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錫 評論集

朝鮮의 思想

이강기 2015. 9. 1. 22:24
朝鮮의 思想  
 
 

(그 시절 우리 고을에서 '가장 높은 학교'를 나왔다는 집안 아저씨 한 분이 어른들 말에 따르면 '한순간 머리를 잘 못쓰는 바람에' 가족 중 남자의 씨를 말려버린 엄청난 사건을 두고 나는 늘 의문 하나를 안고 살았다. 그렇게 배울 것 다 배우고 명민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기껏 2, 30년 후의 세상을 내다 볼 줄 몰라 그 쪽으로 머리를 뒀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오늘 다시 김동석의 이 글을 읽어보니 얼마간 그 의문이 풀리는 것 같다. 그것은 일종의 時病이었다. - 이강기)   



朝鮮의 思想


  - 學生
     - 金東錫에게 주는 글

 

   아직도 朝鮮엔 상투를 튼 사람이 있다. 그것은 大槪가 나이 많은 頑固한 老人이다. 그러나 때로 어느 두메 산골서 왔는지 젊은이가 상투를 틀고 삼팔 두루마기에 갓을 쓴 光景을 鍾路 네거리에서 볼 수 있다. 그러면 지나가던 男女學生들이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 學生 가운덴 이 촌뜨기의 볼 쥐어지르게 時代에 뒤떨어진 상투를 思想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四方帽를 쓰고 또는 斷髮을 하고 時代의 尖端을 걷는 것처럼 自負하는 學生들이지만 그들의 精神속엔 아직도 깎아버려야 할 상투가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의 눈에 뜨이지 않을 뿐이다. 或是 胸襟을 터놓는 벗이 있어서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상투를 發見하고 웃든가 깎아버리라고 忠告를 하든가 하면 感謝하기는커녕 골을 내곤 하는 것이다. 너는 左翼學生이라고. 아무 것도 모르고 共産主義者한테 煽動을 받아서 날뛰는 極烈分子라고. 그것은 無理가 아니다. 상투 튼 사람보고 비웃든지 상투를 깎아라 하면 그 사람이 펄쩍 뛸 것이 아닌가. 그러나 상투는 頑固한 사람들이 아무리 쥐고 늘어져도 結局은 進化의 法則에 따라서 淘汰되고 말 것이다. 人間이 달고 다니던 꼬리도 오랜 歲月에 씻기어 漸漸 짧아지고 인제는 痕迹만 남기고 없어졌거늘 머리를 길러 틀고 동곳을 꽂은 것에 不過하는 상투쯤이랴. 朝鮮民族을 끝끝내 壓迫하고 搾取하여 發展을 沮害하던 日本帝國主義의 쇠사슬이 끊어진 오늘날 우리의 思想이나 行動이 一瀉千里로 달음질쳐야 할 것은 至嚴한 歷史의 要請이다.  

