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朝鮮푸로作家論 - 閔丙徽

이강기 2015. 10. 1. 21:52
잡지명 삼천리 제4권 제9호
호수 제4권 제9호
발행년월일 1932-09-01.
기사제목 朝鮮푸로作家論
필자 閔丙徽
기사형태 문예평론

前言

三千里사 주문에 의하야 문예평론을 쓰기로한다.
먼저 企圖는 「폭로소설 제작문제」로 하엿스나 나의 개인적 사정에 의하야 題를 「朝鮮푸로레타리아 작가론」이라고 하야 朝鮮푸로레타리아 문예운동을 위하야 싸호고 잇는 푸로레타리아 작가와 그의 작품을 論하여 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미안한 것은 여러 작가의 작품을 전부 손에 못들고 붓을 들은 관계로 작품은 일일히 열거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대로 본론으로 드러가 쓰려는 것이나 써서 文責을 謝하기로 하자.

작가의 배출과 작품

朝鮮에는 푸로레타리아 작가로서 행세하는 시람들이 만타. 그들이 초창시대(無産문예운동)로부터 써오든 사람을 들어본다면
朴英熙 金基鎭 趙明熙 李箕永 韓雪野 宋影 尹其鼎 李亮 崔鶴松 金永八 柳完熙 兪鎭午 李孝石 宋桂月 崔貞熙 嚴興變 崔承一 李益相 金南天 李赤曉 李無影 등 諸氏다.
그러나 지금에 처음으로 朴英熙 金基鎭 尹基鼎 李亮 金永八 崔鶴松 柳完熙 崔承一 李益相씨 등이 푸로레타리아 작가란 말을 들을때 의외로 생각할 독자들도 만을 것이다.
朴英熙 金基鎭씨는 평론가로 일흠잇는 사람이고 其外 李亮씨 등이 무슨 푸로레타리아 작가냐고? 반문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분들도 녯날에는 푸로레타리아 XX을 위한다고 만흔 작품을 내여노앗섯다.<83>
그 작품을 생각나는대로 써보면 朴英熙씨에게 「二重 病患者」(開闢) 「산양개」(同誌) 「피의 舞臺」(同誌) 「事件」(同誌) 「地獄巡禮」(朝鮮之光) 戰鬪(開闢) 「徹底」(別乾坤) 등이 잇고 金基鎭씨에게는 「붉은쥐」(開闢) 「沒落」(同誌) 「젊은 理想主義者의 死」 (同誌) 約婚(장편소설 時代일보) 등이 잇스며 李亮씨에게 「古鎭洞」(朝鮮之光) 「사랑하는 네게 보내는」(題 확실치안타 현대평론) 「새로 차저내인것」(朝鮮之光) 등 數篇의 작품이 잇스며 金永八씨에게 「불이야-」(문예운동) 「검은손」(朝鮮之光) 「訃音」(戱曲) (문예시대) 등 數篇과 柳完熙씨에게 「英五의 死」(開闢) 등의 작품이며 李益相씨의 「亡靈의 亂舞」(開闢) 「키일은 帆船」(장편소설 朝鮮일보) 등이 잇고 崔鶴松씨에게는 「탈출기」(朝鮮문단) 「朴石乙의 죽엄」(同誌) 飢餓과 殺戮)(同誌) 「안해의 자는 얼골」(朝鮮之光) 暴君(開闢) 「큰물진 뒤」(同誌) 「紅焰」(朝鮮문단) 등 數十篇의 작품이 잇스며 尹基鼎씨에게도 「밋처가는 사람」(朝鮮之光) 「氷庫」(현대평론) 등 작품이 잇스며 崔承一씨에게도 「鳳姬」(開闢) 「鐘이」(朝鮮之光) 등의 작품잇다.
이상의 작가들은 이상의 작품을 쓰면서 신경향파 문예운동시대의 그 일원으로서 참가하엿스며 싸왓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혹은 몰락 혹은 반동- 혹은 평론으로 方向하고 잇다.
그런데 이들은 이러한 수 만흔 작품가운데 엇더한 「이씀」을 주입식히엇든가? 우리는 그때의 이 작품을 쓰게된 근본원인을 알어보자!

