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錫 評論集

나의 英文學觀

이강기 2015. 9. 1. 22:30

나의 英文學觀


           - 金東錫

 

   英文學者는「인디비듀얼리스트」다. 그런데 시방 朝鮮의 現實은 個人主義를 容納하지 않는다. 여기에 나의 態度가 英文學者답지 않다는 印象을 주는 原因이 있다. 解放後 金史良군은 만나자마자「雜誌가 다 뭔가, 英文學硏究室로 들어가지 않고」한 것은 나에 對한 一般的 觀念을 端的으로 表現했다 하겠다. 나 亦是 英文學硏究室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고프고 헐벗은 朝鮮이 나에게 그럴 餘裕를 주지 않는 것이다. 내가 나날이 四分五裂된다는 自意識을 갖게 되는 것이 다름 아닌 朝鮮과 英文學의 角逐이 아닐까. 


   어떤 獨逸人이 朝鮮의 知識階級을 批評하여「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는 대갈장군」이라 한 것은 우리의 肺腑를 찌르는 말이다. 文化病! 이 文化病 때문에 시방 朝鮮의 知識人은 가장 根本的인 問題를 忘却하고 있다.


   그러나 英文學은 나의 細胞에 알알이 베어 있어 刻薄한 現實이「象牙塔」밖에서 아우성치고 있건만 나는 詩나 隨筆이나 評論을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文學이 담배모양 인이 박힌 것은 나로선 어

쩔 수 없는 事實로서 내가 쉐익스피어니 워즈워즈니 하는 詩人을 耽讀했기 때문이다.
   英文學의 主流는 아직까지「詩」다.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즈」도 露西亞 小說같은 散文은 아니다. D.H. 로렌스는 다시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現在 朝鮮의 英文學者도 들어갈 곳은「象牙塔」밖에 없지 않느냐.「象牙塔」誌에서 尙虛를 비롯해 朝鮮文學者를 論했기 때문에 내가 英文學을 버리고 朝鮮文學으로 轉向한 줄 아는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나는 애시당초부터 朝鮮文學을 爲해서 英文學을 했지 英文學을 爲해서 英文學을 한 것은 아니다. 崔載瑞는 싱가포르가 陷落됐을 때 英文學을 버린다고 聲名했지만 나는 그런 事大主義者가 아니다. 또 硏究室에 들어앉아서「햄릿」을 읽어야만 英文學이 아니오 나는 나대로「象牙塔」에서 英文學을 하고 있는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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