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과 파괴, 성과와 비극의 세기
- 글: 죤 K.
갈브레이드-
(1908년생, 하바드대 명예교수, 케인즈학파,
新古
典派등 어느 학파와도 다른, 독자적 학설을
제창
한 경제학자, 학계뿐 아니라 시민사회에도 큰
영향
를 끼치고 있다.)
┌──────────────────────────────────┐
│ 20세기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되는
세기였다. 식민지 지배가 종결되고 │
│ 세계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위대한 성과가 있었는가 하면, 한편으 │
│ 로는
공전의 세계대전이 두차례나 일어났고, 핵무기까지 개발됐다.또한 │
│ 세계적으로 부가 편중돼 풍요로운 지역과 빈한한 지역으로 나뉘어졌다.
│
│ 선진국 안에서도 빈곤은 남아있다. 우리들은 이러한 正과 負의 유산을 │
│ 동시에 간직한채 21세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
└──────────────────────────────────┘
<> 정치 지도력 오류가 세계대전 유발
20세기의 끝이 가까와져 오고 있는 지금, 미래 전망에 대한 예측들이 봇물 터지
듯 나오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되돌아 볼 기회도
가져야 할 것이다. 무엇이 그 동기가 되었고, 무엇이 중대한
사건이었는가, 그리
고 큰 비극은 무엇이었으며 큰 성과는 무엇이었나 등등 - -. 필시,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부터 보다는 과거에 대한
회고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예언
은 대부분의 경우 견식있는 사려보다도 억측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나간 100년간이 인류를 위해 위대한 성과를 가져다 준 시대였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그러나 나로서는, 성과 보다도 비극쪽에 더 강한 인상을 받고 있다.
우선, 두번의 세계대전이 있었으며, 대 공황이 있었다. 이것은 금세기
전반을 가
르는 중대사였다.
인류는 옛날부터 전쟁을 경험해 왔지만, 금세기 두번의 세계대전 정도의 비극적이
고 고통에 찬
전쟁은 예전에는 없었다. 수백만명의 젊은이들이 죽음속으로 내몰렸
다. 유럽이나 아시아, 특히 일본의 도시에서는, 여자도 남자도 어린이들도,
모든
것을 파괴해 없애버리는 무기가 공중에서 투하되는 것을 목격했다. 이른바 원자폭
탄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인류가 이
정도의 대규모적인 고통을 당한 적
은 역사상 있어 본 적이 없었다.
권력과 광기가 결부된 정치적 리더십이 대전을 일으켰다. 내가 1945년 이래 斷續
的으로
연구하고 있는 독일이 가장 현저한 예가 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예가 될
수있는 국가들이 있다. 많은 역사가들은 대전의 배경으로 경제적,
정치적 이유를
찾고 있지만, 나는 정치적(그리고 군사적) 리더십의 오류쪽에 더 큰 책임이 있다
고 생각한다.
하지만 금세기는 전쟁이 전부는 아니었다. 후반 50년 동안에는, 베트남에선
미국,
아프카니스탄에서는 소련이라고 하는 초강대국의 逸脫을 제외하면, 비교적 평화로
왔다. 군사주의자들은 냉전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냉전과 열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제부터 금세기의 또 다른 측면을 보자. 두개의 위대한 성과가 있었다. 하나는
식민지 지배의
종언이다. 타인을 통치하는 것을 자신들의 신성한 권리라고 생각하
는 무례한 방식은 없어졌다. 레닌의 약간 과장된 표현을 빌린다면, 풍요한
나라의
노동자가 빈한한 나라의 노동자에게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사태는 없어진 것이다.
놀랍게도 식민지주의의 종언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겨우 수년만에 일어났
다. 미국,
영국, 이태리, 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일본도 식민지를 해방 또는 해
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의 식민지들은 민족자결의 권리를
되찾았다. 일부에
서는 잘 되지 못하고 비참한 사례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변화의 중요성이 손상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통치할 수 있다. 그것은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고, 지나치게 무능
하든가
부패하든가 잔혹한 정부라면, 예컨대 유엔이 주권을 대신 집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결의 기본원칙은 변함이 없다. 이것이 바로
금세기의 위대한 성
과의 하나다.
<> 풍요로운 나라에도 빈곤은 있다
또 하나의 성과는 경제적인 측면이다. 20세기에 들어오면, 옛날에는 소수만이 가
질 수 있는
특권을 다수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1900년 이전에 태어
난 어떠한 사람도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수량과 품질의
재화와 서비스다.
