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과연 어떤 세기였던가?(8)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된 세기
- 글: 알마티어 센
- (하바드대 교수, 33년 인도생.
후생경제학이나 개발경제학으로 알려진, 경제윤리학이라는
새 학문분야의 확립에 도전하고 있다. 현재
가장 유럭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후보로
알려지고있다.)
20세기는 민주주의의
흥륭기였다. 일부 비 민주적, 권위주의적인 국가들이 경제성 장을 이룩한 것도 사실이지만, 비 민주적 체제가 발전에 유리하다고 하는
가설은 근거가 없다. 민주주의 체제는 기근을 위시한 경제.사회의 위기방지에도 공헌하고 있다. 금세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의 하나는
시장경제가 제 기능을 갖게 하기 위해 서는 민주주의가 불가피하다는 점일 것이다.
<> 금세기 들어 각국으로
확산
20세기에는 여러가지 큰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19세기를 지배해왔던 영.불을 중 심으로 한 유럽帝國이 종말을 고했다. 두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파시즘과 나치즘의 흥망을 보았다. 공산주의의 발전과 몰락(구 소련의 경우), 또는 그것의 근본적인 변화(중국과
베트남의 경우)도 목격했다. 서양의 경제적 지배로부터 일 본이나 동아시아가 크게 지배권을 갖게되는 새로운 경제균형쪽으로 세계가
변하는 것도 보았다. 이 글에서는 그 가운데서 하나만 선택하여 서술해 보려 한다. 민주주의의 흥륭에 관해서다. 말할 필요도 없이
민주주의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에서 그 기원을 갖고 있다. 그것이 기능적인 통치 시스텀으로 서서히 발전하는 과정에는 1215년의
마그 나칼타(대헌장)에서부터 18세기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전쟁, 19세기의 구미 에서의 참정권의 확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이념이 "통상의" 통치형태로 확립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이념이 남성만이 아니라M여성도 포함돼야 한다는 개념이 정립된 것도 겨우 20세기에 들어와서 부터였다. 민주주의 에
저항하는 움직임들이 아직 남아있기는 해도 그 보편성이 모든 사람들에게 지지 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일대 사상혁명이며,
20세기의 중요한 성과의 하나다. 그러면 민주주의는 과연 제대로 기능해 왔던 것일까? 나는 특히 유효하게 제대로 기능해 왔다고
생각한다. 나의 모국인 인도는, 민주주의를 정착하는 이른바 하나 의 전쟁터였다. 1947년의 독립전야의 인도는 거의 혼란상태였다. 경험이
없는 정 부, 납득할 수 없는 국토분할, 그리고 자치주내의 폭동과 사회혼란이 확대됐다. 민주적 통일인도의 장래를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반세기를 지난 지금, 인도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 다종다양 한 언어와 종교를 포용한다고 하는
어려운 문제도 해결해 왔다. (인도는 힌두교도 가 중심이지만, 이슬람교도의 수가 세계에서 3번째이며, 시크교도도 자이나교도도 있다.
