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삼천리문학 제2집 | |||
호수 | 제2집 | |||
발행년월일 | 1938-04-01 | |||
기사제목 | 現代作家와 孤獨, 文學을 志望하는 동생에게 | |||
필자 | 崔載瑞 | |||
기사형태 | 문예기타 | |||
고등학교 문과에 시험을 치러보겠다는 너의 편지를 세 번식이나 받고도 회답을 보내지 못하야 미안하다. 회답이 느즌 것은 틈이 없어 그런 것도 아니요. 성의가 없어 그런 것도 아니요. 실상인즉 내역 아모 대답할 말이 없어 그리했든 것이다. 그래도 오날까지 문학을 끌고 온 나로서 또 네가 자각하기 전부터 너의 문학적 소질을 알고 있는 나로서, 너의 그만한 결심을 드른 바에야 두말없이 악수하고 싶은 생각이였다. 그러나 이 험난한 시대에서 너의 장래를 좌우할 단정을 나는 부탁받었다. 나는 몇 일을 두고 생각한 결과 회답의 책임을 회피키로 하얐다. 그대신 내가 아즉까지 지내온 경험과 또 듯고 본 바를 여기에 적어 너에게 참고자료를 주니 너는 다시금 생각하야 판단만은 네 자신이 내리기로 하여라. 너는 지금 막연이 문학을 공부하야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나 네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되면 네 앞엔 어언간 세 갈래 길이 나노여질 것이다. 창작가의 길과 평론가의 길과 연구의 길이다. 모든 것이 과도적인 조선이니 이 세 가지가 직업적으로 문화되여 있지는 안치만 길은 역시 길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이 세 가지 길로 나노와 하기로한다. 너는 대학에서 수다한 작가의 작품과 전기를 읽고 또 그들에 대한 강의도 드를 것이다. 너의 교수는 그 고전들이 시대의 체(篩)로 걸르고 남은 대표작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또 그들 작품이 시대의 변천을 격고도 오히려 오날까지 남어있는 이유는 그 위대성에 있다고 너에게 설명하야 줄 것이다. 그러면 문학의 위대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너는 몰두하게 된다. 그 때 너의 염두에는 단테와 셰익스피아와 괴-테 3형제가 느트나무같이 떠오를 것이다. 地球中軸에다 뿌리를〈221〉 박고 중천에 가지를 벌려 무수한 닢을 나붓기며 서고있는 이들 세 나무는 마을을 직히는 神木과 같이 너에게 기대고 싶은 신뢰성과 우러러보고 싶은 장엄성을 출 것이다. 무수한 닢은 바람에 저저마다 번득이는 것 같애도 가지에 의하야 결합되고 가지는 제멋대로 버러진 것 같에도 한줄기 밋둥에 의하야 통합되야 있다. 느티나무가 무슨 나무보다도 장엄한 것은 그 가지와 닢이 숱하기 때문이요. 그것이 무슨 나무보다도 미듬성있어 보이는 것은 그 숱한 가지와 닢을 떠받들고 있는 밋둥이 굵고 든든하기 때문이다. 작가에 있어 닢은 말이요. 줄기는 모랄이다. 모랄이라는 말이 귀에 서투르거든 도덕이라 하야도 좋고 인생관이라고 하면 더욱 친할 것이다. 그러나 도덕이나 인생관이라고 해선 엇재 유학자나 철학자의 한정된 교리를 일컷는 것 같에서 쓰기 실타. 하여튼 느티나무같이 숱한 말을 든든한 모랄로써 통일하는데에 단테나 셰익스피아나 괴-테의 문학의 위대성은 있다고 알 일이다. 사실상 이 세 작가중에서 어느 작품이나를 읽어 보아라, 그들의 말은 만년 묵은 느티나무닢같이 숱하고 자유자재롭다. 바람부는대로 그 닢이 번득이지 안을 때가 없다. 그러나 무수하고 유연한 말들 밑에는 또 얼마나 굵고 튼튼한 정신적 통일이 있을 것이냐? 그들은 그들의 5官을 맘대로 해방하고 자연계와 인간계의 모든 감각과 물상과 관념을 아모 주저도 없이 받어드렸다. 이 잡다한 지각이 한 번 그들의 상상력에 ?鍊이 되면 그 때엔 萬古不易의 위대한 문학이 된다. 