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1933年의 女流作家의 群像

이강기 2015. 10. 1. 21:54
잡지명 삼천리 제5권 제1호
호수 제5권 제1호
발행년월일 1933-01-01
기사제목 1933年의 女流作家의 群像
필자 洪九
기사형태 문예평론

무엇이든지 작가에 대한 글을 쓸려면 첫재 그 작가를 잘 알어야 한다. 그 작가를 안다는 말은 즉 한 작가를 도마우에 올려놋코 칼질을 할 줄 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칼질을 하려면 그만한 예비지식이 필요하며 아울러 명철한 두뇌와 才分이 잇서야 할 것이다. 그러면 과연 나는 그만한 작가를 논할 모든 필요조건이 구비되여 잇슬가? 나는 이것을 대담하게도 무모하게도 이런 조건을 무시하고 과감히 이 작가에 대한 글을 쓰려한다.
그래도 나는 焦心 안할 수 업는 것이다. 만약에 이 글이 1933년 모던型의 동·키호데식 기사가 되면은! 그러나 그러케 되거든 마음대로 우서다오-. 해방된 동·키호데도 잇는 것이어든-.
그러면 나는 왜! 이러한 초조와 모험을 무릅쓰고 이 글을 쓰는 것이냐.
한 3주일 전에 나는 시골을 간 적이 잇섯다. 그때 마츰 車ㅅ간에서 오래간만에 중학동창이엇든 〈85〉 X田이라는 문학청년과 맛나게 되엇다. 나 역시 문학에 취미를 가지고 잇는 관계상 지리한 문학에 대한 이야기로 차멸미도 이젓섯다.
「朝鮮에도 여류작가가 잇는가?」 그는 이런 것을 나에게 문는다. 그러나 이 대답을 어떠케 해야 올으냐. 그는 너무나 우리 문단을 경멸시하는 것이다. 아무리 朝鮮文壇이기로 한 두 사람의 여류작가가 업슬 것이냐? 이것은 우리 문단에 대한 모욕이다. 그러나 이 조고만 의분은 조끔 잇다가 소리업시 살아젓다. 이것을 모욕이 아니라 자극제이다. 이 자극제는 그가 그런 말을 또다시 내가 맛날 때는 하지 안케 될 것이다.
「5, 6인 잇지」나의 대답은 너무나 힘 업고 떨리엇섯다.
엇제서 나는 그 사람에게 큰 대답을 못하엿나! 그러면 朝鮮文壇에는 여류작가가 업는 것인가. 잇기는 잇다. 그러면 그때 나는 왜 활발한 대답을 못하엿섯는가. 나의 순진하고 素直한 입술은 이 사람이 우리 문단의 대표적 작가요 하고 떨어지지를 안엇다.
이 일이 잇슨 후 나는 멋칠을 두고 다시 현재 여류작가라고 하는 분들의 작품을 정독하야 보앗스나 도저히 中條百合子나 松田靜子 窪田いね子나 林英美子가튼 사람은 발견치 못하엿다.
이곳에서 나는 크다란 의문을 가젓다. 현재 朝鮮文壇의 여류작가들은 이갓치 무능한 분들인가. 그 분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에 잇서 제작상 활동 예술적 소질 내지 작가적 기초교양이 잇는 것일가. 잇다 하면 그러케도 무능할 수 잇단 말인가! 우리는 첫재 이것을 구명할 필요가 잇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하를 불문하고 현재 朝鮮文壇에서 여류작가라는 벤넴을 준 문단에 군림한 여러 작가를 나에 한정된 지식를 가지고 논하러고 하는 것이다.
