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삼천리 제8권 제12호 | |||
호수 | 제8권 제12호 | |||
발행년월일 | 1936-12-01 | |||
기사제목 | 나의 遺言狀 | |||
필자 | 魯迅 | |||
기사형태 | 문예기타 | |||
나는 페병으로 醫師로부터 죽오리* 宣告를 받고 遺言狀을 써 보았다. 1, 예전부터의 友人을 除하고는 葬儀 때문에 아무개 한테서든지 단 一錢도 받지 말 일. 〈220〉 2, 입관 埋葬을 되도록 빨리 하여 버릴 일. 3, 紀念的 儀式들은 一切하지 말 일. 4, 죽은 사람을 있고 自己의 生活을 생각할 일. 그렇지 않으면 너이들은 정말 못난둥이 되리라. 5, 子息들이 成長하여 才能도 別로 없고, 조그마한 일을 얻어 生活할 수 있거든 無用의 學者나 美術家가 되지 말 일. 6, 他人과 約束한 境遇 이것을 眞正으로 믿지 말 일. 7, 他人을 傷케 하고 復*에 反對하고 寬大을 主張하는 者에는 가까히 가지말 일. 數三人의 내 동무들이 나 몰느게 相議하여 米國의 *醫師에 來診을 請하였다. 그는 上海에서는 유일의 페병 專門家이다. 진찰을 끗내자 그는 날 더러 병에 强硬히 對抗할 수 있는 가장 典型的인 中國人의 하나이다. 라고 稱*하있다. 그와 동시에 이제는 곳 죽으리라고 宣告하였다. 그리고 만일 내가 西洋 사람이엇떠면 벌서 五年前에 죽었으리라고 말하였다. 이 意味는 나의 感傷的인 友人에게는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나는 그의 處方箋을 받지 않엇다. 웨 그러냐 하면 그는 醫學을 西洋에서 배운 까닭에 5 年前에 죽었을 病者에게 處方箋을 줄 까닭이 없을 것이니까. 그러나 D醫師의 診斷을 적확하였다. 그 後 나는 X光線으로 胸部을 撮影하여본 즉 그 診斷과 거지반 같았다. 나는 이 宣告를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지 않었다. 그러나 어쩐지 影響받는 배 있었다. 나는 밤낫 누워 있었다. 이야기 할 근력도 없이 讀書할 근력도 없이 新聞 좆아 붓 잡을 수 없었다. 또 나는 「헌 움물과 같다.」라고 할 境地의 *鍊을 하고 있지 않다. 나에게 남기여 있는 것은 다 먼 생각 뿐이었다. 그러고 떄로는 死에 대하여 생각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것은 「二十年後에는 英雄으로 換生한다.」한다든가 또는 木棺 속에 편안히 잔다는 그런 것이 아니고 臨終을 앞에 둔 때의 ?事있다. 이 때 나는 死後에는 幽影이 없다고 믿는 일이 차츰 확실히 알려지었다. 나는 단 한 번 遺言을 쓰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내가 만일 大臣이나 百萬長者이었더면 나의 子息이나 사위나 그밖겠 사람들이 벌서 나에게 遺言을 쓰게 하였으리라고 생가되었다. 나도 親*들에게 한 번은 이렇게 遺言이라고 써 본 것이다. 생각컨대 내가 예전에 게데, 콜화잇의 版畵集을 써 달나고 〈221〉 付託하였다. 두 사람이 모두 서로 가까운 親舊이요 序文을 써 달나고 함에는 適任者라고 생각하였기에 얼마 後에 그 女子는 그것을 써내게 보내였다. 그래서 나는 矛盾君에게 中國語로 飜譯하여 주도록 付託하였다. 그 중에는 이러?œ 一節이 있었다. 「훨신 以前부터 나는 鉛筆이나 펜의 스케취나 木版畵나 옛징그」에 많은 詩稿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作品에는 두 가지의 主題가 뚜렸하여 있다. 젊을 때의 主題는 反抗이었다. 晩年에는 母性愛와 母性의 保障救濟死 등을 取扱하고 있다. 그의 全 作品을 싸고 있는 雰圍氣는 受難的인 또 悲劇的인 것으로 被*迫者를 保護하려고 하는, 깊은 熱情的인 意識에 넘처 있는 것이다. 어떤 떄에 나는 그에게 물을 일이 있었다. 「예전에 당신은 反抗을 主題로 하고 있어쓴데 지금은 死의 觀念을 버리지 못하는 듯이 내게는 보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일이리까.」 