   「우리 世代에 中國에 있어서 安定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게다. 中國은 變革하지 않으면 滅亡할 것이다. 絶望的으로 짧은 數年동안에 五億이나 되는 人民을 中世의 社會로부터 原子彈의 社會롤 옮겨놓지 않으면 아니 된다. 모든 輻輳하는 오늘의 問題뿐 아니라 지난날의 問題도 解決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鐵道와 工業의 建設, 國民一般敎育의 育成, 科學精神의 涵養, 單一國民으로서 內包한 가장 큰 人間의 集團이 不過 數十年동안에 西洋이 五百年 동안에 達成하려고 努力해 온 그 모든 改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것은 極東에서 가장 有能한 美國人 特派員이라고 定評이 있다는 T.H. 화이트와 A. 체코비 兩氏가「하아퍼즈」最近號에 실은「未知數의 中國」이라는 論文의 虛頭지만 그대로 朝鮮에다 適用해도 별로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어물어물하다가는 朝鮮은 또다시 外國資本의 멍에를 쓰고 亞細亞의 暗黑 속에서 牛步를 繼續할 것이다. 뜻 있는 젊은이들이 어찌 奮發하지 않겠느냐. 하루바삐 아니 한시바삐「思想의 상투」를 깎아버리고 進步的인 思想을 攝取하도록 努力해야 할 것이다. 朝鮮의 學生들이 남보다 뒤떨어진 思想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우리 民族의 思想이 남보다 뒤떨어질 것이오 따라서 思想的으로도 獨立하지 못하고 만날 남의 뒤만 따라가야 할 것이다. 朝鮮의 學生이 깎아버려야 할 상투가 둘이 있으니 하나는 封建主義요 또 하나는 日本帝國主義다. 地主는 손에 흙을 대지 않고도 農民의 피와 땀으로 結實한 것의 三分의 一을 차지할 權利가 있다는 生覺은 封建主義인데 朝鮮 學生의 대다수가 地主階級 出身이기 때문에 이러한 亞細亞的 封建思想을 버리지 못한다. 本人은 버리더라도 學父兄이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學費를 타 써야 하고 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弱한 立場에 서있는 學生들은 그것이 옳지 못한 것인지 알면서도 學父兄의 뒤떨어진 思想을 닮게 되는 것이다. 共産主義가 무엇인지 硏究해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反對하는 學生이 있다. 이것은 反共 反蘇를 외치던 왜놈의 敎育을 곧이곧대로 받은 탓이다. 共産主義를 그렇게 간단히 물리친다는 것은「朝聞道면 夕死도 可矣」라는 孔子의 熾烈한 眞理探究의 精神을 본받아야 할 朝鮮의 學徒로선 良心上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왜놈이 念佛 외우듯 反蘇反共을 떠들던 것을 들은 것밖에 共産主義에 대한 팜플렛 하나 얻을 수 없었던 것이 一年 前 일인데 一年 동안에 어느새 그렇게 硏究가 깊어서 徹底한 反共 反蘇의 思想을 體得했겠느냐. 히틀러, 모쏠리니, 東條의 무리가 銃칼로서 反共 反蘇를 한 파시스트였다는 것을 아직도 잊지 않았을 터인데 어느새 이들을 본받았느냐. 共産主義를 그것이 무엇인지 正體를 파악하기 前에 排斥한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追從하는 것보다 훨씬 危險한 것이라는 것을 알라. 後者는 너무 急進的이 될 念慮가 있지만 前者는 歷史의 反逆者가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世界史는 발전했으며 우리 民族의 運命도 世界史의 一環으로서만 解決할 수밖에 다른 道理가 없기 때문이다. 反蘇 反共을 해 가지고 朝鮮이 自主獨立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歷史를 너무나 모르는 사람이거나 外國獨占資本의 第五列일 것이다. 그러나 學生은 그렇게 쉽사리 左右를 決定하지 않아도 좋다. 自己의 갈 바 길을 決定하기 前에 많이 硏究하고 깊이 思索하는 것은 學生의 權利인 同時에 義務이기도 하다.
   이에 世界觀이 問題되는 것이다. 알고 行動해야 한다. 모르고 行動하면 진구렁에도 빠지고 낭떠러지에도 떨어질 危險性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시방 朝鮮처럼 到處에 진구렁이 있고, 낭떠러지가 있는 現實에서랴. 많은 젊은이들이 學園으로 들어간 뜻은 이런데 있을 것이다. 世界觀 - 이것이 그들의 對象이오 目的인 것이다. 그들이 確乎不動의 世界觀을 把握하는 날 朝鮮에는 많은 일꾼이 생길 것이다.