朝鮮의 여류작가의 문단적 지위와 명성은 비교적 안정되엇다. 그 안정이라는 것은 그들의 진정한 의미에 잇서 작가적 지위의 안정이라는 것보다도 여성이라는 (혹은 어폐가 잇슬는지 몰으나)특수한 존재 그것이 안정식히는 수가 만은 것은 너무나 유감이다. 작가는 동등의 존재 가치가 잇는 이상 여류작가에만 국한식히여 너무나 非批判的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그 분들에 대하야 그다지 명예스럽지 못한 사실이 하나인줄 미드며 압흐로 발전을 얼마간에 조해식히지 안는다고 안 할 수 업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朝鮮文壇은 여류작가 濫造시대이다. 어느 잡지사를 물론하고 여류작가가 업는 곳은 하나도 업다. 즉 여기자는 모다 女流文土이다. 그러면 그 文土의 기준점은 어대 잇는 것인지 도모지 알 수 업다. 그리하야 여류작가의 다량생산시대이며 기근시대이며 딸아서 폭락시대의 전조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1개의 창작작품이 업는 분에게는 절대로 작가라고 할 수 업다고 규정하며 고집하고 십다.
「白花」의 작자 朴花城씨는 누구보다도 정력적인 작가의 한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잇다. 그러나 나는 그의 과단성을 사랑하며 동시에 그의 예술적 위험성을 용인한다.
그는 堂堂한 2백회에 갓가운 장편소설 白花를 東亞日報에 기재하야 그의 정력을 우리에게 보히엿스나 그 정력은 오히러 東光에 발표한 『下水道工事』에 불과한 것은 작자 자신도 유감히 알며 한심히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氏는 갑푸 白鐵씨로부터 『작자 자신에게 XX주의적 교양과 구체적 지식이 全無한대 기인되여 잇는 것이다. 그런 점만 회복한다면 〈86〉 작자는 충실한 동반자 작가로써 중요한 작가적 지위를 점령할 것이다』라는 평를 내리엇스나 이것은 당연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누구를 물론하고 XX주의적 교양만 잇스면 동반자 작가라는 것보다도 가장 과감한 전위작가가 될 것은 틀림업는 사실이다.
이것은 너무나 白鐵씨가 花城씨를 厚히 평하여 주어서 냉정한 평가의 자격에 훼손이 생겻다.
氏의 현재 생산되여 나오는 작품으로는 아직도 동반적 작가될 만한 아무것도 안 보힌다. 아무리 『下水道工事』 속에서 힘잇는 싹을 보히엿다 하드라도 『白花』속에?œ는 무엇을 보앗스며 『흘러가는 遺書』 가운대서는 우리가 무엇을 차젓는가. 그러나 氏를 白鐵씨의 評이상 관대히 말한다면 아직도 그의 작품으로는 그의 철학적 견지를 몰을 것이다.
氏의 구상은 팟밥 숭늉을 맛이는 듯한 평범이상 평범이며 문장은 봇군 콩을 씹는 것 가치 달콩달콩하며 그가 가장 長技로써 묘사하는 심리묘사는 들지 안는 칼날로 피부를 찟은 것가치 퍽으나 거북하며 감각미가 업다.
氏의 작품에 흘으는 모든 사실은 오로지 개인적 불행과 불운의 눈물겨운 기록이다.
『白花』氏는 봉건적 사회에 혼돈 모순 부패를 그리려고 하엿섯는지는 모르나 그것은 白花라는 주인공의 불운과 불행의 존재을 描出시키는대 끈치고 아무런 그 사회의 움직임과 대중의 동향은 전혀 그리지 못하엿다. 그럼으로 개인의 현재에 빠진 운명이 얼마나 불행하다 하드라도 그것을 한 사회현상에 빗치며 객관적 묘사을 못하고는 그 작품의 가치는 참으로 불운이며 불행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자에게 잇서서 그 불운과 불행를 동양의 道學者式 運命論으로써 해결하기를 피하고 그 운명을 생의 再發로 광명(이 작자가 본)한 곳까지 끄러다 논는대 너무나 으색하며 갑싸고 곰팽이 난 인도주의적 눈물이 얼응거리는 것이다. 氏는 더 일층 그 관점을 향상시키지 안코는 작자로써의 범위는 협소하야 질 줄 밋는다.
金一葉씨는 花城씨가 현재 여류문단의 丞相格인대 비하여 氏는 원로이다.
