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가는대로

최후의 빨치산

이강기 2015. 9. 9. 10:23

최후의 빨치산

 

 

 

(2004. 4.4, 에머지)

 

마치 무슨 영화제목 같다. 최근 사망한 어느 여자 빨치산에 대한 신문기사 제목이다. 특히 일부 좌편향 신문들은 인터넷 판에서 이 "최후의 빨치산"이 사망하기 전후 오륙 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동정어린 근황기사를 실었다. 어느 이름난 독립투사도 신문에서 이런 후한 대접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인간적으로야 동정을 금치 못할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사람들과 일부 언론이 문제다.

그녀의 장례식 러뽀 기사(오마이뉴스) 몇 구절을 인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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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질곡 온몸으로 맞서 싸운 한 평생
애국통일열사 고 정순덕 선생 민족통일장
님은 변혁과 양심의 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
(기사제목 및 중간 제목)

-前略-
그는 지리산의 영웅 노영호 사령관의
최후를 소상히 증언해 주었습니다.
조국에 바친 피나고 눈물겨운 싸움이었지요.
누가 여자를 갈대라 했던가요.
우리 정순덕 님은 지리산 천년 박달나무였습니다.
정순덕!
지리산의 이름과 더불어,
해방투쟁의 역사와 더불어,
그 이름은 청사에 영원할 것입니다.
-後略-
(이기형 시인의 추도시)

".....해방통일에 앞장서서 살아온 님은 변혁과 양심의 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고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백기완씨)

정순덕씨의 삶은 곧 바로 분단의 역사였다. 장기수들과 민족운동가들은 그가 불구의 몸에도 남을 의지하지 않는 자립정신이 강했던 성격으로 조국통일의 길에 한 평생을 바친 삶이었다고 말했다.
(기사)

“...... 애국심이라고는 한 톨도 없던 자들이 수 없이 사선(死線)을 넘나든 선생을 다리 하나가 없는 불구자로 만들어 23년간 차디찬 감옥에서 신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선생은 불구의 고통 속에서도 뜻을 잊지 않고 꿋꿋하게 살았다. 우리 모두 어려울 때마다 선생을 기억하며 어려움을 이겨내자.”(통일광장 임방규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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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가관이다.
도대체 그녀가 누구의 "애국통일 열사"이며, 그녀가 자행한 일이 누구에 대한 "해방투쟁의 역사"이며 "변혁과 양심의 역사"인가? 그녀가 누구를 위해 "해방통일에 앞장 선" 것인가? 노영호 사령관은 누구의 "영웅"인가?  그녀는 누구의 "조국통일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친 것"인가?

이런 기사를 읽으며 문득 6.25 때 이웃 마을에서, 조카가 우익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 죄 없는 농투성이었던 그의 삼촌을 좌익들이 끌고 가 처형해버리는 바람에 왼 가정이 풍비박산이 돼 버리는 끔직한 일을 본 기억이 되살아났다. 또 50년대 중반쯤인가 지리산 공비들이 내려와 내가 살던 고을의 경찰서장을 죽이고 잠시동안이나마 읍내를 점령하여 주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사건도 생각났다. 이것은 오직 나의 기억일 뿐, 그 시절 좌익이나 공비 내지 공산군들에게 참혹한 죽음을 당한 가족들의 절통한 이야기들을 다 기록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물론 가해자와 피해자가 정 반대가 되어 일어난 애통한 이야기들도 마찬가질 것이다. 이 모두가 분단이 가져 온 민족의 비극이다. 민족 전체가 못나서 저지른 일이다. 여기에 지금 와서 어느 쪽이 더 잘하고 어느 쪽이 더 못하고를 푯대 나게 가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왜 유독 좌익 쪽은 애국자여야 하고 우익 쪽은 비애국자여야 하나? 왜 좌익 쪽은 통일열사여야 하고 우익 쪽은 반통일 분자여야 하나? 왜 좌익 쪽은 민족을 위한 영웅들이어야 하고 우익 쪽은 반역자여야 하나? 왜 지리산 빨치산 활동이 "해방투쟁의 역사와 더불어 청사에 빛나야" 하고 그들을 토벌한 쪽은 "해방투쟁"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

도대체 이 나라를 피땀 흘리며 일군 사람들이 누구인데, 그리고 무슨 체제를 이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나라인데, 50여 년 이 나라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해 왔던 북쪽이 들으면 반색할 그런 헛소리들만 찾아가며 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