따라서 문학의 위대성이란 말의 다양성을 모랄의 一樣性으로 통일하는데서 생겨난다고 할 일이다. 19세기 낭만시인모양으로 말만 숱하고 근저엔 아모 것도 없는 것도 아니요. 18세기의 擬古문학자와 같이 완고한 도덕론뿐이고 닢이 모탕비같은 것아니요. 언어와 행동 쾌락과 도덕 형식과 내용이 서로 침범함이 없이 완전한 균형상태를 보히고 있는 것-이것이 즉 문학의 위대성이다. 그러면 그들은 어디서 이같은 위대한 문학의 비결을 세웠는가? 너는 곳 그들의 천재를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천재라는 것을 한 의미에 있어선 부정하고 또 한 의미에 있어선 인정한다. 그들이 현대인과는 별다른 조직의 뇌수를 가젔다는 의미에 있어선 그들의 천재를 부정한다. 그러나 그들의 잠재능력이 현대인에 비하면 염청나리만큼 완전히 또 원만히 개발되고 또 활동이 허락되였다는 의미에 있어선 그들의 천재를 인정한다. 요새 새로운 심리학자들의 말을 드르면 인간엔 대강 일정된 평균적 잠재능력이 있어 종으로나〈222〉 횡으로나 별반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따라서 잠재능력에 있어선 현대인은 고대인보다 발달하였다고 볼 수도 없고 엇던 인종안에 있서서 개인새에 그닥지 層段도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잠재능력에 자극을 주고 또 활동의 기회와 여지를 줄 환경이란 시대와 사람에 따라 염청나게 다르다. 결국 단테나 셰익스피아나 괴-테는 그들의 잠재능력을 최대한도로 개발하고 활동식힐 수 있는 행복한 시대와 환경에 태여낫든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에 노력이 있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네가 고전에 관한 방대한 지식과 大作家들에 대한 崇敬을 같득 안ㅅ고 교문을 나서는 날에 너는 백일몽이 깨인 것 보다도 더 서먹서먹하고 쓸쓸한 감을 가질 것이다. 너는 어디서 문학적 영광을 찾고 누구에게 문학적 정열을 토로하랴는가? 다만 너의 문학적 아이디아리즘은 조소를 받을 뿐이다. 너는 붓을 꺾고 나스거나 꿈의 세계로 도피하거나 그러치 안으면 함렛트모양으로 광인으로 행세하거나 박겐 길이 없을 것이다. 너는 어느 길을 취하랴는가? 황금시대의 작가들은 행동을 가질 수가 있었다. 행동이라면 너는 곳 행동주의 문학의 그것을 연상하려니와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시민생활의 행동이다. 행동주의라고 떠드닛가 문인들이 무슨 큰 행동이나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막다른 골목에 쫏겨든 인테리어 작가들이 자활의 길을 사회적 관심에 취하자고 선언한 것이 즉 행동주의 문학이였다. 따라서 그 행동은 일종의 제스츄아이고 행동이 환영이다. 행동주의가 주창되는 것은 그들에게 행동의 기회가 없는 증거라고 알 일이다. 그러면 현대 인테리 작가에게는 웨 행동의 기회가 없을까 하고 너는 무를 것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현대의 행동은 즉 현대사회의 運轉은 別로 오묘한 인테리젼스(知性)를 필요치 안는다. 모든 것이 기계적이고 집단적이여서 개인은 그 기구에 숙달하야 집단에 복종만 하면 그만이다. 남다른 개성을 가젔다든가 집단에 행동을 시비할만한 비판능력을 가진 사람은 현대사회에선 유형에 처하고 만다. 유형이래야 옛날같이 머언 섬이면 또 낫겟는데 현대에는 활동의 기회가 전연없는 眞空管적 상태에 쪼차버리고 만다. 그들은 관념과 싸호고 원고용지에 먹칠하는 외엔 행동할 그르테기가 없다. 그리고 한 서울장안에 같이 살면서도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 작가는 맘대로 만날 수도 없다. 