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術과 生活
- 李泰俊의 文章 - - 金東錫
朝鮮文壇에서 李泰俊氏처럼 文章에 關心이 많은 이도 드물다. 그가 編輯하던 雜誌의 이름을「文章」이라 한 것이라든지「文章講話」라는 好著를 내 놓은 것이라든지 가 모두 이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의 小說이 더 雄辯으로 이 事實을 말하고 있다. 말을 골라 쓰기로는 芝溶을 따를 자 없겠으나 그는 詩人이라 그것이 當然하다 하겠지만 小說家가 말 한마디, 한 줄글에도 彫琢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世上에서 尙虛의 글을 文章으로 치는 바이요 누구나 그의 글을 아름답다 한다.
「오늘 作家들로서 가장 反省해야 될 것은.....散文을 手藝化시키려는데서 일어나는 <欲巧反拙>이 아닐까. 이것은 누구에게보다 내 自身에게 하는 말이다.」(無序錄)
尙虛는 自己의 小說을 이렇게 批判했다. 尙虛 自身이 文章에 置重했기 때문에, 읽는 우리에게도 文章의 意識이 앞서는 것이다. 그것은 小說로서는「欲巧反拙」이라 아니 할 수 없다. 人物이 躍動하는 生活, 이 生活을 讀者 스스로 體驗하게 만드는 것이 小說이다.「農軍」이나 「돌다리」같은 極少數의 例外的 作品을 빼 놓으면 그의 短篇은 擧皆가 詩的이오 隨筆的이다. 그의 長篇은 新聞小說인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短篇에다 물을 탄 것 같다.....短篇을 채우기에도 모자라는 그의「生活」과「現實」이 어찌 그보다 크고 깊은 長篇小說을 채울 수 있으랴.
「나의 붓은 칼이 되자. 저들을 위해서 칼이 되자. 나는 한 잡지사의 기자가 된 것 보다 한 군대의 군인으로 입영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아무 일도 없소)
나의 무덤 우에 花環대신 칼을 넣어 놔 달라 한 하이네의 氣槪를 연상케 하지 않는가. 하지만 붓은 結局 칼일 수가 없다. 칼을 찬 巡査部長에게 追放을 당하는「失樂園 이야기」의 主人公「나」는 生活戰線에서 敗北한 作家 李泰俊氏의 自畵像이다. 그래서 그는 戰爭中에 낚시질과 사냥을 다녔다. 또는「夕陽」에서와 같이 骨董品을 玩賞하며 古蹟을 巡禮했다. 아니「事實」한테 屈한 것은 尙虛 하나 뿐이 아니다. 朝鮮文壇 全體가 戰爭에게 壓倒당한 것이었다. 아니 世界를 통털어 文學은 第一線에서 總退却을 한 것이었다.「文章」이 廢刊되기 전에 英國에서는「Criteion」과「Mercury」가 없어졌다. 藝術은 暴風에 속절없이 슬어지는 한 송이 꽃이었다.
「實證, 實證, 이것은 散文의 肉體요 精神이다.」
라고 尙虛는「文章講話」에서 斷案을 내렸었지만 尙虛 自身은 그의 小說에서「實證」에 徹底하지 못했다. 小說의 實證精神이란 作家가 自我를 송두리채 털어서 生活에 投射하는 精神이다. 활을 떠난 화살같이 現實을 뚫고 들어가는 精神이다. 그런데 尙虛는 生活의 渦中에 뛰어들지 못하고 한 걸음 뒤에서 生活을 바라보았다.「그는 생각하였다. 단돈 삼십원으로도 달아날 수 있는 그 양복조끼에게는 세상이 얼마나 넓으랴! 싶었다.」(사냥). 골목에서 사라지는 「뒷방마님」의 뒷모양을 바라 본 感想만 가지고 小說을 쓰기도 했다. 尙虛의 文章이 繪畵的 그것도 墨畵인 것이 여기에 原因했을 것이다.
「나는 그(虛無主義者인 姜君)을 좋아하였다. 아니, 존경하였다.」
이렇게 尙虛는 率直히 告白하고 다시 虛無主義를 버리고 現實로 돌아간 姜君이 眼鏡을 쓰고 金니를 박고 東西南北표가 달린 金時計줄을 달고 아들애 준다고 세 발 자전거를 사든 꼴을 보고 다음과 같이 然嘆長太息을 하였다.
「나는 몹시 불쾌하다. 차라리 강군이 전날의 그 면목으로 밥값에 붙잡힌 누추한 여관에서 나를 기다린다면 나는 얼마나 반가워 뛰어가랴. 그러나 강군은 지금 금시계를 차고 금니를 박고 시원한 사랑을 치고 맛난 육식으로 나를 기다리겠노라 한다. 허허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左翼이 아니었던 尙虛가 부르조아의 本色을 나타낸 姜君을 보고 서글프게 느낀 것은 階級的意識이 아니라 詩人的인 理想 - 그것은 究極에 니힐리즘이다 -을 가지고 부르조아的인 生活을 否定한 데 지나지 않는다. 否定을 爲한 否定, 東洋人의 理想이 自古로 이러했다. 尙虛라는 號 自體가「虛」를 추구하는 李泰俊氏의 藝術觀을 雄辯으로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尙虛의 니힐리즘은 最近에 이르러서는 바하의 音樂같이「無限」을 바라보고 羽化登仙했다.
이것은 小說의 一節이라기보다 한 篇 詩가 아닌가. 尙虛의 文章이 아름다운 秘密이 어디 있는지 이것으로 짐작하기에 足할 것이다. 本來 美란「詩」의 世界지「散文」의 世界가 아니다. 壓迫과 搾取가 있는 社會란 醜하기 짝이 없는 것이며 그 壓迫과 그 搾取에 反抗하는 精神은「힘」이지(즉 量的인 것이다) 우리가 여태껏 使用하던「美」라는 槪念은 散文精神이 될 수 없다. 그러면 左翼 藝術觀은 從來 모든 美한 것을 否定하느냐?「詩」란 歷史的으로 볼 때 貴族社會의 産物이다. 단테의「神曲」이나 세익스피어의「리어王」이 貴族의 精神을 形象化한 것은 明白한 事實이며 特히 後者의 戱曲에 있어서 貴族階級의 말은 귀글(韻文)로 表現하고 市民階級의 말은 줄글(散文)로 表現했다는 것은 가볍게 볼 수 없는 事實이다. 封建社會가 무너질 때 詩도 무너져 散文이 되었다.
「부르조아지이는 政權을 잡자마자 모든 封建的, 家長的, 牧歌的 諸關係를 破壞해 버렸다.....宗敎的 情熱이라든가 武士的 感激이라든가 平民的 人情이라든가 하는 神聖한 渴仰心을 어름같이 차디찬 利己的 打算의 물 속에 가라앉히고 말았다. 사람의 價値를 交換價値 속에 사라져 없어지게 하고 무수한 일껏 얻은 特許的 自由대신에 다만 하나인 말못할 商業의 自由를 設立했다.」(共産黨宣言)
부르조아지이는 文學에 있어서도「詩」를 否定하고「散文」을 생산했다. 春園의「無情」이 젊은이들을 美國으로 留學보내고 大團圓에서는 工場과 産業을 讚美하는 文章을 넣었다. 春園은 朝鮮土着 부르조아지이를 代辯하는 作家다. 이미 春園은 否定되었다. 左翼의 散文이 誕生할 때는 왔다. 朝鮮의 散文이 完全히 脫皮해야 될 때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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