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가는대로

자본주의 풍경과 사회주의 풍경

이강기 2015. 9. 9. 10:06

자본주의 풍경과 사회주의 풍경

 

2000년 12월 4일

 

A형에게

 

이왕 옛날 이야기를 끄집어냈으니 한가지만 더 하겠습니다. 특히 요즘 북한에 가서 <칙사대접>을 받고 온 사람들 가운데서 북한의 집체운동(매스게임)이나 노동당 창건 기념 축제 때의 <두부모 자른 것 같은> 군중들의 행진을 보고는 완전히 기가 꺾여 수령독재의 기형적 사회주의 체제를 은근히 칭찬하는 글(월간 <말>지 최근호 참조)들도 심심찮게 보이는 때여서 더욱 이 글을 쓰고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70년대 초엔 수출제일주의를 부르짖던 시절이어서 수출회사들에 대한 정부의 혜택이 많았습니다. 무역협회나 코트라 주관으로 1년에 몇 차례씩 중요 수출회사 직원들로 무역사절단을 구성하여 여러 나라에 가서 전시회를 개최하곤 했습니다. 물론 여비의 대부분은 무역협회나 코트라가 부담했습니다. 혼자서 엄청나게 무거운 견본가방을 들고 낯설고 물선 곳을 돌아다니며 세일즈를 한다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닌데, 이렇게 단체로, 더욱이 여비까지 보조받아가며 하는 여행은 그야말로 호강하는 것이었습니다. 1974년으로 기억합니다. 중동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한국상품 전시회를 열던 우리들은 처음으로 이집트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74년이면 바로 그 전 해 10월에 4차 중동전쟁이 일어났고, 그 해 1월에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휴전조약이 맺어진 때여서 아직 전쟁의 흔적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때였습니다. 바로 몇 달 전까지 소련군의 원조를 받던 이집트는 사다트 대통령의 용단으로 소련과 관계를 끊고 이제 막 서방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때였습니다. 키신저가 텔아비브와 카이로를 불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왔다갔다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카이로 공항은 낡고 더럽고 게다가 마치 시골 간이역처럼 쓸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입국자가 우리 사절단뿐인 것 같았습니다. 거리도 추하고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고 호텔도 박물관도 유적지도 관광객 구경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것 같았습니다. 카이로 박물관 현관 입구에 미이라 2구를 유리관에 넣어 전시하고 있었는데, 설명서를 보니 바로 람세스 2세 내외였습니다. BC12xx년, 지금부터 3,200년 전, 아 렘세스 2세라, 모세가 나오는 영화에서 이스라엘유민들을 몹시 괴롭히던 바로 그 왕이었습니다. 내부는 제대로 정리가 안돼 더욱 엉망이었습니다. 기저의 피라밋 주위도 멤피스의 유적도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카이로가 이럴진데 나일강 중.상류의 유적들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그 때 그곳은 가지 않았습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낫세르 혁명 이후 내내 이랬다고 했습니다. 바로 사회주의의 풍경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저녁 우리 사절단원들은 호텔(쉐라톤) 옥탑 연회장에서 벌어지는 어느 파티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단장과 총무도 상세한 얘기를 안 해줬기 때문에 그냥 여느 파티겠지 하고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 곳은 바로 당시 이집트의 파미 외상내외가 키신저 내외를 환영하는 파티였습니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이 미국에 가까운 나라니까 미국대통령안보보좌관 환영파티에 한국의 무역사절단을 초청하는 것도 의의가 있겠다싶어 주최측에서 내린 결단이었답니다. 말하자면 희귀성의 득을 톡톡히 본 것입니다. 사회주의 풍경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좌석배치도 키신저 내외가 앉은 주빈 테이블 바로 다음(대각선으로)이 우리들의 테이블이었고, 웨이터들이 진귀한 음식을 서비스 할 때도 우리들은 꼭 주빈 테이블과 같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칙사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키신저가 말(馬)상에 노랑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자기 부인의 목덜미를 주물럭주물럭 맛사지를 해주던 광경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 후 2년이 지나고 내가 모 건설회사로 자리를 옮긴 후 무슨 일로 카이로를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공항, 호텔, 유적지 할 것 없이 관광객으로 완전히 콩나물 시루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박물관 입구에 전시해뒀던 람세스 2세의 미이라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아마 관광객을 끌려고 전시해뒀던 모양입니다), 박물관 내부도 꽤 정돈이 돼 있었고 사람들로 득시걸거렸습니다. 사다트가 친서방정책으로 전환한지 겨우 2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풍경이 180도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쉐라톤이나 힐튼 같은 제법 괜찮은 호텔은 아예 몇 달 전에 예약을 하지 않는 한 들어 갈 생각을 말아야 했고, 공항에서 몇 차례 전화를 한 끝에 잡힌 호텔은 호텔이 아니라 우리 나라 3류 여관 같은 곳이었습니다. 불편하여 짜증스럽기 이를 데 없고, 돈을 주고도 사람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바로 2년 전에 이곳에 와서 칙사대접 받던 일을 생각하니 꿈만 같았습니다. 아,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풍경이구나. 너무나 짧은 기간에 같은 곳에서 두 얼굴을 볼 수 있었던 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이렇게도 다른 것이구나 하고 새삼스레 놀랐습니다.

요즘 북을 방문하여 간혹 감동을 받고 돌아오는 사람들은 혹시 그들의 희귀성 때문에 저들의 자로 잰듯한 의도적인 대접과 볼거리 제공에 깜박한 것이 아닌지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런 두서없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강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