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鄕

그리운 시절 이야기

이강기 2015. 9. 16. 09:10

그리운 시절 이야기

    

또래들 너 댓이 동리 앞 물이 얕은 둠벙에서 퐁당퐁당 멱을 감다가 그 중 한 아이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아아는 우째 해가꼬 낳노?

 

아마도 지난 밤 건너 마을 XX아지매가 출산한 것을 떠올리고 하는 말 같았다.

다른 한 아이가 말했다.

 

에이, 아직 그것도 모리고 있나? 아아는 말이다. XX리를 해 갖고 안 낳나.

 

또 다른 아이 하나가 말했다.

 

XX리가 머꼬?

 

두 번째 아이가 자못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이제 보이 영 멍텅구리다. XX리라는 것은 말이다, 남자와 여자가 둘이 자면서 XXXX를 요로케 (왼손 엄지와 무명지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오른쪽 무명지를 그 속에 넣는 시늉을 하며) 하는 거 아이가.

 

하하하하고 세 번째 아이가 크게 웃었다.

 

순간, 여태껏 개헤엄 연습을 하며 또래들 종알거리는 소리를 듣고만 있던 네 번째 아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까 점심 먹은 것을 울컥 토해내고 싶을 정도의 역겨움까지 느꼈다. <부끄루바서 우째 그런 드러운 짓을 하노?>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두 번째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평소에, 아이는 여자가 나이가 들면 자연히 생겨서 낳는 것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는 터였다.

 

, 거짓말도 잘한다. 누가 그러더노? 니가 직접 봤나?

 

이리하여 두 번째 아이와 네 번째 아이 사이에 심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다른 아이들도 편이 짝 갈라졌다. 좁은 둠벙 속이라, 한동안 귀가 멍멍할 정도로 왁자지껄 큰 소리로 다투다가, 마침내, 당장 "기영이" 에게 물어봐서 누가 이기나를 판가름하기로 결정이 됐다. 기영이는 서른 살이 다 돼 가는 상수네 집 노총각 머슴이었다. 장가를 안 가 택호가 없다보니 어른도 "기영이", 아이들도 "기영이" 했다. 아까 보니 개천가 포구나무 그늘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가 졸지에 우리들의 판관이 된 것이다.

 

우리들은 부리나케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는 "기영이"에게로 우르르 몰려갔다. 인기척에 놀라 눈을 게슴츠레 뜨며 부시시 일어나는 "기영이"에게 두 번째 아이가 다짜고짜 말했다.

 

, 한마디 물어보겠심더. 애는 남자 여자가 XX리를 해서 낳는 게 맞지예?

 

좀 뜸을 들이며 머리를 써서 물어봤으면 정확한 대답을 들었을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조무라기들'이 갑자기 몰려와 대뜸 한다는 소리가 "XX" 어쩌고 했으니 기가 막혔을 것이다. 우리들의 심각성을 그가 미쳐 파악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노무 자슥들, X만한 것들이... 뭐이 어째? XX?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우리를 잡아 족칠듯이 으르렁거렸다. 어른인 자기를 무시했다는 오해가 그의 화를 더 돋군 것 같았다.

 

저리 꺼져버려라, 이노무 자슥들아...하며 그는 주위의 홁을 한 웅큼 쥐어 우리들에게 확 끼얹었다.

 

, 어른이 돼 갖고 가르쳐주진 않고 성을 내긴....

 

우리들은 미쳐 두 마디도 못하고 쫓겨나 버렸다. 결국 그날 누가 옳았는지 판가름도 못하고 말았다.

 

 

 

전방에선 아직도 밀고 밀리는 열전이 벌어지고 있던 50년대 초 어느 여름 오후에 벌어진 촌극이었다.

 

(200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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