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 韓美關係

관복입은 첫 방미(訪美)사절단 "조선에서 왔소"

이강기 2015. 10. 2. 14:24

관복입은 첫 방미(訪美)사절단 "조선에서 왔소"

  • 입력 : 2009.09.23 02:25, 조선일보

1880년대 美대리공사 포크가 찍은 사진 43점 공개

조선 정부의 첫 방미(訪美) 사절단인 보빙사(報聘使) 일행이 관복(官服) 차림으로 미국에서 찍은 사진, 휘장이 쳐진 창덕궁 주합루, 서른 살 무렵의 고종, 외국인들이 모여 살던 서울 정동(貞洞)의 활쏘기 시합….

19세기 후반 주한(駐韓)미국대리공사를 지낸 조지 클레이튼 포크(Foulk· 1856~1893)가 재임 당시 촬영·수집한 사진 43점이 공개됐다. 1884년 5월 해군무관으로 내한한 포크 소위는 이듬해 1월 전임 푸트(Foote) 초대공사가 사임하자 20개월간 대리공사를 맡았다. 포크 공사는 고종의 비공식 자문역을 맡아 조선 정부의 반청(反淸) 자주 외교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명성황후는 1886년 일본으로 떠나는 포크에게 "당신이 떠나면 지금 우리가 낯선 나라들과 상대할 때, 정직하게 지적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붙잡았을 만큼 고종 부부의 신임을 얻었다.

1883년 9월 미국에 도착한 조선의 첫 외교사절이 찍은 공식 기념사진. 정사 민영익(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부사 홍영식(첫 번 째) 종사관 서광범(세 번째)이 조선을 대표하는 사절답게 관복을 입었다. 앞줄 오른쪽 끝은 미국인 로웰. 뒷줄 왼쪽부터 무관 현흥택과 최경석, 수행원 유길준 고영철 변수.
포크 공사가 남긴 사진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인 1895년 유족들이 미국 위스콘신대 밀워키 도서관에 넘겼으며 최근 이 도서관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됐다. 이 사진들은 촬영 시점이 적혀 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포크 공사가 남긴 사진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민영익을 대표로 하는 보빙사 일행이 미국에서 찍은 2장의 공식 기념사진이다. 보빙사 일행은 1883년 9월 미국에 도착했고, 이들의 외교활동을 돕기 위해 일본에서 합류한 미국인 퍼시발 로웰도 함께했다. 보빙사 일행을 찍은 사진은 지금까지 두 장 정도 공개됐지만, 이번 사진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정사·부사 일행이 관복을 입고 촬영한 것으로 보아 보빙사의 방미(訪美) 공식 사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진에는 당시 해군 소위였던 포크와 메이슨 중위, 로웰이 민영익·홍영식·서광범과 함께 나온다. 포크와 메이슨은 미국 정부의 명령으로 보빙사의 미국 시찰을 수행했고, 포크는 이런 인연으로 한국에 파견됐다.

포크의 사진철에는 포크 공사와 친분이 있어 미국공사관을 자주 드나들던 정병하가 거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 등이 여러 장 들어 있다. 정병하는 1895년 을미사변 후 농상공부대신을 지냈으나 아관파천 뒤 친일파로 지목돼 김홍집과 함께 피살됐다. 포크가 1884년 9월부터 두 차례에 걸쳐 서울 주변과 대전·전주·광주·부산·경주 등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도 20장 남짓 포함돼 있다.

서른 살 무렵의 고종. 경복궁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사진 왼쪽 위), 1884~1885년 서울 정동의 미국공사관에서 통역관, 집사, 전령과 함께 선 포크. 미국 공사관은 초대 공사 푸트가 1883년 6월 초 2200달러를 주고 사들인 한옥 건물이다(사진 오른쪽 위), 1885년 4월에 촬영한 창덕궁 사진. 뒤쪽 발이 내려져 있는 건물이 정조 때 규장각이 들어 있던 주합루다. 한국에 들어온 첫 개신 교 선교사 알렌 박사 부부(왼쪽에서 두번째와 세번째)가 부용지 주위를 걷고 있다. 1884년 9월 한국에 도착한 알렌 박사는 그 해 12월 갑신정변 당시 부상당한 민영익을 치료해 신임을 얻고, 고종의 시의가 됐다. 이듬해 4월에는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했다(사진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