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개혁을 가로막는 문화적 장벽
(아래 글은 Financial Times지 97년 11월 29/30일 주말판에 실린 John Burton
서울 특파원의 글 "상처입은 호랑이, 자기 줄무늬 바꾸는 걸 싫어하다."를 옮긴 것임.)
서울 북편 산악중허리에 자리잡고 있는 도선사엔 날마다 중년의 사람들이 모 여서, 약 40년 전에 한국을 현대
산업국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군부독재자인 고 박정희 대통령 초상화를 모셔놓고 경제회생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다.
세계 11번째의 경제대국이 갑자기 몰아 닥친 외환위기에 국가적 자존심도 접 어두고 IMF에게 적어도 200억
달러 이상의 긴급구제금융을 요청한 이후 불길 한 예감이 온 나라를 엄습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부국들의 엘리트 클럽인 OECD에 가입한 지 겨우 1년 만에 한 때 아시아의 가장 튼튼했던
"타이거" 경제국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나락으로 떨어 져 버린 것에 대해 충격과 울분과 수치심이 뒤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비록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은 하면서도, 한국인들은 단일민족 답게 고난의 시 기에 "URI NARA (our
country)"의 이익을 위해 단결하곤 하던 그 천부적인 능 력을 발휘하고 있다.
서울 거리엔 외화난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외국 동전을 수집하는 모금함 들이 늘어나고 있다. 공영
텔리비젼의 저녁 뉴스는 시민들이 소지한 외화 푼돈 을 은행에다 예금하는 장면들을 칭찬섞인 멘트를 곁들여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금융 위기에 대한 공공 내지 당국자들의 대응을 보면 어이없게도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외국 관찰자들이 염려 하고 있는 것은, 고도성장으로 생활수준의 급속한 향상에 길들여져 온 한국인 들이 기대가
갑작스럽게 무너져 내리는 것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아직도 초 현실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급속하 게 변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 서방 외교관은 말했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현재의 재앙이 번영을 향한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조그마 한 돌부리 정도로 믿고 있는
반면, 외국 투자가들은 한국이 경쟁력있는 국가로 남기 위해서는 고통스런 구조조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고 있다.
IMF가 제시한 어떤 개혁도 그것을 실행하기에는 정치적 타성, 관료들의 저항, 국수주의자들의 적의, 한국과
글로벌 이코노미 사이의 싸움에 도대체 얼마만 한 댓가를 치르야 하느냐며 분출될 사회적 불만등 어느 것 하나 어렵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한국은 항상 변화에 쉽게 대처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나라였다. "한국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어떤 문화적인 혁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 미국 투자은행 간 부는 말했다.
한국의 주도적인 반체제적 노동조합은 IMF 구제금융을 "경제에 대한 외국간 섭"이라고 불평하고 있는 반면,
아직도, 경제적인 이용을 위한 외국인 투자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많다.
더욱이 시장개혁에 대한 대중들의 여론은 그것이 빈부의 차를 심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 대중문화 의 강력한 평등주의적인 윤리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회 사들이 도태됨으로써
실업률이 현재의 3배인 9%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 는 경제학자들의 예측으로 사회적 우려감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정치가들이 과연 철저한 개혁을 단행할 용기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의구 심도 상존하고 있다. 금융과 산업의
구조개혁은 아마도 잠시동안의 일일지 몰라도 거기서 오는 경제적인 침체는 어느 정부도 피하고 싶어하는 지독한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과제는 12월 18일의 대통령선거에서 권력을 쥐 게될 차기 행정부의 몫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곳에서 살아보면 왜 많은 한국사람들이 경제 자유화를 기회로서 보다는 오히려 위협으로 받아들이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현재의 한국 위기를 해결하 기 위해서는 박정희같은 지도자가 나와 그의 국가통제주의적 경제정책을 써 야한다고 주장하는 박정희
흠모자들이 더우 늘어나 도선사로 오르는 가파른 길을 메우게 될
것이다. ------------ 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