   宇宙의 本質 - 哲學에서 이른바 實在를 觀念이라 하느냐 物質이라 하느냐에 따라서 世界觀은 觀念論的 世界觀과 唯物論的 世界觀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勿論 무엇을 觀念이라 하고 무엇을 物質이라 하느냐의 槪念規定을 해야 하지만 그 槪念規定의 方法에 따라서도 唯物論과 觀念論이 區別되는만큼 그것도 容易한 일이 아니다. 아니 이야말로 오늘날까지 觀念과 物質의 對立이 學徒들의 머리를 괴롭히는 根本的 原因의 하나인 것이다. 科學이 發達한 오늘날까지 觀念이 무엇이냐를 알려면 파블로프의「條件反射學」은 적어도 冊으로 읽어서라도 알아야 할 것이오, 物質이 무엇이냐를 알려면 電子에 關한 知識이 있어야 할 것인데 科學의 方法이 唯物論的인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方法으로 觀念論者를 說服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觀念論者는 物質的인 것엔 아예 興味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우기는 觀念論者가 있다면 이렇게 反問해 보라. 그들이 物質的인 것에 關心이 있다면 칸트의「純粹理性批判」은 읽되 똑 같은 獨逸語로 쓰여 있는 마르크스의「資本論」은 왜 읽으려 하지 않느냐고. 아니 그보다도 冊을 읽고 思索을 하고 講壇에서 떠드는 것만 가지고 어떻게 物質의 本質을 把握할 수 있느냐고. 큐리夫人이 放射를 가진 物質을 發見하기 위하여 男便과 더불어 四年 동안이나 피치부렌드와 싸운 것을 모르느냐고. 顯微鏡과 望遠鏡과 메스와 試驗管은 무엇에 쓰는 것이냐고. 그러나 觀念論者는 이렇게 뻔뻔스럽게 對答할 것이다. 그래 科學者가 物質의 本質을 發見했느냐? 分子 原子 電子 - 이렇게 物質을 分析해 가지만 結局은 끝간데를 모르거나 物質의 本質이 精神이라는 것을 發見하거나 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美國의 有名한 物理學者 화이트헤드를 보라.「實在와 過程(Reality and Process)」은 그가 一生物質을 科學的으로 追究한 結論인 동시에 칸트로 歸依한 것을 意味한다. 그러니 顯微鏡이나 試驗管을 드려다 보는 것보다 칸트를 硏究하는 것이 物質의 本質을 알 수 있는 捷徑이라고.
   그래서 觀念論者들은 希臘語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硏究하고 羅甸語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硏究하고 獨逸語로 칸트와 헤겔을 硏究하다가 어느듯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되어「資本論」커녕 아담 스미스의「國富論」도 변변히 理解하지 못하고서 共産主義가 어떠니 唯物史觀이 어떠니 하고 떠들어댄다. 때로는「反託」을 부르짖기도 하고. 恰似히 二千五百年前 希臘의 觀念論者인 플라톤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格으로 朝鮮에 튀어나와서 朝鮮의 現實을 判斷하는 것 같은 엉터리 臆說을 가지고 學生들을 恍惚하게 만드는 哲學者가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나와도 마찬가지고 칸트가 나와도 만찬가지다. 그들이 얼마나 굉장한 世界觀을 가졌는진 몰라도 시방 朝鮮 現實에서 보면 鍾路 네거리에서 본 상투쟁이나 마찬가지로 케케묵은 思想의 所有者인 것이다.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그렇다. 그들도 亦是 레닌이나 스탈린에 比하면 時代가 틀리는 思想家이다. 아니 시방 朝鮮엔 레닌이나 스탈린의 思想을 冊으로 읽기만 해서는 理解할 수 없는 더 生生하고 더 具體的인 現實이 있다. 一言以蔽之하면 그것이 아무리 進步된 思想이라 하더라도 冊을 읽어서 把握하는데 그친다면 벌써 時代의 先頭에 서는 思想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날이 일어나는 事態를 스스로 觀察하고 實踐하고 함으로 말미암아 正確하게 體得할 것이다. 唯物史觀은 方法이지 結論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방 朝鮮的 思想을 부르짖는 사람이 있지만 朝鮮的이란 조선이 상투 틀고 살던 大韓時代의 朝鮮이나 日本帝國主義의 植民地이던 朝鮮이 아니고 八.一五를 맞이한 朝鮮이라면 朝鮮的 思想이라는 것은 觀念的 世界觀은 아닐 게다. 왜냐면 急速度로 封建主義와 日本帝國主義를 掃蕩하고 民主主義 朝鮮을 建設하지 않으면 또다시 外來勢力의 支配를 免치 못할 朝鮮에서 民族의 先頭에 서야할 젊은이가 物質的 現實을 蔑視하고 觀念속에서 安心立命의 터전을 發見하여 左도 아니오 右도 아닌 論理的인 世界를 構築하려 한다면 土地革命의 正當性을 누가 主張하며 三相會議 決定에 依한 民主主義 臨時政府를 누가 要求할 것인가. 土地革命을 하지 않는 限 封建主義의 뿌리는 깊을 것이오 三相會議 決定을 實踐하지 않는 限 日本帝國主義의 餘毒은 民族을 좀먹을 것이다.
