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鄭芝溶論 - 金煥泰

이강기 2015. 10. 1. 21:28
잡지명 삼천리문학 제2집
호수 제2집
발행년월일 1938-04-01
기사제목 鄭芝溶論
필자 金煥泰
기사형태 문예평론

향그런 꽃뱀이
高原꿈에 옴치고 있오.(絶頂)
얼골이 바로 푸른 한울을 울어렸기에
발이 항시 검은 흙을 향하기 욕되지 않도다.(나무)

1
한 천재의 생활의 습성에서 그의 예술을 그대로 演繹하려는 노력은, 마치 아버지를 보고, 그 아들을 그리랴는 것과 같은 희비극을 연출하는 수가 없지 앓으나, 예술은 언제나 생활의 아들이기 때문에, 한 천재의 생활의 습성을 알 때,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데 도음은 될지언정 방해는 되지 않는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나는 시인 鄭芝溶을 말하기 전에, 인간 鄭芝溶을〈185〉 이야기함도 부질없는 일은 않일 줄 안다.
그는 그의 속에, 어른과 어린애가 함께 살고있는 어른 아닌 어른, 어린애 아닌 어린애다. 어른처럼 분별있고 沈重한가 하면, 어린애처럼 천진하고 재재발으다. 코ㅅ수염이 아모리 위엄을 갗우랴도, 마음이 달랑거린다. 때로 어린애처럼 감정의 아들이 되나, 어른처럼 제 마음을 달낼 줄을 안다.
그는 社交?? 왈패군이다. 사람에 섞이매, 눈을 본 삽쌀개처럼 감정과 이지가 放奔하야, 한데 설키고 얼키어, 폭소, 냉소, 재담, 諧? 警句가 한 목 쏘다진다. 이런 때 그는 남의 언동과 감정을 돌아볼 결을이 없다. 이에 우리는 그에게서 감정의 무시를 당하는 일도 없지 앓으나, 연발해 나오는 폭죽같이 찬란한 그의 담소속에 황홀하게 정신을 빼앗기고야 만다.
이리하야 우리가 街路에서 맛나고 찻집 대리석 테이블로 건너보고, 술상을 앞에 맛대고 보는 그는 언제나 명랑하고 경쾌할 낙천가이다. 그러나 그의 이 일면만 볼 때, 우리는 달의 또 한 쪽을 보지 못한 것이다.
천재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그 심한 마음의 동요에 있다. 천재는 남이 보지 못하는 데서 보고, 남이 늦기지 못하는 것을 늦기는 사람이다. 한 개인의 털끝만한 불순한 동기도, 사회의 조고마한 무질서도, 그는 그대로 보아 넘기지를 못한다. 그리고 가장 미미한 부조화도, 잡음도 그는 치명적으로 늦긴다. 이에 그의 마음은 늘 태풍을 맛난 바다같이 동요한다.
동요는 언제나 정밀과 균형을 동경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재의 마음의 동요는 정밀과 질서의 세계에 대한 향수를 낫는다. 이 향수가 그림자 같이 천재를 딸는, 어덴지 홀로 떠러진 이름모를 비애와 고독이다. 그럼으로 천재는 언제나 비애와 고독을 숙명으로 타고난 불행한 족속이다.
우리 시인 鄭芝溶도 이 불행한 족속의 숙명인 비애와 고독을 유전받었다. 그리햐야 저자에서 보는 그?”, 명랑하고 경쾌한 낙천가이나, 그의 마음속을 가만이 들여다 볼 때, 그는 설어울리 없는 눈물을 소녀처럼 짓는」 슲은 사람이요. 「나이 어린 코끼리처럼 외로운」 사람이다. 향수에 질리운 사람이, 이국거리를 싸다니듯키,〈186〉 까닭없는 막연한 향수에 꼴리워 저자를 찾어나가나, 고향은 종시 찾지 못하고, 가벼운 탄식만 지고 오는 것이, 그의 슲은 日誌요, 낮이면 퐁퐁 공처럼 튀어 나갓다가, 밤이면 젊은 서름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오는 것이, 그의 적막한 습관이다.
그의 이 슲은 日誌를 읽고, 이 적막한 습관을 돌여다 보지 앓고, 손벽치고 너털 우슴을 웃는 그만볼 때, 우리는 그를 반분도 이해못한 것은 물론, 그의 시의 가장 아름다운 매력과 향기를 끝내 感得하지 못하고 말게 될 것이다.

