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가는대로

언제나 새 나라 - 왕조교체와 정권교체

이강기 2015. 9. 9. 10:10

언제나 새 나라 - 왕조교체와 정권교체

 

 

 

  2천년 역사를 기준으로 할 때 중국에 비해 우리 나라는 왕조의 교체 횟수가 훨씬 적다. 큰 가닥으로 곱아 보면 네 번, 좀 더 세세하게 따져도 5, 6 회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가 바뀔 때마다 애꿎은 백성들은 많은 혼란과 고초를 겪기도 하고 또 기대와 희망에 부풀기도 했을 것이다. 왕조교체를 혼란과 고초로만 따진다면 수많은 왕조가 바뀐 중국 백성들에 비해 한국의 백성들이 덜 시달렸다고 봐야 하겠다. 한 왕조가 쇠하고 새 왕조가 일어날 때마다 반드시 전란이 일어나 수십, 수백 만 명이 죽어 나간 중국에 비기면 확실히 우리 조상들은 행복했던 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왕조가 바뀌면 새 왕조는 전 왕조의 흔적을 지우느라 안간힘을 썼다. 자기들의 정통성 결여를 앞 왕조의 매도와 절멸에서 찾으려했기 때문이다. 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갈 땐 전복이 아닌 화의에 의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전조절멸(前朝絶滅) 정책 같은 것은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호족들 대부분이 왕건의 유화정책에 의해 고려의 지배계급으로 흡수되어 대대적인 몰락은 없었던 것 같고, 불교가 계속 국교로 숭앙을 받았기 때문에 전조(前朝)의 문화적 유산이 크게 손상을 입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올 땐 사정이 달라 고려지배계급이 거의 몰락했다. 불교가 국교의 위치에서 밀려날 정도가 아니라 외면과 천시의 대상이 됨으로써 그에 따라 많은 문화도 사라졌다. 조선을 강제로 봉인시킨 일제는 조선의 지배계급을 억압과 회유로 이용하려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백성들이 그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활발한 사회적 유동성(계층이동)과 맞물려 그들 구시대의 지도자들(양반)은 나라를 망친 무능한 인간들, 아니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로 매도됐다. "영리한 상놈들"이 일본 세력을 등에 엎고 지도계급으로 부상했으나 이들 또한 백성들의 멸시 속에서 외면 당했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1948년 이후 50여 년은 옛날 식으로 따지면 같은 왕조 같은 나라다. 국호도 국체도 그대로다. 정권이 바뀐다는 것은 마치 한 왕조 안에서 임금이 죽고 새 임금이 등극하는 것과 같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의 여러 정권들은, 일단 정권을 잡게 되면 저마다 마치 새 왕조 새 나라를 창업하는 것 같은 행태를 보여왔다. 정권 자체도 정상적으로 바뀌는 예가 드물었다. 건국 50여 년에 한 정권은 혁명으로 또 한 정권은 암살로 다른 두 정권은 쿠데타로 무너졌다. 조선왕조 508년 동안에 4번의 쿠데타로 정권이 바뀐 것에 비기면 건국 50여 년은 너무나 험악한 세월이었다.

 

  새 정권은 앞 정권의 업적을 매도하는 것은 물론 앞 정권에 충성했던 사람들을 협박하던가 회유하여 자기들의 수하로 만들던가 아니면 있는죄 없는죄 들추어내어 감옥에 집어넣던가 했다. 때로는 헌법도 입맛대로 뜯어고치고 정부조직도 마음대로 바꾸고 지방자치권도 묶었다 풀었다 했다. 대통령도 국회에서 뽑다가 직접선거를 하다가 나중에는 꼭두각시들을 모아놓고 뽑다가 다시 직접선거를 하는 등 엎치락뒤치락 하기를 몇 번이나 했다. 선거구는 또 몇 번이나 바뀌었으며, 국회의 얼굴은 또 몇 차례나 바뀌었는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서울 도심지의 도시계획이 바뀌어 도시의 스카이라인도 미관도 엉망이 돼 버렸다. 동양 최고 건물 중의 하나라는 것도 무슨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미명하에 하루아침에 헐려버렸다.

 

  순응적이고 발전적인 변화를 탓하는 게 아니다. 이래 가지고야 백성들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원칙도 기준도 없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도 모를 정도가 됐다. 좀 큰 기업가들은 마음놓고 기업을 할 수도, 마음놓고 투자를 할 수도 없게 돼 버렸다. 직업공무원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바람을 타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하고, 교육자들은 지난 정권들의 지도자들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망연자실해야 했다. 어제의 충신이 오늘 역적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역적이 충신이 되기도 했다.

 

지금 50대들이 초등학교 때 힘차게 불렀던 "새 나라의 어린이"라는 노래는 이미 흘러간 노래다. 그런데도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새 나라의 어린이"를 계속 힘차게 부르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물건이면 골동품을 제외하곤 헌 것 보다는 새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새나라"는 백성들을 계속 불안하고 피로하게만 만드는 것 같다. 정말 불안하고 짜증스럽다.

 

 

 

(2000년 4월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