별로 회합의 기회도 없고 또 있다금식 만나서 차 한 잔 먹으려도 한 사람은 서대문박 또 한 사람은 彰義門박 또 한 사람은〈223〉 城北町 또 한 친구는 居所불명-이라하야 종로거리에서 우연히 두 文人이 만나면 참말 異國에서 만난 동포나 같이 반갑다 그러나 그도 그것뿐이고 오래인 회포를 풀 맥주 한 잔 나노기가 어렵다. 현대작가는 참말 고독하다. 고독이라면 너는 湖畔詩人들의 幽閑한 생활을 상상할 것이나 천만에 -현대작가의 그것은 30만 인구가 들끌른 이 경성바닥에서 바-ㄴ이 눈뜨고 孤寂이다. 문인에 고독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고독이 무엇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고독이면 모르려니와 정신을 무감각 상태로 마비식히는 고독이라면 악마여 물러가라! 나는 악가 고독 가운데서 관념과 싸운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全 정열을 드려서 싸울만한 관념도 없다 너는 자나 깨나 네 자신과 주위의 빈곤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빈곤은 사색의 대상이 되기엔 너무도 索莫하야 문학의 창작을 도읍기커녕 도리여 그것을 좌절식히고 만다. 혹은 너는 근대 사회적 정신을 가지고 빈곤의 성질과 내역을 분절하야도 볼 것이다. 그러고 진리와 정의라는 문제에도 어언간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가 개인의 생존에 절실은 하면서도 문학자가 討究하기엔 너무도 廣漠하고 복잡하야 너는 피로와 개인적 무력을 늦기고 말 것이다. 빈곤이 비교적 개인적인 이유-나태와 무능력-에 의거하는 시대에 있어선 빈곤을 개인적인 사색세계에서 생각하야 보는 것도 흥미있고 또 유익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 분기와 수련의 機綠도 될 수가 있었다. 그래서 貧家에 태여난 소년의 출세는 문학에 好材料를 주었다. 그러나 현대의 빈곤은 생각하야도 별 수 없는 빈곤 呼訴無處의 빈곤이다. 하물며 진리니 정의니 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부터 어리석다는 늣김을 가질 것이다. 너는 붓을 꺽고나서거나 빈곤의 討究를 집어치울 것이다. 빈곤의 惡鬼를 너의 사색세계로부터 쪼처난대도 너는 그를 피할 수 없다. 네가 가는 곳마다 빈곤의 흉악한 얼골은 나타난다. 그래서 너는 빈곤과 악수하야 우서버리거나 빈곤의 앞장을 밟아 비우서 주는 박겐 도리가 없다고 이는 어차피 깨달을 것이다. 그러랴면 너는 실로 호방한 희극적 정신과 갈간츄아적 풍자정신을 늘 왕성이 축적하여야 된다. 심리적으로 싸울 대상이 있을 때엔 그래도 너는 정신적으로 긴장을 하기 때문에 건딜 수 있다. 인간심리엔 긴장의 한도가 있는 지라 고뇌가 어느 정도를 넘으면 고뇌의 대상은 슬적 자최를 감춘다. 이것은 고뇌의 실체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피곤한 신경이 그 형체를 붓잡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참으로 허무를 늦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224〉 「나는 대관절 무엇인고?」 大海의 물거품같은 외로움과 덧없음을 늦길 것이다. 무엇에나 의지하고 싶은 마음 비록 그것이 칼날같은 바위와 굴껍질로만 되여있는 섬일지라도 발을 디디고 싶은 간절한 생각은 문학적 신념을 찾아 헤매일 것이다. 그 때로부터 너의 사상편력은 시작된다. 국민주의, 과학적 유물론, 가도리시즘, 휴-매니즘 등등.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것에나 안주의 地를 발견치 못한다. 