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錫 評論集

文化人에게

이강기 2015. 9. 1. 22:40

文化人에게


    -「象牙塔」을 내며 -


        - 金東錫

 

 

   知識人이란 禁斷의 열매를 따먹은 者이다. 自意識이 없을 수 없다. 이「自意識」 때문에 시방 朝鮮의 인텔리겐챠는 政治的으로 볼 때 浮動하고 있다. 때로는 輕擧妄動하고 있다. 觀念的으론 左翼이오 物質的으론 右翼인 그들이 갈팡질팡하는 것은 一朝一夕엔 止揚할 수 없는 矛盾이다. 革命的인 인텔리는 저 歷史的 瞬間인 八月十五日부터 農村과 工場으로 들어가 和光同塵했고 反動的인 有識者는 利權을 爲하여 民族을 背反했다. 다시 말하면 共産主義者이었던 인텔리겐챠는 監獄과 地下室에서 뛰어나와 大衆과 손을 잡았고 大學.專門 出身 中 日本帝國主義가 骨髓에 배긴者는 資本家와 大地主의 走狗가 되었다. 그러나 良心的인 인텔리의 絶對多數가 아직도 自己決定결정을 하지 못한 채 舊體制인 職場과 學園으로 돌아가고 있다. 빵을 위하여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선비만은 恒産이 없어도 恒心이 있다」한 것은 知識人 全體가 特權階級이었던 封建社會에 있어서 妥當할지 모르나 商業主義가 最後의 發惡을 하고 있는 現段階에 있어서 動搖하지 않는 인텔리가 果然 몇 사람이나 될 것이냐. 孟子 自身도 시방 朝鮮現實에 處한다면「無恒産 無恒心」이리라. 아니 孔子도「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이라 하지 않았던가.


   「佛힐이 부르매 孔子가 가고자 하니 子路 가로되 언젠가 先生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좋지 못한 일을 하는 자에겐 君子는 섞이지 않는 것이라고. 그런데 시방 佛힐이 中牟에서 叛亂을 일으키고 先生님을 請하니까 先生님이 가시려함은 어찌된 셈입니까.」하니 孔子 가라사대「그렇다. 내가 그런 말을 한 일이 있지. 하지만 내 어찌 됨박처럼 매달려 먹지 않고 살 수 있겠느냐.」(論語 陽貨)


   그러나 朝鮮民族 解放이란 歷史的 現段階에 있어서 良心的인 知識人이 自己의 빵 문제를 解決함으로써 滿足할 수 있겠느냐. 여기서 宿命的인 知識人의 自意識이 비롯하는 것이다. 黃金과 權力과 名譽가 壓殺하려하되「슬프고 고요한 人間性의 音樂」이 들려온다. 勿論 센티멘탈리즘이다. 그러나 李朝 五百年동안 壓迫받아 온「靑春」과 日本帝國主義의 蹂躪을 當한「良心」이 빚어낸 것은 結局 이렇게 가늘고 弱하고 슬픈 文化다. 끊일 듯 말 듯 간신히 이어온 朝鮮의 文化. 그것은「事實의 世紀」인 現代에 있어서 너무나 貧弱한 存在라 아니할 수 없다. 高麗交響樂團이 韓國民主黨 結成式에 伴奏를 하고 京城三重奏團이 푸로藝術을 표방하게 된 것이 다 그들 文化人이 弱한 탓이다. 不然이면 不純한 탓이다. 音樂家는 무엇보다 純粹해야 할 것이 아니냐!


   帝位에 오르라니까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고 江물에 귀를 씻은 이도 있고 不義를 避하여 山속으로 달아나 고비 고사리만 먹다가 굶어 죽은 이도 있다. 이것이「東洋의 良心」이다. 朝鮮의 文化도 이렇게 良心을 가진 藝術家와 學者가 남몰래 슬퍼하며 기뻐하면서 創造를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늘면서도 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革命歌와 더불어 이러한 文化人들이야말로 現代朝鮮 인텔리겐챠의 精髓分子라 할 수 있다. 朝鮮의 文化는 이들 손에 달려 있다.


   文化란 것은 經濟와 政治란 흙 속에서 피는 꽃이기 때문에 商業主義가 斷末魔의 發惡을 하고 있는 이 때에 象牙塔을 지키기는 不可能에 가깝다. 하지만 良心的인 文化人이 團結하여 經濟的인 脅威와 政治的인 壓迫과 싸워 나가면 반드시 朝鮮의 인민이 支持할 때가 올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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