飜譯글

서구적 가치와 아시아 위기

이강기 2015. 9. 15. 19:31

서구적 가치와 아시아 위기

 

 

 

(이 글은 니혼게이자이  98년 4월 19일자에 실린
이시쯔까 마사히꼬 논설위원의 시평을 요약한 것임)

 

 

 

어카운트빌리티(Accountability)라고 하는 영어는, 적절한 번역어도 없는 채
아시아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서구가 아시아나 일본을 비판하는
말에 "어카운트빌리티와 투명성의 결여"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

 

태국에서 시작된 통화위기는 처음엔 아시아의 경제, 정치, 사회 시스텀
불비가 큰 원인이라고 하는 견해가 강한 것 같았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은
현재의 글로벌 자본주의 아래에서 국제자본의 조금도 용서없는 행동에 귀착
되는 것이며, 부차적으로 "아시아적 엉성함"이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하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 같다.

 

금융을 황망하게 자유화하여 위험성이 높은 외자를 대량으로 끌어들이고, 환율의
대 달러 링크를 당연시하여 비생산적인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버블과 금융위
기를 일으킨 아시아 제국의 자기책임은 분명히 묻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격
렬한 설사와 탈수증세를 일으키는 국제자본이라고 하는 극약을 마구 마셔댄
것은 충분한 체력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체력을 과신한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국제자본의 폭력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요인이 일으킨
통화위기는, 민주주의나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계기로서는 설득력이 약하지
않을까 한다. IMF가 구제융자의 조건으로 국가주권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
서의 국내개혁을 (특히 아시아 제국에) 요구하는 것에는 선진국 내에서도
이론이 있지만, 어떠한 권위를 갖고 그러한 요구를 할 수 있는지가 확실하
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미의 미디어들은 통화위기를 계기로 격렬하게 아시아
비판 논조를 전개하고 있다. 금융제도의 취약성을 지적하는 것은 그렇다 치
더라도 아시아의 정치풍토, 사회제도, 문화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면이
적지 않으며, 통화.경제위기의 해결에는 결국 정치개혁과 "민주주의"및 문화
혁명이 필요하다고 언성을 높이고 있다.

 

아랍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저술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걸핏하면 다른 사
람을 허위.불성실한 것으로 추락시켜버리는 정확성의 결여, 그것이야말로
동양인들의 심리의 중요한 특색이다."고 하는 19세기의 영국인의 견해를
인용하고 있다.("오리엔탈리즘"에서). 이러한 동양인에 대한 이미지가 아직
뿌리깊게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1875년 "문명론 개략"을 저술한 후꾸자와 유기찌는, 서구가 스스로 도달한
문명의 높은 곳에서 여타세계를 깔보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꾸자와는, 아시아, 특히 일본이, 그렇게 보여지는 상황에서 숙명적으로 탈
출할 수 없다고 하는 서구의 아시아관을 비판했다.

 

통화위기를 둘러싼 서구의 아시아 비판은, 서구세계가 다시 "민주주의"
나 "시장원리" 라고 하는 문명의 높은 곳에서 "뒤떨어진 아시아"를 깔보며,
자기들 마음에 맞게 변혁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서구가 아시
아 위기에 대해 옛날에 했던 것 처럼 우쭐대고 있는 것은 "아시아적 가치"
의 도전이 좌절됐기 때문이다.

 

아시아 통화위기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는 잠시 제쳐 놓고, 일찍부터
서구의 제도를 들여와 근대화에 매진해 온 일본이 어카운트빌리티나 투명성의
면에서 지금도 다른 아시아 제국과 동질의 문제를 갖고 있다고 보여지고 있
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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