그 어느 것으로나 네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 통일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사상체계에서 버서나는 네 개성이 있음을 깨다를 것이다. 너는 실망하고 또 다른 사상으로 옮아간다. 이리하야 정처없는 방랑을 하는 동안에 너는 네 자신을 정신적 보헤미안으로 맨든 너의 교양을 저주하게 된다. 고대의 순교자들은 곤궁과 고독안에서도 능히 정신적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굳은 신념이 있고 그 신념에서 나오는 불멸의 정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적 심리학의 실체를 받은 네가 회의주의를 버서난다는 것은 거지반 절망이다. 너는 믿기 전에 생각하랴고 하고 기도하기 전에 분절하랴고 한다. 너는 신앙하랴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네 자신의 신앙에 대한 파괴공작을 준비한다. 신념은 「도그마」에서 나오고 「도그마」는 복종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지적인 너는 아마도 복종을 꺼릴 것이다. 이리하야 모든 물질적 곤궁과 굴욕과 고독에 대항식히려든 신념의 획득이라는 것도 결국 허락되지 안었다는 사실을 너는 깨닷게 된다. 이러케되면 너는 너의 문학적 동기를 어디서 발견하겟는가? 창작가의 이야기를 하고나니 평론가나 연구가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도 안타. 일전에 신문지상에서 安懷南씨가 작품은 비평가의 영양소이니 비평이 자라랴면 위선 작품이 살쩌야겟다는 의미의 말을 읽었다. 그 후 李泰俊씨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둘 다 깊은 신념에서 우러나온 진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실작품이 질적으로 혹은 양적으로 빈약할 때 비평이 거기에 따라서 질적으로 혹은 양적으로 빈약할 것은 뻐언한 노릇이다. 그러치만 작품이 빈약하다고 해서 비평가의 문학정신이 그만 활동을 정지식힐 리도 없고 또 그래서는 못쓴다. 현실작품을 취급하고 문학적 현실에 대하야 충실한 것이 비평의 의무인 동시에 늘 문학적 상상을 추구함이 또 그 생명이 아닌가? 이 뻐언한 진리가 우리 문단에선 늘 작가대비평가라는 쓸데없는 직업적 의식으로 말미아마 歪曲됨을 나는 슯어한다. 하여튼 조선에 있어 비평가는 문학적 현실보다 앞서서〈225〉 문학적 이상을 추구하는 반면을 가저야 겟다. 그러자면 외국문학의 수입이라는 것이 그의 중대한 임무가 될 것이다. 그것은 다만 구라파 현재의 문학이 조선 현재의 문학보다 앞섰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문학적 전통이 있어서 그 선우에 슬 때 문학을 비교적 그 원형에 있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표는 조선문학의 건설에 있으니 문학적 이상의 추구라는 것도 이 각도에서 전망할 일이고 외국문학의 수입도 이 원칙아레 시행되여야 할 것인데 현재에 있어선 이 두 가지가 아모 연락도 없이 따루나있다는 치명적 결함을 감출 수 없다. 이 결함은 문화의 혼란으로서 나타난다. 각종 각색의 문학과 이론이 제멋대로 횡행하야 흡사이 歐羅문학의 식민지같은 감이 있다. 읽는 사람은 물론 글 쓰는 사람도 이 혼란에서 헤매이고 있는 형세이다. 외국어 사전 하나 없는 이 땅에 복잡다단한 외국문학을 드리자니 혼란은 피치 못할 운명이려니와 이 혼란 가운데서 일생의 앗가운 시절를 소비한다는 것은 勞多功少의 感이 깊다. 너는 외국문학의 이해에 바치는 노력과 그 노력이 이 곳 문단에 줄 효과를 비교할 때 끗없는 피로와 심각한 의혹을 늦길 것이다. 