푸로작품 擡頭의 원인과 작품내용

초창시대 또는 자연生長시대에 그들은 엇지하야 상아탑의 동굴을 떠나 이러한 작품을 쓰기로 되엿든가? 그 근본원인은 朴英熙씨에게서 들어보기로하자.
「20세기 말엽의 朝鮮은 깁흔 애수와 고민 XX에서 비로소 「살녀는 힘의 약동의 自熱」되기 시작하엿다. 붉은 피 뜨거운 기운이 아즉도 이 땅의 생물을 長成식히고 잇지안은가. 그러나 우리는 朝鮮에 잇서서 朝鮮사회의 시대정신을 어늬 곳에서 발견하야서 볼 수 잇슬가? 「XXXXXXXXXXXXX」 조선의 시대적 의의를 새롭게 한다. 그러나 朝鮮의 소설를 볼 때마다 우리는 성욕적 묘사 이외에는 모든 것이 절망이다. 그러면 朝鮮을 표현한 문학이라는 것은 대중적 朝鮮이 아니라 一귀족적 자제의 消日거리의 俱樂部的 시대를 표시한 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적 朝鮮은 대중적 문예를 찻는다. 無産的 朝鮮無産的 문학을 찻는다」(신경향파 문학과 無産派 문학)
이것을 보아서 그때의 문학운동이란 일부 小뿔조아 인테리의 사회 思潮式 문예운동 이외에 아모 것도 아니엿다.
그리하야 형식을 무시하고 오-긱 문인들의 성욕적 묘사와 「로불늬틔」한 행동에 증오을 갓고 막연히 無産者라는 의미에서 역사적 사실을 인식치 못하고 「우리는 無産者다」 「그러닛깐 뿔조아와 싸와야 한다」식으로 소설내용은 일체 방화 폭행 반항 등으로 하여왓다. 조직적 XX的 투쟁은 차저볼 수 업섯다.
이러한 객관적 정세에 의하야 배출한 작가들은 역사階段의 변천과 투쟁사의 발전에 의하야 진정한 푸로레타리아트의 과감한 XX투쟁으로 인하야 타락 혹은 반동에 흐르고 만 것이다.
좀 더 그들이 노동자적 의식을 갓고 XX를 위하야 과감히 투쟁하엿다면 계급적으로 만흔 이익을 주엇쓸 것이로데 중간층-인테리켄챠-들인 그들은 생활적- 객관적 조건밋헤서 반동- 혹은 타락하고 만 것이다.
당시 천재적 작가로 일홈이 놉든 崔鶴松씨(지금은 이 세상사람이 아니다만은)가 中外일보 기자생활 이후 타락되여 바리엿고 金永八씨 역시 「카푸」에서 제명 처분을 바든 원인으로부터 반동하엿스며 李亮 李益相 柳完熙씨 역시 그러한 동기로 몰락되엿다. 따라서 「카푸」에서 맹장으로 싸고 돌든 金基鎭씨 역시 최근에 와서 아름답지못한 소문을 피게 되엿고 崔承一씨 역시 일반이다.
그리나 兪鎭午 李箕永 宋影 嚴興燮 韓雪野씨 등은 아즉까지 푸로레타리아 작가로<84> 싸와온다.
그러나 그 중에 韓雪野씨는 평론가로서히 그 지위가 맛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류작가로 崔貞熙 宋桂月씨 등이 잇스나 필자는 이 두분이 완전한 작가로서 지위를 점령하엿다고는 단언하기 주저치 안을 수 업고 「低氣壓」(朝鮮之光) 「땅속으로」(開闢) 「洛東江」(朝鮮之光) 「새리지」(朝鮮之光) 「어머니와 아들」(朝鮮之光) 등으로 작가로히 일홈이 놉든 抱石 趙明熙씨는 近日에 와서 일체 작품을 내여놋치 안음으로 작가론의 一주인으로 쓰기는 피한다. 너무나 창작계에서 자취를 감추운지 오랜 까닭이다. 따라서 金南天씨 역시 「공장신문」(朝鮮일보) 이외에 다른 작품을 차저보지 못한 관계로 本論에 登壇식힐 수 업슬 것이며 「都會의 幽靈」(朝鮮之光) 「麻雀哲學」(朝鮮日報) 「奇綠」(朝鮮文藝) 「露領近海」(朝鮮之光) 등으로 한때 일홈을 날니든 李孝石씨 역시 최근에 와서 타락적 경향에 흐름을 보앗씀으로 또한 별말을 하고 십허하지 안는다.
다만 지금까지 그 작가적 지위를 완전히 가지고 잇는 兪鎭午 李箕永 宋影 嚴興燮씨 등을 논함으로 本論을 해결짓기로 하자.
李無影씨도 또한 최근에 푸로레타리아 작가로서 행동을 시작하나 아즉 地盤을 잡지 못하엿씀으로 다음 기회를 엇기로 하겟다.

