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作家日記, 詩集 醉興 - 金岸曙

이강기 2015. 10. 1. 21:20
잡지명 삼천리문학 제2집
호수 제2집
발행년월일 1938-04-01
기사제목 作家日記, 詩集 醉興
필자 金岸曙
기사형태 문예기타

오래간만에 新進詩人 張萬榮군이 차차와서 유쾌한 시간을 보냇다.
었떤 때에는 이번 출판한 同君의 시집 「羊」에 대한 이야기가 었떤 때에는 그와 동시하야 출세된 盧天命양의 시집 「珊瑚林」에 대한 감상이 혹은 최근 시단의 경향이라든가, 혹은 었떠케 세상서는 시가를 몰나본다는 등, 나로서 근래에 듬은 즐거운 시간을 가젓다.
일즉 었떤 외국 친고에게서 詩란 몰을 것을 그리어 노흐면 그만이라고 반은 비웃고 반은 그러타는 듯한 말을 듯고서 당신의 나라의 시인들의 시는 그런 것일지 몰으나, 조선 시인들의 시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대답을 하면서 현대의 시가는 한 개의 수수걱기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잇섯거니와, 생각하여 보면 조고마한 조선시단에도 이와가튼 수수걱기의 시를 쓰는 이가 한 두 분이 아닌 이 때, 張군과 가튼 아름답고 순실한 시를 쓰는 이가 그 첫 시험을 공개해 준 것은 대단이 깃뿐 일이다. 작품제작에 이론이 없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또 소위 평가로서 작품에 대한 이론이 없어서도 아니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무엇인가 우리들은 이론과 실제와의 사이에는 태평양만한 거리가 있는 것을 니즐 수 업스니 소위 저 과학적이라 하면서 作吊에다 2 2는 4식의 표현이라든가, 방식을 취할 것인가 우리는 한갓 이 이론을 위한 이론으로의 죽은 표현을 이러니 저러니 할 것이 아니요, 생명있는 표현으로의 冀感적이라야 할 것이다. 百千가지의 고상하고 소위 과학적이라는 이론보다도 한 개의 작품을 실제로 만들어 놋는 것이 제일이다. 이것이 꿩을 잡아야 매란 것이다. 우리 시단에는 꿩 못잡는 매가 수두룩하니, 이들의 혀끝에서 튀여나는 실행없는 이론을 우리는 얼마나 들었든가.
결국 그들의 이론이란 그들의 제작 불가능성을 덥허주는〈166〉 일종 보호색에 지내지 아니하야 때에 딸아 곳에 의하야 저 카멜레온 모양으로 변하는 것이다. 작품에다 현대인의 감정은 이럿습니다, 고 담아 노흘 줄을 몰으고 쓸데업시 이론은 무슨 이론이야. 이것도 다 조선이 아니고는 볼 수 없는 기괴한 현실의 하나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張군과 盧양 두 분의 시집을 사랑한다. 두 분의 목적한 방향은 각각 다르나마 각각 스스로의 작품제작 형식을 여실히 보여준 점에서 나는 이 두 분의 明日의 제작에 많은 기대를 가진다.

오다가다 가다오는 도중에 창작에 대한 줄기가 생기나 局에를 가면 잡무에, 집에를 돌아오면 아이들 재롱에 그만 모도 다 想들이 어듸론지 씨슨듯이 일허지고 마니, 딱한 일이다. 시간의 여유가 잇섯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욕심이라면 욕심이겟지만, 읽고 십흘 책이니 읽으면서 쓰고 십흘 때에 쓸만한 여유가 잇섯으면 나는 그 이상도 더 만족이 없겟다. 그러나 이것도 모도 다 쓸데 없는 생각이다.

이제 漢城圖書에 들녀서 金東仁군의 「아기네」 한 권을 어더들고 雪坂와 가치 한 잔 하다.
雪坂도 그러타 하거니와, 차차 웬일인지 한 잔 두 잔 거듭하노라면 나종에는 었떤 곳을 었떠케 나와 있던 길을 었떠케 지내서 집으로 왓는지, 도모지 생각이 몽롱하니 이러타가는 이 목슴이 언제 었떠케 어느 곳에서 달아날지 몰으겟다. 나종 들어보아도 별로 量으로 보아서 만이 한 술도 아니건만 결과가 이럿케 납빠서는 참말 자미없는 일이다. 내가 약해진 심인가, 또는 차차 주량이 줄어지는 심인가.
雪坂하고 이런 이야기 금주니 절주니 하면서 역시 술을 먹을리만치 먹고야 흐터젓스나, 사람 맘이란 약한 것이다. 그래서는 아니되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실행을 하지 못하고 역시 가튼 것을 되푸리하니, 나로서도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서 오늘 아츰은 거울에다 내 얼골을 비최여 보앗다.

원래 가트면 한 잔 마시¸°로 할 것을 오늘은 생각하는 바가 있다는 듯이 朴군과 둘이서 찻집으로〈167〉 향하였다.
술을 조와하는 탓이겟지만은, 나는 찻집이라는 데를 그럿케 가고 십허하지 안는다. 차 한잔을 압헤다 놋코서 한 시간 두 시간을 눈이 멀둥해서 안젓는 꼴이란 아모리 보아도 승거운 즛이다. 그만한 시간을 이용을 하야 하다못해 책점에 가서 책 구경을 한다면 그 얼마나 조흔 일이냐 말이다.
자리라고 잡고 안자서 들어보니, 종로 네거리에서 보든 모던식 하이카라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 모혀서 무슨 명상이나 하는 듯이 담배만 피우면서... . 그러고 들어오는 손님, 나아가는 친고 할 것 없이 찻집에 다니는 사람은 모도 다 나와는 딴 판이다, 양복도 모던식이거니와, 모자는 이상하게 모양을 해서 비스듬이 썻다는 것보다도 올너노핫코 머리에다가는 크림을 빤드르 발나노하서 어득한 곳에서라도 빗날만한 게 무척 밥바보이면서도 그 실은 아모 할 일이 없어서 이 담배내 가득한 곳을 일부러 차자든 무리들이나, 새삼스레이 무어라 이야기할 것도 없는 것이다.
나와 가튼 老朽物은 이런 곳에 있을 것이 아니다. 가튼 시대의 가튼 공기를 마시건만은 실은 딴 시대의 딴 공기를 서로 마시면서 지내는 판이니, 여긔서 무어라고 섯뿔니 행동을 하다가는 비웃음이나 바들 것이다, 현대적이라고 그러고 보니 시대에 뒤떠러진 듯한 감도 없지 아니하거니와, 그러타고 또한 自坐하야 그들과 握手를 하고 십지는 아니하나, 그들과의 거리는 갈사록 멀어질 수 밧게 없는 일이다.
나와 가튼 것에게는 차 한 잔이라도 안심하고 마실만한 곳이 이 넓은 서울에는 없는 모양이다. 지금은 깜핫케 멀어진 지내간 일이나마, 나도 20전후 시절에는 멋도 몰으고 머리를 길게 길으고 목에다가는 쉑스피어 넥타이니 무어니 하면서 기괴한 것을 매달고 내로라는 듯이 대로를 활보하였으니 생각하면 우서운 일이다, 그 얼마나 여러사람의 눈꼴이 틀녓을 것인가.〈166〉
〈166-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