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TV들의 생명경시풍조
엉금엉금 살아 움직이는 손바닥만한 게의 양쪽 다리를 두 손으로 잡고 확 찢어서 냄비 속에 넣는다. 어느새 냄비에는 반 토막이 되어 굼틀거리는 게가 그득하다. 거기에 양념을 듬뿍 넣어 끓인 국물을 한 수갈 떠 쩝쩝 먹고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맛이 죽여준다며 여성 리포터는 너스레를 떤다.
얼음에 구멍을 파서 낚아 올린 퍼득거리는 빙어를 그대로 고추장에 찍어서 입에 넣어 우적우적 씹고는 예의 그 엄지손가락 신호를 하며 최고라고 한다.
어스름 냇가에 동리 어른들과 조무라기들을 모아놓고 아직 채 자라지도 않은 잔챙이 고기들을 그물로 수십 마리 잡아서는 모닥불에 구워 먹거나 아니면 찌개를 끓여먹으며 어릴 때의 추억 어쩌고저쩌고 한다.
갯벌에서 낙지를 잡아 꼼지락거리는 다리를 확 잡아떼어서는 그대로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린다. 길다란 꼬챙이로 황소개구리를 콱 찔러 들어올리며 히히거린다. 재래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장관까지 포함된 수백 명이 황소개구리 멸종극을 벌인다.
하늘 높이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 밑둥에 드릴로 커다란 구멍을 뚫어서는 호스를 박아 넣어 플라스틱 통이 그득하도록 수액을 짜낸다. 절절 끓는 방에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며 그걸 통째로 마셔댄다. 몸에 기가 막히게 좋대나 어떻대나 하면서.
요즘 우리들이 곧잘 보게되는 TV 화면 속 풍경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환경프로그램이란 걸 내보내며 생명을 중히 여기고 자연을 보호하며 가꿔야된다고 열을 올린다. 밀렵꾼들이 잡은 야생동물들의 꾸러미들을 화면 가득 열어 보여주며 소리 높여 그들을 고발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부추기고 한편으로는 나무라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아무리 미물들이라지만 인간들의 일순간의 재미나 도락을 위해 학대를 받거나 죽어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계속 강조해야 마땅할 일이 아닌가. TV역시 후진성을 벗기는 아직도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2000.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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