兪鎭午씨와 그 작품

우리는 兪鎭午씨을 처음 알게된 것은 신감각파로서히 「把握」(朝鮮之光) 「넥타이와 沈澱」(同誌) 「披露宴」(同誌)를 발표한 뒤로부터이다.
당시(이러한 소설을 발표하는) 우리는 이 작가에게 별다른 기대를 갓지 안엇섯다. 다만 한 사람의 문학청년으로서 문제하엿왓슬 뿐 이다.
그러나 氏가 일약,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약탈하야 「五月의 求職者」(朝鮮之光)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隨伴者的 행동을 완전히 하여왓다.
법학자로서 작품을 쓰는 氏로데 그의 작품은 「아지푸로」와 자본가 계급의 생활내용을 폭로하는데 완전한 성과를 계급적으로 기여하엿다. 당시 宋影 嚴興燮씨 등 「카푸」卽屬의 작가들의 작품도 만엇스나 이 작가에게 따르기 어려웟다.
其中에도 1931년대 정월 초순부터 朝鮮日報에 발표한 「女職工」갓흔 작품은 朝鮮의 푸로레타리아 작가 가운데서 어더보기 가장 힘드는 작품이엿다.
지금 氏는 「카푸」의 한 작가로 잇스면서 普專의 강사로 게시다고 하며 城大法學士이시단다. 우리는 이 작가에게 더 커다란 명작이 나오길 기대하여 마지앗는다.

李箕永씨의 작가적 지위

일즉히 開闢에서 현상단편소설을 모집할 때 2등인가 3등으로 입선된 뒤 開闢誌에 「가란한 사람들」과 「5男妹둔 아버지」 「朴先生」 등을 발표하야 세상에 그 일홈이 놉허진 작가다.
氏의 작품은 이상의 5편 외에 「傳導婦人과 外交員」(朝鮮之光) 「邂逅」(同誌) 「밋며누리」(同誌) 「元甫」(同誌) 「製紙工場」(大潮) 「시대의 진보」(朝鮮之光) 「現代風景」(장편소설 中央일보) 등 數十篇의 작품이 잇다.
氏는 초기부터 농촌생활에서 테마를 히잡어서 그 사실을 「리알리틱」하게 쓰는데 독특한 재조를 가지고 잇다. 작품 가운데서 음지기는 주인공들의 문답이 더욱 기묘하고 잇다금 「로맨티씀」을 주입식히여 흥미를 일반 독자에게 주는데 다른 작가의 따르지 못할 점이다.
더욱이 그 일류의 「유모어」가 조타. 「元甫」 「製紙工場」「現代風景」갓흔 작품은 조선 푸로레타리아 창작계에 커다란 수획이 아니면 안된다.
그러나 「시대의 진보」 등은 우리들의 애써 요구하는 작품이 아닌 동시 이러한 작품으로서 명예에 때를 무치려는 실수를 금하여주기는 바라는 것이 필자가 작가에게 바라는 요구조건이다.
氏는 가장 가난한 생활가운데서라도 그의 主志를 동요하지 앗는다. 결백한 맑쓰주의자이다. 그러나 盃後면 亂將이 되시는게 험이다.<85>