또 기독교도도 수백만명에 달한다.). 인도의 민주주의 제도는 지금까지 수많은 시련에 봉착해 왔다. 70년대 중반, 당시 의 인디라
간디 총리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국민의 정치적 시민적 권리를 억압하 려고 한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간디총리는 이 정책을 추인받으려고
실시한 총선 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 근거없는 "이광요 가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비민주적인 체제가 오히려 유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 다. 이광요 전 싱가폴 총리가 이런 견해를 토로했기 때문에 "이광요
가설"이라고 도 부른다. 확실히 어떤 면에서 보면 권위주의적인 일부 국가(한국, 싱가폴, 개혁노선후의 중 국등)이, 그 보다 덜
권위주의적인 국가(인도, 코스타리카, 저매이카등)보다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광요 가설"은 극히 한정된
정보에 근거한데 지나지 않으며 모든 데이터를 폭넓게 통계적으로 검증한 것이 아니다. 한국이나 중국이 높은 경제성장을 실현한 사실을,
권위주의가 경제성장에 적당하 다고 하는 "결정적 근거"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성장 률이 높은 국가(세계
전체에서도 최고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국가의 하나다.) 인 보츠와나가, 이 대륙에서는 민주주의의 오아시스라고 하는 결론을 도출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실제로는 권위주의적인 통치에 의해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억압하는 것이 경제발 전에 진정으로 유리하다고 하는
증거는 전혀 없는 것이다. 로버트 바로나 애덤 프 레월스키에 의한 계통적인 실증연구에 의해서도 정치적권리가 경제활동과 대립한 다고
하는 설은 근거가 없다. 정치적 자유를 옹호하는 주장은 결코 색이 바래지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정책이나 사화환경이 동 아시아 경제를
성공으로 이끌었는가 하는 것이 이 제와서 겨우 연구되고 있다. 각종 실증연구에서 공통되고 있지만, 경제발전을 위 한 "유익한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시장개방에 의한 경쟁, 국제시장의 이용, 고수 준의 지식율과 학교교육, 토지개혁, 투자.수출.공업화를 자극하는 공적
조치등등이 다. 이러한 정책이 민주주의와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은 도대체 말이 안되는 소리 다.
<> 기근 방지에 큰
역할
정치적 시민적 권리가 경제위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 지를 검토하는 것도 중요하 다. 정치적 시민적 권리를 갖게 되면, 사람들은
정부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 록 요구할 수 있다. 정치적 권리의 행사(투표, 비판, 항의등)가 정부의 대응을 변 화시키는
것이다. 세계 기근의 역사를 보면, 언론이 비교적 자유로운 독립 민주국가들에서는 큰 기 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주목되는 사실에
유의해주기 바란다. 최근의 경우를 보면, 수단, 이디오피아, 소말리아등 기타 독재정권국가에서 기근이 만연했다. 과 거의 예에서는
1930년대의 소련이나, 대약진정책에 실패한 1958-61년의 중국(2천 300만 - 3천만이 죽었다.)등이 있다. 현재의 북한을 보아도
독재정권국가에서 기 근이 만연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겠다. 기근은 자연재해와 결부된 것으로 생각되는 일이 많다. 대 약진정책이
실패한 때 의 중국은 홍수가 있었으며, 좀 전의 이디오피아나 오늘의 북한은 한발(북한은 홍 수와 한발) 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비슷하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자연재해를 입은 나라들이 아무런 기근도 겪지 않은 예도 많다. 정부가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 기아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기근으로 사망하는 것은 태반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부가 고용계획을 수 립하여 사람들의 수입을
확보하고 식량을 입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아사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최 빈국이라고 해도 심각한 한발이나
홍 수, 기타 자연재해를 당했을 경우(예컨대 1980년대 초의 짐바브웨등)에도 국민들 에게 충분히 식량을 공급할 수
있었다. 기근은 그것을 방지하려고 하는 진실한 노력이 있으면 쉽게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선거에 이르러 야당이나 매스컴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민주주의 정부는 기근을 방 지하기 위한 진솔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영국통치하에서 독립할 때까지 기근이 계속됐던
인도(내가 어렸을 때 목격했던 마지막 기근은 1943년이었 다)는 독립후 복수정당의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확립되자 기근이 돌연
사라졌다 는 것도 놀랄일이 아닌 것이다. 기근을 전형적인 예로 들었지만, 정치적 시민적 권리는 경제나 사회의 파탄을 전 반적으로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행해지고 있는 경우에는 민 주주의의 이러한 작용은 거의 의식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사 태가 악화될 때에는 민주주의의 인센티브가 큰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적 인센티브(시장 시스텀이
제공하는)를 장려하는 한편 으로 정치적 인센티브(민주주의 체제가 제공하는)는 무시한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불균형한 기본원칙을 선택한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인센티브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보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것이 20세 기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의 하나이다.
이것을 무시하면 우리들 자신이 위험에 처 해진다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니혼게이자이, 97. 9.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