2
시인의 연령의 노소와 그 작품의 優劣을 불고하고, 완성하엿다는 늦김을 주는 사람과 미완성이라는 늦김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鄭芝溶은 아즉 우리에게 완성하엇다는 늦김을 주는 시인은 않이다. 그는 아즉도 앞으로 몃 번이나 변모하야 우리를 놀라게 하여줄는지 몰으는 미완성의 시인이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그의 명성은 임이 정하여젓다. 아모도 그의 천재를 감히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람이 없다. 누구나 그를 천재라고 불으고 그의 시를 아름답다고 그런다. 그런데 말이란 불완전한 것이어서, 언제나 그 말을 사용하는 그 사람이 주는 의미와 분량밖에는 담지 안는 것이라는 실례를 우리는 「시인 鄭芝溶은 천재다」 「그의 시는 우수한 감각의 시다」하는, 이런 종류의 상찬하는 말 속에서 볼 수가 있다.
「시인 鄭芝溶은 천재다」 「그의 시는 우수한 감각의 시다」 이렇게들 말할 때에, 각 사람이 그 말 속에 내포식히는 의미를 나는 일일히 검토할 겨를도 없거니와 그리할 필요도 늦기지 않는다. 그러나 다만 하나, 가장 많은 사람이 그 말 속에 내포식히는,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이 그리 信憑하기 쉬운, 따라서 시인 鄭芝溶의 본질을 掩?하야 그를 오해케할 염려가 있는, 「그는 감각이 누구보다 예민한 시인이다. 그의 천재의 본질은 그의 이 예민한 감각에 있다」 「그의 시의 美는 그것이 화려한 감각의 연락인데 있다」하는 이런 의미를 나는 검토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그리함으로서〈187〉 시인 鄭芝溶을 그릇된 이해에서 구출할 수 있을가 하는 생각에서 이기도 하나, 그 보다도 그리함으로서 그를 진정으로 이해할 길이 열니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과연 감각이, 더욱이 시각이 누구보다도 예민한 사람이요, 따라서 그의 시는 일대감각의 향연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단지 찬란하고 화려할 뿐이요, 아모런 의미없는 그런 감각의 축적은 않이다. 그의 감각은 水晶알처럼 맑고, 보석처럼 빛날 뿐 않이라, 그 속에 감정이 쌍드랗게 얼어 비애와 고독이 별빛처럼 서리고 있다. 이리하야 李敭河씨가 적절하게도 설파한 바와 같이

白樺수풀 앙당한 속에
季節이 쪼그리고 있다.

이곳은 육체없는 寥寂한 饗宴場
이마에 시며드는 香料로운 滋養!

海拔5천 피이트 卷雲層 우에
그싯는 성양 불!

동해는 푸른 벽화처럼 옴직않고
누뤼 알이 참벌처럼 옴겨간다.

연정은 그림자 마자 벗쟈
산드라케 얼어라! 귀또람이 처럼.
(昆蘆峯)

이런 한 완전한 감각적 서경시까지도 그에 있어서는 곳 서정시가 되는 것이다.
「비극은 반드시 물어야 하지 않고, 사연하거나, 흐느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극은 실노 ?함니다」(밤)
연정, 고독, 비애, 이 모든 정서는 한숨쉬고, 눈물 흘려야만 하는 것이 않이다. 시인 鄭芝溶은 이런 정서에 사로잡힐 때, 그저 한숨 쉬거나, 눈물지지 않고, 이름 못할 외로움을 검은 넥타이 처럼 만지고, 모양 할 수도 없는 슲음을 오렝쥬 껍질처럼 씹는다. 이리하야 그의 감각은 곧 정서가 되고, 정서는 곧 감각이 된다.

