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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고향을 찾아서 - 중국문학기행 - 동서양을 아우르는 불후의 명작, 《三國志》

이강기 2015. 10. 2. 11:16

명작의 고향을 찾아서 - 중국문학기행

 

동서양을 아우르는 불후의 명작, 《三國志》

 

글·사진 : 許容善 여행 칼럼니스트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월간조선 2012년 6월호

 

손권이 통치하던 오나라 궁궐이 있던 무한.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세상 이야기를 하지 말라”, “삼국지를 열 번 읽은 사람과는 논쟁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삼국지》는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준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는 중국의 위·촉·오 3국의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쟁탈전에 대해 기술한 책이다. 영웅들이 천하를 놓고 지략(智略)과 용맹(勇猛)을 겨룬 역사의 현장은 1900년이 지난 지금도 영혼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부락당 밑에는 용맹스런 촉나라 오호대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가운데 인물이 관우이며 그 옆에 장비, 조자룡, 황충, 마초가 있다.
  《삼국지》의 무대를 찾아가려면 먼저 쓰촨성(四川省) 성도의 무후사(武侯祠)로 가는 것이 좋다. 무후사에는 유비의 거대한 묘가 있고 유비를 비롯한 촉나라와 위나라, 오나라 영웅들의 인물상이 자리한다. 각 인물상은 영웅들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듯 표정이 생생하다. 이곳에는 유비전(殿)과 제갈량전(殿) 같은 사당, 문신랑(文臣廊)과 무장랑(武將廊), 유비의 무덤, 삼의묘(三義廟) 등이 있다. 유비전의 오른쪽에는 관우와 그의 아들 관평·관흥, 그리고 주창·조루의 조각상이 서 있다. 왼쪽 전각에는 눈을 부릅뜬 장비와 그의 아들 장포, 장비의 손자 장준의 조각상이 있다. 관우는 황제만이 쓸 수 있는 ‘술이 달린 모자’인 면류관을 쓰고 있다.
 
  성도를 떠나 227km 떨어진 검문관(劍門關)으로 향했다. 검문관은 지형이 험난해 예부터 천혜의 요새로 불렸다. 제갈공명이 북벌(北伐)에 나설 때 군대를 끌고 이곳을 통과했고, 남북통행의 요충지(要衝地)로 판단해 성루(城樓)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포와 싸우는 유비와 관우, 장비의 모습. 삼국성에서는 당시 모습을 보여준다.
  허난성(河南省) 낙양에 있는 관제묘(關帝廟)는 삼국시대의 영웅 관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중앙에 관우의 위패가 있고 내부로 들어가면 관우의 목이 안치되었다는 묘와 사당이 나온다. 관우가 사용했다는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의 모형도 전시되어 있다. 부락당(富樂堂)은 부성(浮城)이라 불렸던 곳이다. 부락당 내부에는 유장이 유비를 대접하는 모습과 부하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삼국지》에서 부락당은 익주(益州)를 다스리던 유장이 한중(漢中)에 있던 장로(張魯)의 세력을 막아보고자 형주(荊州)에 머물러 있던 유비를 불러 대접했던 장소다. 유장과 유비는 그곳에서 정세에 대해 대화를 하며 100일 동안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조조가 이끌던 위나라의 전함. 삼국성에 만들어진 적벽대전 당시의 배들이다.
  낙봉파 계곡은 탁월한 지략가인 방통이 화살을 맞고 죽은 곳이다. 당시 낙성을 치기 위해 유비와 길을 나누어 진군하던 방통은 이곳에서 화살 세례를 받고 죽었다. 야트막한 언덕 중간에 방통이 죽은 장소임을 알리는 기념묘가 있다. 상하이에서 멀지 않은 무석에는 삼국성이 있다. 호숫가에 자리한 이곳은 1993년 중국 중앙방송에서 방영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촬영장소다. 삼국성 안에는 적벽대전(赤壁大戰)에 사용되었다는 전투용 배를 복원한 것과 삼국시대 전투장면을 보여주는 결전장, 오나라 왕궁, 감로사, 칠성단, 봉화대 등 수십 개의 대형 세트들이 있다.⊙
 
적벽대전이 있던 양쯔강. 길고 긴 강이라고 하여 창장(長江)으로 불린다.

검문관은 주변 산세가 험난해 촉나라 군대가 방어하기에 좋았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