그런 즉 그는 무거운 語調로 이렇게 對答하였다. 「아마 나을 먹어 그런 게지요.」 이 一節을 다 읽고 난 뒤 나의 머리를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1910년 경이라고 생각한다. 궐녀는 畵題에 「死」를 선택하였는데 그 때 그의 나은 겨우 43, 4이였다. 나의 머리를 스처 지나간다는 것은 물론 나의 연령에도 관계는 있다. 그러나 10年前을 *想한 즉 나는 그렇게 깊이 死에 대하야 생각하지는 않었다. 이것은 아마 우리들의 「死」라는 것이 어데든지 흔히 있는 것인 까닭이겠지요 또 死를 생각하는 일 같은 것은 重大한 일이 아니라고 심상스럽게 생각하여 西洋 사람 모양으로 거기 대하야 진실스럽게 생각하지 않었든 까뉀이겠지요. 어떤 西洋 사람은 가장 死를 두러워 하는 것은 中國 사람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 보다도 어룸푸시 죽어버린다. 일반이 믿고 있는 死後의 상태는 그들로 하여금 더군다나 死에 無關心하게 한다. 우리들 中國 사람이 *影(近代的으로 말하면 靈魂)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만일 幽影이 있다면 그것은 죽은 뒤에도 역시 人間이 아니고 幽影이다. 어째든 無의 속에 사라저 버리는 것은 아니다.(中略) 지금 내가 幽影이 되어 이 세상에 좋은 子孫이 있다고 하면 零細한 돈을 얻기 위하여 原稿를 팔 必要도 없고 또 서점에 돈 받으려 갈 까닭도 없을 것이다. 나는 다만 棺이나 陰沈水의 관에 편안히 눕고 싶다. 그래서 新年이나 祭日에 좋은 飮食을 많이 담은 食卓이나 많이 싸하는 貨幣를 눈 앞에 본다고 〈222〉 하면 그것은 얼마나 愉快하랴. 그러나 저 세상에도 主*者는 있다. 그는 엄격하고 공평하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寬大하게 때로는 선사도 받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마 臨終 좇아 생각지 않고 그저 어룸푸시 살고 있다. 나도 또한 때이 一黨에 屬한다. 30年 前 나는 醫學을 工夫하고 있을 때에 靈魂의 有無를 探究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모르고 말었다. 그리고 死라는 것은 苦痛인지 어쩐지도 조사하여 보았다. 결과는 사람마다 모두 달느다 함이다. 그 後 그 以上 더 硏究치 않고 그대도 두었다. 이 1年間 나는 友人의 死를 哀悼하는 文章을 몃 개를 썼다. 그러나 내 自身의 死에 대하여 생각한 일은 없다. 이 2年間 나의 병은 지금보다도 더 심하게 되여 病床에 눕는 때도 비교적 많게 되었다. 그래서 차츰 연령이란 것도 생각하게 되였다. 거기에는 또한 별다른 理由도 있었다. 어떤 作家들은 好意的으로 어떤 作家들은 惡意를 가지고 不絶히 나의 연령을 도로 불녀 내도록 애쓴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遺言을 아직 確實히 써 놓은 것은 아니다. 나는 잠잣고 누어서 때로는 아조 切迫한 생각 좇아가지는 때 있다. 원래 죽어서 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것은 苦痛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長?의 刹那는 아마 그렇지 않으리라. 生涯에 한 번 있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참으리라. 그 뒤 나의 명은 조금 좋와젔나 나는 지금까지 쓴 것은 정말 죽기 전의 상태는 아니다. 정말 죽기 전에는 이러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지 않으리라. 내게 대해서도 죽을는지 살는지 모르것이다. 〈223〉 〈22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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