宋影씨의 존재

「煽動者」(開闢) 熔鑛爐」(同誌) 등으로 초창시대에 그 일홈을 세상에 알니인 작가다.
朝鮮푸로레타리아 文人의 집단 「카푸」가 창립되기 전부터 「焰群」이란 회람잡지를 李赤曉
李鎔坤씨 등과 갓치 발행하면서 푸로레타리아 문학을 論하든 그다.
그가 발표한 작품은 가장 만흐니 「正義와 칸파쓰」(朝鮮문예) 「곱추이야기」(同誌) 「석탄속에 夫婦들」(朝鮮之光) 「印度兵士」(同誌) 「우리들의 사랑」(同誌) 「호미를 쥐고」(대중公論) 地下村(同誌) 「阿片쟁이」(大潮) 「다섯 해동안의 쪼각편지」(朝鮮之光) 吳水香(朝鮮일보) 「火葬人夫」(朝鮮之光) 「白色女王」(朝鮮之光) 「면회일절 거절」(朝鮮講壇) 「호신술」(시대公論) 多數한 작품내여 노흔 작가다.
그러나 이 작가는 호흡을 크게 하면서 소화를 잘 식히지 못한다. 필자도 늘 이 작가에게 들어왓지만 「호흡이 커야한다」는 말 그대로 「白色女王」이니 「印度兵士」니 하는 외국을 무대로 하야 허황한 「스토리」를 가지고 현실에 맛지앗는 내용으로서 사실을 과장하여왓다.
작가은 日本의 前田河廣 一郞을 슝내이고 그가 늘 숭배하는 「아나돌푸렌쓰」를 본바드려하나 모-든 것이 실패다.
氏는 늘 「푸로레타리아」 해방을 위한다는 기도 밋헤서 작품을 제작하나 노동자 농민 기타 근로대중의 실생활을 쓰지 못하고 허황한 정치적 사실을 취급하여 가지고 실패한 작품 낭만적 작품 비현실적 작품을 써서 오히려 대중을 현실에서 격리식히는 수가 만다. 「吳水香」이 그럿코 「白色女王」이 그러하며 「老人夫」가 또한 그럿타- 「석탄속의 夫婦들」과 「우리들의 사랑」 「다섯해 동안의 쪼각편지」 등은 문제도 되지 앗는다만은!
그러나 작가는 지금의 침묵을 직히는만큼 다음날에는 큰 작품이 나올 것이겟지...

嚴興燮씨와 작품

一無名작가로 朝鮮之光에 「흘너간 마을」을 쓴 뒤로 세상에 알니여진 작가다.
氏는 늘 인테리켄챠적인 「로맨틔즘」에 흐른 작품를 쓰기에 힘쓰고 잇다. 최근에 발표된 「그대의 힘은 약하다」(批判) 등에서 더욱 차저내일 수 잇다.
氏는 아즉 완전한 창작가로서히 地盤을 드듸고 스지 못하엿스며 이럿타할 작품이 업다.
그러나 압날에 희망을 가지고 대한 작가인 것만은 사실이다.

後言

其他에도 李赤曉씨며
朴承松씨 등도 창작적 활동을 하는 것이며 韓仁澤씨 역시 그러하나 아즉 우리는 이 작가들에게 이럿타하는 작품을 발견치 못한 관계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업스며 金南天 李赤曉 朴承松 諸氏는 영령생활에서 신음하는 것이니 후일을 約하여 커다란 작품이 나올 것이나 기대할 밧게 업다. ―끗―
1932, 7, 7아츰, 於松都―<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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