그러나 氏는 아직 작가로서는 미완품에 갓갑다. 작가적 존재는 그 작품활동 그것이 규정하야 주는 것이다. 그러나 氏는 작품 업는 벙어리 작가이다.
氏는 몃 편의 개인적 신변잡사의 수필이 잇스나 이 수필은 창작으로는 볼 수 업는 것이다.
감상적 哀愁을 을픈 시조들은 氏의 창작생활에 전부라는 감명을 바들 수 잇스나 그 시조는 격으로 보아 破格에 갓가운 것이 태반이며 그 착상도 천편일률의 것이나 표현방식이 부족하야 때때 조흔 착상도 바서 버릴 때가 허다하다.
그럼으로 나는 이 氏에 대하야 작품에 환멸을 느끼는 동시에 예술적 소질이 잇는지를 의심하게까지 되는 것은 너무 불행 중 불행이다.
氏의 최근에 발표한 『愛慾을 避하야』라는 소설은 전혀 퇴폐적 壓世的 세기말적 유산의 귀여운 수양녀와 가튼 작품이다. 그것 뿐 아니라 그 구상은 너무나 유치하며 그 표현은 너무나 거북상스럽다. 氏는 이가치 또다시 ABC의 순서를 발으며 氏가 현재 생각하는 바, 보는 바의 주관적 관점에서 脫却되여 버리지 못하면 전체로 보아 작가라는 冠詞는 이윽코 문제되지 안을 것인가. 이것이 나의 기우가 아니라면 나는 장래에 잇서 朝鮮의 三宅やす子이상 기대를 갓고 십다. (次號續-원문) 〈87〉
〈86-87〉


잡지명 삼천리 제5권 제1호
호수 제5권 제1호
발행년월일 1933-01-01
기사제목 1933年의 女流作家의 群像
필자 洪九
기사형태 문예평론

무엇이든지 작가에 대한 글을 쓸려면 첫재 그 작가를 잘 알어야 한다. 그 작가를 안다는 말은 즉 한 작가를 도마우에 올려놋코 칼질을 할 줄 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칼질을 하려면 그만한 예비지식이 필요하며 아울러 명철한 두뇌와 才分이 잇서야 할 것이다. 그러면 과연 나는 그만한 작가를 논할 모든 필요조건이 구비되여 잇슬가? 나는 이것을 대담하게도 무모하게도 이런 조건을 무시하고 과감히 이 작가에 대한 글을 쓰려한다.
그래도 나는 焦心 안할 수 업는 것이다. 만약에 이 글이 1933년 모던型의 동·키호데식 기사가 되면은! 그러나 그러케 되거든 마음대로 우서다오-. 해방된 동·키호데도 잇는 것이어든-.
그러면 나는 왜! 이러한 초조와 모험을 무릅쓰고 이 글을 쓰는 것이냐.
한 3주일 전에 나는 시골을 간 적이 잇섯다. 그때 마츰 車ㅅ간에서 오래간만에 중학동창이엇든 〈85〉 X田이라는 문학청년과 맛나게 되엇다. 나 역시 문학에 취미를 가지고 잇는 관계상 지리한 문학에 대한 이야기로 차멸미도 이젓섯다.
「朝鮮에도 여류작가가 잇는가?」 그는 이런 것을 나에게 문는다. 그러나 이 대답을 어떠케 해야 올으냐. 그는 너무나 우리 문단을 경멸시하는 것이다. 아무리 朝鮮文壇이기로 한 두 사람의 여류작가가 업슬 것이냐? 이것은 우리 문단에 대한 모욕이다. 그러나 이 조고만 의분은 조끔 잇다가 소리업시 살아젓다. 이것을 모욕이 아니라 자극제이다. 이 자극제는 그가 그런 말을 또다시 내가 맛날 때는 하지 안케 될 것이다.
「5, 6인 잇지」나의 대답은 너무나 힘 업고 떨리엇섯다.
