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錫 評論集

藝術과 科學

이강기 2015. 9. 1. 22:33

藝術과 科學


    - 金東錫

 

 

   文字그대로 시방 서울의 紙價는 올라가고 있다. 鍾路 네거리에서 아이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매를 잠아 당기다시피 파는 수많은 新聞과 露店商人이 버려 논 가지각색 出版物을 볼 때 言論自由의 展覽會를 보는 듯 하다.


   그러면 이 新聞들이 보다 朝鮮民族에게 바른 政治路線을 가르쳐주고 있으며 이 出版物이 정말 朝鮮文化를 向上시키고 있는 것일까. 雨後竹筍같던 政黨이 左右兩翼으로 定理되고 이 左右의 均衡을 얻은 統一政權 卽 進步的 朝鮮民主主義 政權을 樹立하는 것이 畵龍點睛으로 남은 課題인 오늘날 活字로 表現된 朝鮮文化는 시방 混沌에 빠져있지 아니한가 疑心된다.


   政治에서 極左 極右가 다 過誤이듯, 文化에서도 左翼小兒病과 國粹主義를 排擊하지 않을 수는 없다. 文化 叛逆者는 다시 말할 것도 없거니와 - .
   그러면 朝鮮 文化前線 統一의 基準은 무엇이냐.「덮어놓고 한데 뭉치자」는 式의 統一은 더욱이 文化에 있어서는 危險千萬이다.「文協」의 失敗도 無原則統一이었다는 데 基因했다.


   「文化」라는 말은 아름다운 말이기는 하나 明晳 判明한 槪念은 아니다. 그러므로 文化가 무엇인지 規定되기 前에 文化人이 規定될리 없고 文化人이 規定되지 않고서 文化人의 大同團結體인 朝鮮 文化建設 中央協議會가 成立할 수는 없다. 몇 사람 文人이 朝鮮文化를 代表하려 한 것은 民主主義의 原理를 無視한 것은 또 모르지만 文化自體에 대한 認識이 不足했다 할 것이다. 이는 다 朝鮮의 文化가 아직껏 저널리즘의 所産이었다는 結論이기도 하다.


   現代는 科學의 世紀다. 朝鮮은 民族의 良心이 가장 要望되는 때다. 藝術은 古今東西를 莫論하고 良心의 告白이었다. 科學者와 더불어 藝術家는 現代朝鮮 文化人의 雙璧이라 하겠다.


   要건대 文化는 科學과 藝術의 總稱이지만 이 둘을 뒤범벅을 해서는 안 된다. 詩와 散文을 구별하지 못하고 現代文學者라 할 수 없듯이 藝術家도 아니오 科學者도 아닌 사람을 文化人이라 할 수 없다. 억지로 文化人으로 대접하려면 文化의 機會主義者라고나 할까.


   시방처럼 藝術도 아니오 科學도 아닌 글이 新聞과 雜誌를 번거롭게 하고 있는限 朝鮮文化는 갈 바 길이 아득하고 멀다. 그도 그럴 것이다. 구라파에서는 150년 전에 完遂한 民主主義革命을 아직도 宿題로 남기고 있는 朝鮮에서 二十世紀의 文化가 화려하게 꽃피기를 바라는 것이 꿈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방 서울의 紙價는 연방 올라가고 있다. 八月 十六日날 저마다 國旗를 내걸고 獨立萬歲를 부르던 興奮이 아직도 남아서 活字가 되어 나온다면 그것은 또 人情으로 들릴 수도 있다. 다만 政治에 民族을 파는 野心家와 謀利輩가 끼듯 文化라는 看板을 내걸고 名譽와 地位를 노리는 者들의 紙上暴動이라면 가만 내버려둘 수는 없다. 文化의 叛逆者란 八.一五 以前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銘記하고 文化人 아닌 文化人들은 스스로 內省할진저 -.(끝)

'金東錫 評論集' 카테고리의 다른 글

學園의 自由  (0) 2015.09.01
詩와 自由  (0) 2015.09.01
詩壇의 第三黨 - 金光均의「詩壇의 두 山脈」을 읽고  (0) 2015.09.01
나의 英文學觀  (0) 2015.09.01
朝鮮의 思想  (0) 2015.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