   民主主義란 人民이면 누구나 政治的 權利와 義務를 가져야 한다는 理念이다. 朝鮮의 學生大衆이 朝鮮의 現實을 把握하려는 努力이 없고 따라서 朝鮮의 運命을 爲하여 아무 行動이 없다면 民主主義 朝鮮建設은 그만큼 遲延될 것이다.
   아니, 世界觀이란 이러한 民族의 問題도 아울러 생각해야 할 것이다. 民族이 어찌되든 나 하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든지 나 하나만 問題를 解決하면 그만이라든지 하는 思想은 世界觀은 될 수 있으되 옳은 世界觀은 아니다. 觀念論的 世界觀이 어떤 個人이나 어떤 階級에게는 가장 좋은 世界觀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土地는 地主의 것이라는 封建的 觀念이 地主階級에게는 가장 좋은 觀念인거나 매일반이다.
   科學의 世紀인 오늘날 健全한 精神을 가진 사람이라면 人間의 精神을 떠나서 地球나 별이 客觀的으로 存在하는 것을 疑心할 사람은 없을 거다. 플라톤은 地球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던 사람이며 오늘날 우리가 그 사람의 世界觀을 곧이 들을 必要는 없는 것이며 따라서 地球나 太陽이나 별의 存在는 疑心하면서「이데아」라는 觀念만이 實在한다고 主張한 그의 學說을 믿을 까닭이 없건만 現實의 俗惡한 것을 憎惡하고 完全無缺한 理念을 追求하는 나머지 靑春은 플라톤의 弟子가 되기 쉽다. 事實 플라톤은 沒落해 가는 希臘의 現實에 滿足하지 못하고 오로지 理念 속에서「共和國」을 建設하려던 사람이다. 日帝의 壓迫과 搾取 때문에 나날이 더렵혀지는 現實에서 逃避한 哲學徒들이 플라톤을 鼻祖로 하는 哲學的 觀念論을 가지고 자기네들의 世界觀을 삼으려던 것은 無理가 아니다. 唯物論者가 된다는 것은 共産主義者가 되는 것을 意味하는 것이오 共産主義者가 되었다간 監獄으로 끌려 갈 것이 아닌가. 世界觀이란 單純한 知識이 아니오 生의 原理이기 때문에  日帝時代에 唯物論的 世界觀을 갖는다는 것은 스스로 荊刺의 길을 自願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렇다고 高文이라도 파스해서 日帝的 現實과 野合한다는 것은 良心있는 인텔리겐차로서 참을 수 없는 墮落이었다.
   그래서 그도 저도 아닌 길이 있는가 하여 찾아 헤맨 것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바아클리, 칸트, 쉘링, 헤겔, 베르그송 等이 三千年이나 걸려서 築城하다간 무너뜨리고 한 觀念論의 廢墟였다. 아니 그것은 迷宮이었다. 八.一五의 解放을 맞이하여 응당 現實로 돌아가야 할 그들이었지만 아직도 古典的인 三次元의 世界에서 彷徨하고 있는 그들이다. 그것은 朝鮮의 現實이 아직도 平穩하지 않기 때문이다. 比컨대 그들은 溫室에서 자라난 花草다. 封建主義와 日本帝國主義의 서리가 아직도 걷히지 않은 이 땅에서 그들이 고개를 들 수는 없다. 그들은 左도 싫고 右도 싫고 플라톤의「共和國」같이 그들의 理想이 支配하는 나라만 出現하기를 苦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나라는 적어도 그들 生前엔 到來하지 않을 것이다. 唯物史觀이 가리키는 바에 依하면 그러한 理想國은 왼쪽으로 가야 다다른다는데 이들 觀念論者는 유우클리드 幾何學에나 있는 直線같은 中庸의 길을 가려는 것이다. 아킬레스가 永遠히 달음질 쳐도 거북을 따라가지 못하는 길 - 그러한 길을 가는 哲學者들. 그들의 뒤를 따르는 學生들. 不過 數十年 동안에 西洋이 五百年 동안에 達成하려고 努力해도 그 모든 改革을 받아드리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美國人이 말한 亞細亞에서 이들은 얼마나 福받은 무리들이기에 이다지도 觀念의 世界에서 安逸한 歲月을 보내려는 것이뇨. 民族이 또다시 外國勢力의 支配를 받게 되더라도 이들 哲學者는 痛痒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의 世界觀은 日本帝國主義의 植民地에서 그들의 觀念 속에다 이룩한 나라이기 때문에 또다시 日帝時代와 같은 事態가 오더라도 動搖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日帝의 秩序가 掃蕩된다면 그들의 立場은 되래 困難하게 된다. 