엇제서 나는 그 사람에게 큰 대답을 못하엿나! 그러면 朝鮮文壇에는 여류작가가 업는 것인가. 잇기는 잇다. 그러면 그때 나는 왜 활발한 대답을 못하엿섯는가. 나의 순진하고 素直한 입술은 이 사람이 우리 문단의 대표적 작가요 하고 떨어지지를 안엇다.
이 일이 잇슨 후 나는 멋칠을 두고 다시 현재 여류작가라고 하는 분들의 작품을 정독하야 보앗스나 도저히 中條百合子나 松田靜子 窪田いね子나 林英美子가튼 사람은 발견치 못하엿다.
이곳에서 나는 크다란 의문을 가젓다. 현재 朝鮮文壇의 여류작가들은 이갓치 무능한 분들인가. 그 분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에 잇서 제작상 활동 예술적 소질 내지 작가적 기초교양이 잇는 것일가. 잇다 하면 그러케도 무능할 수 잇단 말인가! 우리는 첫재 이것을 구명할 필요가 잇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하를 불문하고 현재 朝鮮文壇에서 여류작가라는 벤넴을 준 문단에 군림한 여러 작가를 나에 한정된 지식를 가지고 논하러고 하는 것이다.
朝鮮의 여류작가의 문단적 지위와 명성은 비교적 안정되엇다. 그 안정이라는 것은 그들의 진정한 의미에 잇서 작가적 지위의 안정이라는 것보다도 여성이라는 (혹은 어폐가 잇슬는지 몰으나)특수한 존재 그것이 안정식히는 수가 만은 것은 너무나 유감이다. 작가는 동등의 존재 가치가 잇는 이상 여류작가에만 국한식히여 너무나 非批判的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그 분들에 대하야 그다지 명예스럽지 못한 사실이 하나인줄 미드며 압흐로 발전을 얼마간에 조해식히지 안는다고 안 할 수 업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朝鮮文壇은 여류작가 濫造시대이다. 어느 잡지사를 물론하고 여류작가가 업는 곳은 하나도 업다. 즉 여기자는 모다 女流文土이다. 그러면 그 文土의 기준점은 어대 잇는 것인지 도모지 알 수 업다. 그리하야 여류작가의 다량생산시대이며 기근시대이며 딸아서 폭락시대의 전조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1개의 창작작품이 업는 분에게는 절대로 작가라고 할 수 업다고 규정하며 고집하고 십다.
「白花」의 작자 朴花城씨는 누구보다도 정력적인 작가의 한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잇다. 그러나 나는 그의 과단성을 사랑하며 동시에 그의 예술적 위험성을 용인한다.
그는 堂堂한 2백회에 갓가운 장편소설 白花를 東亞日報에 기재하야 그의 정력을 우리에게 보히엿스나 그 정력은 오히러 東光에 발표한 『下水道工事』에 불과한 것은 작자 자신도 유감히 알며 한심히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氏는 갑푸 白鐵씨로부터 『작자 자신에게 XX주의적 교양과 구체적 지식이 全無한대 기인되여 잇는 것이다. 그런 점만 회복한다면 〈86〉 작자는 충실한 동반자 작가로써 중요한 작가적 지위를 점령할 것이다』라는 평를 내리엇스나 이것은 당연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누구를 물론하고 XX주의적 교양만 잇스면 동반자 작가라는 것보다도 가장 과감한 전위작가가 될 것은 틀림업는 사실이다.
이것은 너무나 白鐵씨가 花城씨를 厚히 평하여 주어서 냉정한 평가의 자격에 훼손이 생겻다.
氏의 현재 생산되여 나오는 작품으로는 아직도 동반적 작가될 만한 아무것도 안 보힌다. 아무리 『下水道工事』 속에서 힘잇는 싹을 보히엿다 하드라도 『白花』속에?œ는 무엇을 보앗스며 『흘러가는 遺書』 가운대서는 우리가 무엇을 차젓는가. 그러나 氏를 白鐵씨의 評이상 관대히 말한다면 아직도 그의 작품으로는 그의 철학적 견지를 몰을 것이다.