다양한 소비재와 서비스가 침투한 나머지, 예술가나 작가는, 만족속의 결핍감을
찾아내느라 몰두하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광고업과 판매업은 20세기에 생겨난 중
요한 직업의 하나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어쨌든 20세기의 성과는 부정할 수 없다. 수백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경제문제
도,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생활 수준으로 단번에 끌어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자체를, 금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인 죤 메이너드 케인즈는
이미
1930년대의 저작에서 예측했던 것이다. 경제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경제학자들은 모두 칫과의사처럼 흔해 빠진 기술자가
되었으면 좋았을
터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20세기는 이제 끝나가고 있지만, 3개의 큰
경제적, 사회적인 문제가 미
해결인채로 남아있다. 이것이 금세기의 負의 유산이
다.
첫째로, 혜택을 받은 나라에서도 호황과 불황 - 일본인들의 표현을 빌리면 거품과
그 붕괴 -
라고 하는 고통이 연속되고 있다. 미국이 바로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어차피 현재와 같은 주식시장의 바보스런 상태(주가 폭등)는 끝을 보게
될 것이
다. 아니, 아마 벌써 끝이 오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결과가 결코 유쾌한 것은
아닐 것이다.
둘째로, 혜택받은 나라들, 특히 미국에서 행복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극히
일부의 초 부유층이 소득이나 생산의 큰 비율을 부당하게 장악하
고 있다. 더욱이 그 비율이 확대돼 가고 있다. 이 풍요로운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
은 여전히 빈궁하며 식량이나 주택, 기초의료가 보장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대도시 중심부에는 빈곤층이 대량으로
몰려있다.
금세기가 이윽고 끝나려는 지금도 대부분의 산업국가들에서는, 어떠한 특권도 없
고 혜택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조치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유감스
러운 일이지만, 이러한 국가들은 빈곤을 절멸하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적
약자들
에게 충분한 혜택을 베풀지 못하고 있다.
잘살고 있는 국가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하위부
류에 속한다.
금세기가 다 가고 있는데도 미국에서는 여전히 빈곤한 자들에 대해
서는 정치가 지나치게 쌀쌀맞다. 올바른 사회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 안정적이고 공정하고 능력있는 있는 정부가 아니면 진보는 불가능
세째로, 금세기 내내 낮게 드리워진 검은 구름은 빈곤한 국가들, 이른바 제 3세계
라고 하기도
하고 "南"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발전도상국이라고 하는 낙관적인
말로 불러주고 있는 국가들의 문제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식
민지 지배로부터 해방된 후 가차 없는 빈곤속으로 던져졌다.
이러한 국가들은 스페인과 폴투칼 식민지배로부터 한 발 앞서 벗어난 중남미제국
과 한 묶음에
들어간다. 일부 국가 특히 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은 이러한 새로운
환경 아래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다른 많은 국가들 특히 아프리카
제국
들은 여전히 빈곤을 해매고 있다.
이처럼 빈곤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지는 않다. 순수한 경제적인 이유 때
문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주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농업이나 공업의 진보를 위해선 우선 무엇보다도 안정돼 있고,
능력이 비
축돼 있고, 부패하지 않는 정부가 필요하다. 이른바 많은 신흥 독립국가들은 능력
이나 공정성을 묻지 않고 자치가
허략되었다.
간혹 독립 초기에 사회주의 실현이라고 하는 사회적 임무를 행한 적도 있지만, 그
것은 경험이
부족한 신흥국 정부의 능력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실패가 결코 길을
비켜가지 않았다. 시장경제 - 옛날에는 자본주의라 불려왔다 - 의
우수한 점은,
그 자체에 원동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안정적이고 공정하고 능력있는 정부가 아니라면, 오늘날과 같은 새로운 세계에서
는 경제적 진보는
불가능하다. 선진제국으로부터의 원조는 안정된 정부가 존재하
는 국가에서는 효과적으로 이용됐다. 안정된 정부가 없고 사회가 혼란돼 있는
경
우에는 플러스 효과가 상실되고 만다.
이러한 경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20세기의 세계는 부국과 빈국으로 갈라져 있
다. 능력있고
효과적인 정부가 어떤 가난한 국가에서든지 탄생된다면 상황은 변하
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가망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20세기다. 인류가 위대한 성과를 올렸던 세기였다. 이런 점은 분명이 인정
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전쟁을 일으켰으며, 마침내 지구적인 규모로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핵무기를 개발한 것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빈곤이
여전히 존
재하고 있는 것 - 풍요로운 나라에서도 빈곤이 있으며, 빈한한 나라에선 빈곤이
엄연한 현실이 되고 있는 것도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일 것이다.(니혼게
이자이, 97.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