3〈188〉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우리가 늦기는 것을 감각한다. 감각 속에 가두고 그 속에 결정식힌다. 그리하야 그의 천재의 특질은 그의 순수한 감정과 찬란한 감각에 있다. 그러나 그의 천재의 특질은 또 하나 그의 예리한 지성에 있다.
시는 감정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은 감정을 그대로 문자로 기록하여 놓을 때, 그것이 곧 시가 된다는 말은 앓이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의 토로는, 시 이상의 소재이지, 시 그것은 앓이기 때문이다.
시란 결국 조화요, 질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감정은 곧 질서와 조화를 의미하지 앓는다. 그리고 또 문학 그것이 곧 감정에 질서와 조화를 부여하는 것은 앓이다. 그럼으로 천재는 반드시 깊이 늦기고, 예리하게 감각하는 외에, 그 늦기고 감각한 것을 조화하고 통일하는 지성을 갗우어야 한다.
鄭芝溶은 이 지성을 가장 고도로 갗우고 있는 시인이다. 그리하야 그는 결코 감정을 그대로 토로하는 일이 없이, 그것이 질서와 조화를 얻을 때까지 抑制하고 기둘는다. 그리고 감정의 한오래기도 감각의 한 조각도 총체적 통일과 효과를 생각하지 앓고는, 덧붓치지도 깍지도 앓는 것은 물론, 가장 미미한 음향하나도 딴 그것과의 조화를 그리고 그 내포하는 의미와의 향응을 고려함이 없이는 그의 시 속에서의 호흡을 허락하지 앓는다.

어느 마을에서는 홍역이 ??처럼 爛?하다.
(紅疫)
이렇게 홍역을 형용함에 있어서, 「??처럼 爛?하다」는 이런 화려한 감각으로서 함도, 어린애의 얼골에 붉에 피어 올으는 홍역을 형용하기에 적절하다는 그런 이유에서 뿐 앓이라, 새ㅅ감한 석탄 속에서 붉에 피어나오는 불, 유리도 빛나지 앓고 깜깜한 12월 밥, 이런 것들 과의 相照에서 나오는 큰 효과를 계량한 까닭이다.
그리고

이마에 觸하는 쌍그란 季節의 입술.
(歸路)
美한 風景을 이룰 수 없도다. (갈릴레아바다)
에서 보는 바와 같이 「觸하는」 「美한」 이런 우리의 귀에 익지 앓는 새로운 형용사를 만들어 쓴〈189〉 것은 문자를 희롱하랴는 부즐없는 마음에서 가앓이라. 「觸하는」은 이마에 쌍그렇게 닫는 냉기의 감각을 고대로 음으로 번역하여 놓으라는, 그리고 「美한」은 「아름다운 풍경」 보다도 「美한 風景」 이렇게 보드라운 어운을 만들야는 의도에서이다.
그런데 그의 가장 천재의 근본적 특질은, 그의 순수한 감정에도, 그 화려한 감각에도 있지앓은 것은 물론, 그의 감정의 감각적 결정에도 있지 앓고, 그의 감정과 감각과 이지의 그 신비한 결합에 있다.

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시쳤다.

이 앨쓴 海圖에
손을 싯고 떼엇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굴르도록
회동그란히 바쳐 들었다!

地球는 蓮닢인양 옴으라들고...펴고...
(바다오)
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지성과 감각과 감정의 미묘한 한 하-모니냐? 우리는 그 속에서 벌서 지성과 감각과 감정을 따로따로히 구별하지 못한다. 지성이 감각이요, 감각이 감정이요, 감정이 지성이다.
이리하야 된 그의 시는 우리가 그의 시 속에서 단 한 편의 ?作도 발견할 수가 없이, 하나하나가 모다 수정알처럼 완전한 결정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우리가 소위 靈感派에서 보는 流露感은 없다. 육감과 체온이 희박하다. 윤곽이 몽롱하지 앓고 명료하다. 그렇다고 그는 결코 시를 만드는 사람은 앓이다. 그는 영감이 나무 끝에 오는 바람결 같이 그의 마음속에 불어오면 그것이 스스로 자라 태반을 떠러질 때까지 기둘는다. 그리고 그것이 태반을 떠러질 때까지, 그에게 자양을 공급하고 모양을 만들고 살을 부치는 것이, 곧 그의 감정이요, 지성이요, 감각이다.