氏의 구상은 팟밥 숭늉을 맛이는 듯한 평범이상 평범이며 문장은 봇군 콩을 씹는 것 가치 달콩달콩하며 그가 가장 長技로써 묘사하는 심리묘사는 들지 안는 칼날로 피부를 찟은 것가치 퍽으나 거북하며 감각미가 업다.
氏의 작품에 흘으는 모든 사실은 오로지 개인적 불행과 불운의 눈물겨운 기록이다.
『白花』氏는 봉건적 사회에 혼돈 모순 부패를 그리려고 하엿섯는지는 모르나 그것은 白花라는 주인공의 불운과 불행의 존재을 描出시키는대 끈치고 아무런 그 사회의 움직임과 대중의 동향은 전혀 그리지 못하엿다. 그럼으로 개인의 현재에 빠진 운명이 얼마나 불행하다 하드라도 그것을 한 사회현상에 빗치며 객관적 묘사을 못하고는 그 작품의 가치는 참으로 불운이며 불행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자에게 잇서서 그 불운과 불행를 동양의 道學者式 運命論으로써 해결하기를 피하고 그 운명을 생의 再發로 광명(이 작자가 본)한 곳까지 끄러다 논는대 너무나 으색하며 갑싸고 곰팽이 난 인도주의적 눈물이 얼응거리는 것이다. 氏는 더 일층 그 관점을 향상시키지 안코는 작자로써의 범위는 협소하야 질 줄 밋는다.
金一葉씨는 花城씨가 현재 여류문단의 丞相格인대 비하여 氏는 원로이다.
그러나 氏는 아직 작가로서는 미완품에 갓갑다. 작가적 존재는 그 작품활동 그것이 규정하야 주는 것이다. 그러나 氏는 작품 업는 벙어리 작가이다.
氏는 몃 편의 개인적 신변잡사의 수필이 잇스나 이 수필은 창작으로는 볼 수 업는 것이다.
감상적 哀愁을 을픈 시조들은 氏의 창작생활에 전부라는 감명을 바들 수 잇스나 그 시조는 격으로 보아 破格에 갓가운 것이 태반이며 그 착상도 천편일률의 것이나 표현방식이 부족하야 때때 조흔 착상도 바서 버릴 때가 허다하다.
그럼으로 나는 이 氏에 대하야 작품에 환멸을 느끼는 동시에 예술적 소질이 잇는지를 의심하게까지 되는 것은 너무 불행 중 불행이다.
氏의 최근에 발표한 『愛慾을 避하야』라는 소설은 전혀 퇴폐적 壓世的 세기말적 유산의 귀여운 수양녀와 가튼 작품이다. 그것 뿐 아니라 그 구상은 너무나 유치하며 그 표현은 너무나 거북상스럽다. 氏는 이가치 또다시 ABC의 순서를 발으며 氏가 현재 생각하는 바, 보는 바의 주관적 관점에서 脫却되여 버리지 못하면 전체로 보아 작가라는 冠詞는 이윽코 문제되지 안을 것인가. 이것이 나의 기우가 아니라면 나는 장래에 잇서 朝鮮의 三宅やす子이상 기대를 갓고 십다. (次號續-원문) 〈87〉
〈86-87

 


崔貞熙
三千里를 무대로 굉장한 북을 울니고 나온 『正當한 스파이』의 作者 崔貞熙氏는 완전히 우리 눈에는 쩌나리슴化한 가장 무서운 危險性과 冷悧性을 가진 작가의 한 분이라고 볼 수 잇다. 그 『正當한 스파이』는 그대로 잘 「닷지」를 뵈여 1幅의 스켓취와 갓흔 작품이다. 그럼으로 氏는 조금 스켓취의 妙法를 아는 분이다. 그러나 氏는 지금까지의 모든 여류작가 중에서는 처음 보는 독특한 재질과 엇더한 새 境地를 보히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잇스나 그 새로운 경지의 개척이 모름직이 가장 위험한 위험성을 가진 노력이 안일는지는 疑問符로 아직 남어잇다.
