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鄕

벌초

이강기 2015. 9. 16. 09:05
벌초    
 
 
 
잡초가 키대로 자란 한여름에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 문득 차창 밖 산비탈에 산
뜻하게 손질해 놓은 무덤들이 눈에 들어 올 때면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진다. 고향 산자
락에 지금쯤 필시 잡초에 묻혀있을 조선님들의 산소가 생각나서다. 사시사철 저렇게
알뜰하게 무덤을 손질하는 자손들도 있는데, 일년의 절반 정도를 잡초 속에 방치하다가
추석 벌초마저 멀리 있다는 핑계로 참여하지 못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르지 않고 벌초행사에 참여했었다. 명당자리를 찾느라고 그랬는지
몰라도 윗대의 산소들은 한결같이 고향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의 정상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으니 그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음력 8월 초순이면 아직도 한낮의 뙤약
볕은 여름 폭양 못지 않은데 길도 없고 나무와 칡넝쿨과 가시덤불이 뒤얽힌 산등성이를 비
지땀을 흘리며 오르다 보면 현장에 미쳐 도착하기도 전에 녹초가 되어버린다. 현장 모습은
더욱 가관이다. 작년 이맘때 분명히 벌초를 했는데도 무덤은 키를 넘는 억새며 떡갈나무며
칡넝쿨 속에 완전히 묻혀 있다.


"이게 무슨 조상 섬기기람!" 새순이 돋아나는 음력 3월부터 8월 초순까지 약 5개월을 잡초 속에
묻혀있게 하면서 1년에 한번씩 곤욕을 치르며 행하는 벌초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다. 윗대에
도 그 윗대에도 이런 식으로 선대 산소들을 관리해 왔을 터이니 우리 나라 무덤 관리 풍습이 잘
못돼도 한참 잘 못된 것 같다. 어디 벌초뿐이랴. 초상이며 기제사며 묘사 등이 어느새 알맹이는
없고 순 형식에만 치우쳐 져 진짜 조선님들의 영혼이 계시다면 노발대발할 지경이 돼 버렸다.


물론 모두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차창으로 본 산소도 그러했지만, 지기(知己) 한 사람도 마
산에 거주하면서 주말이면 거의 빠짐없이 어머니 산소를 찾아와 몇 시간씩 잡초를 뽑고 어머니
와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 산소는 일년 내내 잡초
한 포기 없이 고운 잔디로 덮여 멀리서 보면 반질반질 윤이 날 지경이고, 봄이면 무덤이 꽃밭으
로 변한다고 한다.


선대 산소를 왕릉처럼 장식하는 사람들과 고급 공원묘지 같은 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제외하
고는 사시사철 이렇게 알뜰하게 묘소를 손질하여 반듯하게 해 놓는 후손들이 전국을 통틀어 과
연 얼마나 될까? 이름만 공원묘지지 옛 공동묘지 비슷하게 가격이 저렴한 곳은 관리회사가 있다
해도 1년에 한번씩 밖에 벌초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여름철에 잡초 속에 묻혀 있기는 일반묘지와
매 한가지다. 어느 해 늦여름 문상(問喪)길로 서울근교의 무슨 기독교 단체 묘지에를 갔다가 매
장된 지 4-5개월쯤 돼 보이는 옆 무덤에 잡초가 키로 자라 있는 것을 보고는 하도 보기가 안타까
워 같이 간 친구와 함께 주섬주섬 풀을 뽑아 준 적이 있다. 돌 화병에 꽂힌 꽃이 말라 비틀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삼우제를 올린 이후에는 가족들이 한번도 찾지 않은 것 같았다. 매장한지 겨우
몇 개월 사이에, 더욱이 가족들이 주말이면 쉽게 와 볼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무덤이 이 모양이니,
후손들이 모두 먼 도시로 뿔뿔이 흩어져 가는 바람에 외로이 고향 산마루를 지키고 있을 무덤들
의 사정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싶었다.


그나마 아직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무덤들의 주인공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돌아간 후, 예컨
대 우리들의 아랫대의 아랫대쯤 가면 과연 어떤 상황이 될까? 도시에서 나고 자라 증조대 고조대
의 산소가 고향 어디쯤 있는지도 가물가물할 후손들이 과연 알뜰히 선대의 무덤들을 보살피기나
할 것인가?


어릴 때 고향 산마루 이곳 저곳에 수년이 지나도 벌초를 하지 않고 그냥 버려져 있는 무덤들을
많이 보았다. 어른들 얘기로는 "후손이 끊어져 버려진 무덤들"이라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
면 후손이 끊어진 무덤들이 아니라 후손들에 의해 "잊혀진" 무덤들이었던 것 같다. 우리들의 부
모님 조부모님들의 산소가 그렇게 "잊혀진" 무덤들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물론
옛날에도 불천지위(不遷之位)라 하여 시조(始祖)나 중시조(中始祖) 내지 큰 공훈으로 사당에 영
구히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神位)들을 제외하고는 7,8대가 지난 무덤들은 그냥 버려져
자연의 품속으로 돌아갔었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젊은이들의 성향으로 보아 7,8대는커녕 제 조
부모 내지 제 부모의 산소마저 제대로 돌볼 지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어른들의 이런 걱정들 때
문에 더러는 고향에다 납골당을 만들기도 하는 것 같지만, 이 역시 세월이 까마득히 흐르면 아무
도 찾는 이 없어 거대한 석물(石物)들이 오히려 흉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도 있다. 유구
한 세월은 결국 모든 것들을 망각의 늪 속에 묻어버리고 말 것인즉, 얼마간 기억하다가  차라리
잡초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이 아닌 가 하는 의견인 것 같다.


벌초 생각만 하면 마음만 무거워진다. 공연히 이 얘기를 꺼냈나보다.
(200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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