최후로 연구의 길을 생각해보자. 문학연구는 창작이나 평론에 지지안케 조선문학에 공헌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의 길은 창작이나 평론의 길보다도 더 험난한 줄을 알아야겟다. 창작이나 평론을 어느 정도까지 단독으로도 해나갈 수가 있지만 연구만은 혼자선 절대로 불가능하다. 얼른 생각하면 연구야 맛다. 혼자서 할 일 같끼도 하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다. 그 이유는 무슨 방면을 막론하고 연구는 사회생활로부터 어느 정도까지 방어되지 안어선 안된다는 데 있다. 네가 아직도 학문을 위한 학문이니 연구 그 자신의 애호를 위한 연구의 추구이니하는 독일관념론적 철학의 상아탑적 몽상을 품고 있으리라곤 믿지 안는다. 그러나 그럼에 불구하고 연구는 사회생활로부터 어느 정도까지는 격리될 필요가 있다. 사회생활의 旋風과 騷音안에서 그 생활의 기초와 상호관계를 연구한다는 것은 발서 그 말부터 모순이다. 현실생활은 우리에게 순간적 판단과 즉시적 처리를 강요한다. 밋처 판단이 스지 안을 때엔 인습에 의하야, 혹은 판단이 「노-」를 부를 때에도 더욱 강한 「예스」의 소리에 따라 즉시에 행동을 취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 생활이다. 결국에 있어선 사회생활과 결합되는 것을 예측할 수 있으면서도 일일이 일상생활의 사회적 答返을 강요된다면 우리는 연구에 종사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생활과〈226〉 연구생활과 새에는 일종의 완충지대가, 더욱 적절히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적 手形交換所가 있어야겟다. 사회생활자-문학에 있어선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져-나리스트-는 이 곳에 와서 사회적 요구를 제출할 것이고 연구 생활자는 이곳서 그 성과를 지불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정신적 手形交換所란 연구기관에 不外한다. 연구기관의 필요를 역설하기 위하야 이러틋 迂遠한 비유를 느러놋는 나를 너는 페단틱하다고 비우슬른지도 모르겟다. 그러나 세인 일반이 연구기관의 필요를 말할 때 그들은 경제적인 조건만을 염두에 두는 듯 싶다. 연구실의 설비 도서장비 연구원의 생활보장 연구잡지의경영등-무엇하나 빠져서 될 것은 없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사회생활안에 一隅를 허락된 연구세계의 존재이다. 서록 네가 자산이 충분하야 혼자서 일평생 공부하기엔 아모런 생활적 불안도 늦기지 않고 따라서 연구의 성과도 어느 정도까지 자주적으로 발표할 수 있다 할지라도 너 혼자의 힘으로선 연구세계를- 즉 정신의 手形交換所를 구성할 수 없다. 그것은 사회생활과 전연 격절된 상태이니 그 안에서 너의 연구심은 머지안어 고갈되고 말 것이다. 학문의 전통이 슨 외국에서도 연구가들은 각각 일정한 연구기관에 소속이 되여있다. 혹은 대학에 혹은 민간측 기관에...이것도 저것도 없는 우리사회에서 한 방면의 연구에 종사한다는 것은 지구를 등에지고 이러슨 옛 希臘의 용사 아키레스보다도 더 강한 힘과 굳은 결심이 있어야겟다. 쓰고보니 작고만 네 용기를 붓질르려는 것 같이 되였으나 이것은 내 본의가 아니다. 나는 피를 나논 형으로서 너의 개인적 행복을 바라지 안을 수 없다. 그러나 내부에선 이 비속한 感을 情叱咤하며 어서 밧비 너를 부르라고 웨치는 내 자신을 또 하나 늦긴다. (노-트 그대로) (끝) 〈227〉 〈22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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