氏의 표현 또 着想은 극히 경쾌하다. 가을 하날에 날으는 제비떼와도 갓다. 그리고 氏의 작품은 徹頭徹尾 無氣力하고 退?的이다. 아무리 예민한 감수성과 명랑한 기교가 잇다하드라도 1작품이 大衆인 독자에 대하야 엇더한 효과를 못내는 이상 그 작품은 死産兒이다.
그리고 氏는 氏 獨特의 모방성은 총명히 구비하고 잇다. 「明日의 食代」갓흔 작품은 氏의 下村千秋의 불감증이며 不消化에 기인되여 이러한 怪作도 試하게 되지 안엇섯는가! 그리고 또 최근에 作『非情都市』에 잇서서는 가장 새로운 이 單純化된 수법을 보혀 주엿다. 그러나 氏는 또한 이 수법을 모방할 줄만 알엇지 그곳의는 명확히 消化不良症이 露出되여잇다. 이 수법은 한 사건을 극히 簡潔되히 형식으로 짤분 一?一?속에 축소식히여 필님式으로 조화잇게 전개 식히며 영화의 특징인 텔포를 문학부문에 迎合 아니 攝取한 것이다. 그러나 氏는 그것에 섭취가 아니라 형식수법에 단순한 모방인 까닭 자기의 착상인 일사건에 대한 구상화는 全然 하지 못하고 말엇다. 이것을 일너 나는 예술적 「갱그」라고 하겟다.
氏는 이와갓치 〈73〉 純全한 쩌너리슴에 흘너 作家的 自重, 作家的 修養을 무시하야 氏의 미래잇는 작가적 지위에 위험을 보히고 잇다. 氏는 이런 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작가적 활동에 잇서 「産業合理化」와 갓흔 합리화가 필연적으로 생장될 줄 안다.

宋桂月氏는 아직 작가라 불으기가 앗갑다. 그리고 너무나 귀여웁다. 그러나 작가이다.
氏의 作 『街頭連絡에 첫날』이 取材에 잇서 퍽으나 새로운 맛을 주엇스며 열분 衝動까지 주엇스나 아무리 그 取才가 좃코 새롭다 하드라도 그 테-마를 충분히 충실히 구상화식히며 표현식히지 못하면 오히려 그대로 구수한 평범된 取才만도 못할 것이다.
이 작품은 XX的이면서도 아필할 가능성이 잇섯스나 氏의 수완으로 도저히 엇지도 못한 것 當然以上 當然일 것이다.
그 표현의 難澁 문맥의 不統一 문장의 生硬事件를 가주고 나가는 극적인 急迫力- 일일히 말하면 이 작품은 하나도 된대는 업다.
그리고 다만 取才에서 생명이 잇고 인상이 남엇다.
요컨대 氏는 예술에 잇서서 기술적으로 보잘 것이 업는 것이다. 여기에 氏는 적지 안은 자기 자신에 대한 幻滅을 가젓슬 것이다.
만약에 이 작품을 가지고 훌늉한 작품이이라고 잘된 한 예술품이라고 할 것 갓흐면 李甲基氏가 누구에게 말하드시 정말 그 사람이야말노―한길 읽을 필요가 잇다.
우리의 예술품은 取才만으로 훌융하다고 못할 것이다. 내용을 담어 주는 모든 기술도 또한 중요시 안하야서는 안 된다.
우리가 氏를 미래 잇는 작가로 보면 너무 총명한 의지와 정열을 가젓다고 할 수 잇스나 氏와 갓치 아직 그의 哲學的 見地가 確乎되지 못한 이상 그 정열이 쉬 식을가가 나의 기우이며 모든 사람의 문제가 아닐가 한다.
氏를 짓꾸지 말한다면 崔貞熙氏와 가치 가장 무서운 예술적 모험인 소화불량의 모방성을 깨끗이 내여버려야 할 것이다.

