 文化運動이 그대들 몸에 니코친 배듯 밴 오랜 惰性에는 맞지 않을 것이다.「처칠의 呂宋煙과 彩筆」이 더 愉快하고 高尙할 것이다. 허지만「처칠의 呂宋煙과 彩筆」은 朝鮮民族에게는 文字 그대로「그림의 떡」인 것이다. 정말 大衆의 입에 들어가서 大衆의 피가 되고 살이 될 文化를 生産하여서 大衆에게「無償分配」하는 사람만이 시방 朝鮮에서는 民族文化를 擔當할 榮譽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大衆을 위한 文化人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文化人들이여 끝끝내「象牙塔」을 固執한다면 그래도 놓다. 허지만 呂宋煙을 물고 칸바스를 向하여 彩筆을 휘두르는 체 하고 民主主義를 어떻게 무찌를가를 궁리하지나 말라. 처칠처럼 意識的이 아니더라도「象牙塔」의 文化人들이 까딱하면 民族의 갈 길에서 脫線하거나 反動하기 쉬운 것이 시방 朝鮮의 現實이다.「象牙塔」은 이를테면 暴風속의 眞空인데 시방 朝鮮의 現實은 그 眞空의 存在를 威脅하고 있다.「象牙塔」의 文化人은 다음의 格言을 한번 다시 吟味해 보라.


- 自然은 眞空을 憎惡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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