4〈190〉

고독의 시, 비애의 시인 鄭芝溶은 또한

그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었으나
그의 안에서 나의 호흡이 절로 달도다.

물과 성신으로 다시 낳은 이후
나의 날은 날로 새로운 태양이로세.

뭇사람과 소란한 세대에서
그가 다맛 내게 하신 일을 전하리라!

미리 가지지 앓었던 세상이어니
이제 새삼 기다리지 않으련다.

영혼은 불과 사랑으로! 육신은 한 낯 괴로움.
보이는 한울은 나의 무덤을 덮을 뿐.

그의 옷자락이 나의 五官에 사모치지 안었으나
그의 그늘로 나의 다른 한울을 삼으리라.
(다른 한울)
이런 敬虔한 노래를 들려주는 신앙의 시인이다. 아즉 기독교적 신앙의 역사가 짤은, 그리고 한 편의 진정한 신앙의 시도 갖이못한 이 따에서, 가톨릭 시인 鄭芝溶을 갖인 것은 이 얼마나 우리에게 다행하고 깃븐 일이냐?
그런데 우리가 신앙의 시인 鄭芝溶을 이해하려면, 또한 고독의 시인, 비애의 시인 鄭芝溶을 생각하지 않으면 않된다.
信仰의 門은 하나이다, 그 문으로 인도하는 길은 여럿이다. 혹은 절망적 허무감에서 신에 귀의하고, 혹은 깊은 죄과의 참회에서 한우님앞에 업데인다. 그러나 우리가 鄭芝溶의 시에서 일음할 수 없는 비애와 고독은 보나, 절망적 허무감이나 뼈앞은 참회나 고백은 볼 수 없는 것으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는 허무감이나 참회의 길을 통해서가 않이라, 비애와 허무의 길을 통해서 신앙의 문에 일으른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그는 늘 마음안으로 表童을 하고 있는 사람이요, 고독을 오롯이 월광처럼 쓰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비애는 반드시 위안을 불으는 것이요, 고독은 빛을 그리는 것이다. 이에 고독과 비애의 아들 鄭芝溶은 거이〈191〉 본능적으로 어린애가 어머니 품안을 찾어 들드시 성모 마리아의 품안을 찾어 들은 것이요, 해바래기가 해를 쫓드시 다시 없이 큰 빛, 예수 그리스도를 쫓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 속에 째이고, 성모 마리아의 품안에 안긴 그는, 마음의 평안과 위안을 얻어, 그의 가장 안에서 살고, 죽었다 가는 스사로 불탄 자리에서 나래를 펴고는 일어나는, 그의 비애를, 신부로 마지하고, 」회한도, 또한 거륵한 은혜」로 늣길 그륵한 체념에까지 다달은 것이다. 그리하야 그의 이 그륵한 체념의 노래가 곧 그의 신앙의 노래가 된 것이다.

5
끝으로 우리는 시인 鄭芝溶은 또한 가장 완전히 동심을 把握한 동요동시작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앓된다.

하라버지가
담배ㅅ대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 날도
곱게 개이고,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가시니
가믄 날도
비가 오시데(할아버지)
이 얼마나 순진한 동심의 파악이냐? 이것은 우리가 어른 鄭芝溶 속에서 본, 어린애 지용이의 노래다.
이상으로써 나는 나의 눈에 빛인 시인 鄭芝溶을 말하엿다. 그러나 이것으로 나는 그의 시의 아름다움과 그의 시에서 받은 깃븜을 반분도 전하지 못하였다. 그의 시를 알으랴는 사람을 그의 시를 읽고 스스로 그의 시의 아름다움을 늣기고, 그의 시가 주는 깃븜을 맛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의 시에서 어떤 진리나 윤리적 정치적 목적을 찻지 앓고, 고귀한 고독을, 典雅한 비애를 경건한 염원을 그리고 순정한 동심을 보고 늣기랴고 할 때, 그는 언제까지나 「香料로운 滋養」에 찬 정신적 향연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기에 吝嗇하지 않을 것이다.〈192〉
〈185-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