張德祚氏는 「低廻」를 발표한 작가이다. 그러나 나는 그 「低廻」만을 읽고 논하기를 躊躇한다.
그러나 氏는 모든 여류작가 중에서 가장 인텔리性을 갓고 잇다. 그리고 氏는 인테리적 明朗性과 憂鬱性과 退步性을 아울너 가진 모던니슴에 흘느는 경향을 가지고 잇다.
氏에 대한 말은 이만하다. 도저히 붓대가 안나간다. 나에 가슴은 이 「低廻」작자 氏와 갓치 두근거릴 것이다. 아무러튼 재질이 잇다. 미래가 잇다. 그러면 이 「低廻」는 低廻대로 긋처잇서지지 안을 것을 나는 氏와 약속하고 십다.

毛允淑氏는 드문 여류시인이다. 시단에 한편을 몰내 燦爛히 장식하야 주는 귀여운 아름다운 시인이다.
氏의 詩想은 아즉 익지 못하얏스며 시인으로써 호흡은 여성이지만은 너무나 적고 여성적이다. 간열흔 여인의 노래 연약한 여인의 노래 센치멘탈한 애정의 노래 이것이 氏의 詩想의 전부이다. 北國에 눈 바래치는 것을 보고 사랑하는 애인이 추워서 허기가 저서 갈길이 맥키여 허매는 애처러운 생각과 눈물만 흘니엇지 사나운 바람을 조금도 겁내지 안코 獨獸갓치 날뒤는 XXXX들의 그림자는 조금도 보지 못하얏다. 만약 氏를 우통을 버서 붓치고 무쇠를 자르며 느러내는 노동자 손에 든 함마와 그의 黑銅色인 탐스런 육체를 보면 담번에―
아- 나의 花園이 깨여질나― 할 뿐이다.

姜敬愛氏는 누구보다도 조리잇고 건실한 筆致와 충실한 표현을 한 작품 한 작품마다 보혀주는 건강한 작가이다.
氏만한 정도에 도달된 작가는 드물다. 그러나 氏는 기교는 어느 점 까지 좃타할 수 잇스나. 氏는 아즉 思想的 不明瞭를 말하고 잇다. 조흔 예로 「그 녀자」갓흔 작품은 大體 이 작가의 뜻이 잘 알려지지 안는다. 「幕切り」에 그 要領이 부족한 점도 잇다.
압흐로 건실한 明瞭한 사상의 確乎한 把握을 바라며 미래를 바랄 작가이다.
이로써 이 女流作家群像은 끗을 막으나 너무나 섭섭한 것은, 저 녯날 도서관 한 구석에서 영어사전과 씨름을 하며 讀本의 색임을 생각하고 잇슬 때, 洋裝한 여성 한 분이 유창한 日語로 사전을 빌녀 달나함으로 잠간 빌녀주고 그 대가로 단어 두 자를 알이키여 주든 金明淳氏의 그때 그 분홍색에 갓가운 양장과 단발한 그이의 모습은 살아지지 안는다. 일홈 모를 紅顔少年에게 영어단어 두자 가리키여 준 金明淳씨는 지금 어대서 그 소년이 바로 이 글을 쓰면서 섭섭하야 하는 줄을 알는지! 쓸대업는 雜말을 하얏다. 그리고 中央日報의 尹聖相氏, 每日申報 金源珠氏, 東亞日報의 崔義順氏, 新東亞의 金慈惠氏 이분들에 대하야는 나로써는 너무 지식이 업슴으로 말하기 어럽다. 모다 용서하시고 故意로 이 명예스럽지 못한 群像記를 쓴 것이 아님을 알어 주기 바란다.
이만 붓을 놋치만 현재 활약하는 모든 작가는 思想的 不安定! 철학에 몰상식 이 모든 점은 작품에 결점으로써 현저히 반영되는 것을 말하고 십다.
그리고 올에는 힘잇는 활동이 보일 것을 전제한다.
(사진은 金源珠氏) ―(妄言多謝)―〈75〉
〈7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