日帝가 唯物論者를 監獄이나 地下室이나 海外밖에 있을 데를 주지 않았을 때는 플라톤이나 칸트나 하이데커의 觀念論을 가지고 무슨 偉大한 學問이나 되는 것처럼 行勢한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思想을 指導하는 것을 아무도 말리지 않았지만 八.一五 後의 朝鮮은 젊은이들에게 無限히 豊富한 知識과 體驗의 機會를 주었는데 이들 젊은이들을 如前히 日帝때처럼 空虛한 觀念 속으로 끌고 들어가 이들 哲學者들이 生涯를 바치고도 아직도 찾지 못한 그 길을 찾게 하는 것을 社會나 學界가 默認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解放朝鮮의 學生은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이 아직도 朝鮮의 思想을 指導할 수 있다는 錯覺을 갖게되는 것은 唯物論者가 學園에서 내쫓기고 囹圄에서 呻吟하더 日帝의 現實이 아직도 남아서 좀체로 없어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八.一五의 解放이 올 것을 믿어 疑心치 않고 그 때를 爲하여 努力한 것이 唯物論者이듯이 日帝的 現實이 이 땅에서 掃蕩된 것을 믿고 그 信念에서 行動하는 것이 唯物論者다. 日帝時代나 시방이나 變함없이 觀念의 桃源境에서 冊이나 읽고 있는 觀念論者들, 그들은 歷史의 움직임을 몸소 體驗하고 把握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保守的이다. 그래서 日帝도 그들을 잡아가 가두지 않았고 시방도 日帝의 殘滓와 더불어 保守的이다. 靑年學徒들은 朝鮮의 現實보다 한 발 앞서라는 것인데 이러한 保守主義者들의 뒤를 닮아 갈 것인가.
   그러나 이렇게 反問할 學生들이 있을 것이다. 觀念을 위하여 살고 觀念을 위하여 죽는 것은 인텔리겐챠의 本分이 아니냐고. 그렇다. 인텔리겐챠는 마땅히 觀念을 위하여 살고 觀念을 위하여 죽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觀念이 世界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觀念은 觀念論者의 觀念과는 正對立되는 唯物論的 觀念인 것이다. 히틀러, 무쏠리니, 裕仁의 무리들이 發惡을 할 때 觀念論者들은 로오젠베르크를 비롯해서 御用學者가 되고 唯物論者는 虐殺을 당하던 것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觀念論者는 觀念을 위해서 산다고 입으론 떠들면서 머리로도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地位와 權力과 黃金에다 自己의 觀念을 隸屬시키는 者가 大多數인데 唯物論者는 觀念을 위하여  - 共産主義란 要컨대 觀念이다 - 죽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現實에 뿌리박지 않은 觀念論的 觀念은 弱한 것인데 現實 속에 뿌리를 박고 現實에서 營養素를 攝取하는 唯物論的 觀念은 强하다는 것을 如實히 證明한다. 觀念을 위하여 살고 觀念을 위하여 죽는 度가 높을수록 높은 理想主義라면 朝鮮에 있어서 觀念論的 世界觀은 높은 理想主義가 될 수는 없다. 바람이 센 朝鮮에서 無風地帶를 찾으려는 것이 觀念論者들인데 그들이 어찌 主義를 위하여 生命이라도 바치는 理想主義者가 될 수 있겠느냐. 朝鮮의 學生은 모름지기 生命을 바치더라도 未練이 없을만한 世界觀을 確立하도록 努力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觀念을 위한 觀念을 追求하다가 그친다면 그대들에게 觀念論을 强要하는 哲學敎授들이 生涯를 虛送하고 아직도「永遠한 存在의 수수꺼기」를 생각하고 있듯이 그대들의 靑春의 努力은 水泡로 돌아갈 것이다. 옳은 世界觀을 把握하지 못하고 空虛한 觀念遊戱로 浪費한다면 그대들 自身에게도 辨明할 餘地가 없겠지만 단배를 주려가며 그대들을 밥 먹이며 그대들이 暗黑에서 光明으로 가는 길을 指示해 줄 날이 있을 것을 손꼽아 기다리는 人民大衆에게 무어라 謝過를 할 것인가.
   學園은 人生의 散步場이 아니라 人生의 道場인 것이며 民族의 指導者를 길러내는 곳이라는 것을 學生들은 꿈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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