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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마이니치신문 사와다 記者의 金正日 러시아 방문 밀착 취재기

이강기 2015. 10. 10. 10:01
마이니치신문 사와다 記者의 金正日 러시아 방문 밀착 취재기
 
사와다 가쓰미(澤田克己)
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

 北韓의 저격수
 
 
  2001년 8월3일 저녁, 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공식방문 취재를 위해 모스크바에 들어가 있던 나는 마이니치신문 모스크바지국 동료기자와 함께 시베리아 철도의 종착역인 모스크바·야로스라브리驛(역)으로 향했다. 金위원장이 모스크바로 오는 순간을 보기 위해서였지만 그 모습을 확실하게 볼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다만, 그 곳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는 정도였다.
 
  나는 그때 모스크바·야로스라브리驛 먼발치에서 움직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을 뿐이지만, 그 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金위원장을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다. 金위원장이 공식석상에 이토록 모습을 많이 드러낸 것에 대해 취재하는 일본 기자들도 놀랄 정도였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金위원장에 대해 취재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金위원장이 예정된 일정을 연속해서 취소하거나, 軍需(군수) 관련 기업을 시찰하는 등 이전과는 달랐던 러시아 방문 모습을 전하고자 한다.
 
  『여기서부터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가면 북한의 저격수가 발포한다』
 
  폐쇄된 야로스라브리驛 옆에 있는 10여층 정도 되는 아파트 뒤 정원에서 동료 서너 명과 잡담을 나누고 있던 러시아 경찰이 아파트 정원을 돌아 驛으로 향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앞을 가로막고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주의를 줬다. 金위원장 도착 예정시각 약 1시간 전의 일이었다.
 
  야로스라브리驛은 특별열차 도착 2시간 전부터 폐쇄되고, 플랫폼에 있던 기자와 시민들은 驛 밖으로 쫓겨났다. 특별열차와 같은 노선을 달리는 교외열차의 운행도 일시 정지됐고, 驛 주변은 집으로 돌아가려다 발이 묶여버린 시민들로 넘쳐났다. 정면으로 驛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옆으로 우회한 우리들에게 주어진 경고가 『총에 맞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편도 4차선 정도의 큰 도로를 끼고 驛 반대쪽 人道에 많은 기자와 카메라가 집중되었다. 러시아측에서 경호를 하는 경찰이 1m 간격으로 서 있지만 삼엄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담배를 피우며 서 있는 경찰과 동료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는 경찰도 있고, 비교적 편안한 표정들이었다.
 
  오후 9시30분쯤 驛 앞 도로의 통행이 전면 금지되었다. 점차 정체가 시작돼, 멈췄던 차들이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특별열차가 온 걸까」라고 생각하며 취재할 태세를 갖췄지만, 5분도 되지 않아 통제는 해제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체가 너무나 심해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결국 특별열차가 도착하기 5분 전이 되어서야 다시금 차의 통행이 금지됐다.
 
  우리들이 서 있는 지점에서는 특별열차가 도착한 것과 金위원장의 모습을 육안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시력이 좋은 몇 명의 기자가 『누가 金위원장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하는 정도였다. 金위원장을 태운 舊소련제 고급차 「질」은 驛을 나온 곳에서 10대 정도 호위 오토바이들에 둘러싸여 크레믈린 방향으로 사라졌다.
 
 
  플랫폼에 있는 특별열차
 
 
  나는 동료와 둘이서 驛으로 가봤다. 金위원장이 떠나고 나서 10분도 지나지 않아 驛의 봉쇄는 해제됐다. 특별열차가 들어온 플랫폼에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국기가 걸린 플랫폼으로 다가가자, 두 대의 전기 기관차에 길게 연결된 열차가 있었다. 짙은 紺色(감색)의 차체이며, 창 바로 아래 높이에 선명하고 가는 노란색 선이 들어 있었다. 연결기 부분을 빼고 보면 한글로 뭔가 적혀 있었다. 「설마 특별열차가 남아 있는 것일까」. 주위를 둘러봤지만 경호원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차체를 만져봤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半信半疑(반신반의)하며 플랫폼 앞으로 나가자 차체를 닦고 있던 북한의 철도 승무원들을 만났다. 승무원들은 각 차량에 한 명씩 배치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이들은 왁스칠할 때 쓰는 대걸레 같은 것으로 정성스럽게 차체를 닦고 있었다.
 
  몇 명에게 한국말로 『먼 길이라 힘드셨죠』, 『국내에서는 이렇게 오랜 시간 철도로 이동하는 일은 없지요』라고 말을 걸자, 이쪽을 돌아다보며 『네』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그쪽에서 말을 걸어온 일은 없었고, 다만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의 사람도 있었지만 노골적으로 싫다는 기색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순박해 보이는 사람들뿐이었으며, 우리 곁을 지나가는 러시아人들이 이상한 듯 들여다볼 뿐 묵묵히 차체를 닦고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金위원장이 탄 차량의 창 밑에 총에 맞은 흔적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느 신문이 사진과 함께 보도한 것이지만 적어도 우리들이 본 바로는 그러한 흔적은 없었다. 또 우리들이 본 특별열차의 창은 특수처리가 되어 있어 내부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신문에 나온 사진에는 창 내부에 커튼이 쳐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본 특수열차와는 다른 열차의 사진이 신문에 게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별열차는 위성 통신설비를 완비하고 있다고 한다. 특별열차에 동승한 러시아 고위 관료의 말에 따르면 金위원장이 열차 안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통신위성을 사용한다면 파라볼라 안테나가 있을 거라고 상상했지만 플랫폼에서 본 바로는 안테나 같은 것은 확인할 수 없었다.
 
  특별열차가 서 있는 플랫폼의 반대편에는 러시아 철도차량이 들어와 있어, 많은 러시아人 승객들이 신기한 듯 특별열차를 들여다보며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북한측 차량이라고 생각되는 15량의 객차 앞에 연결된 러시아측 차량 앞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제지를 받고 되돌아갔다.
 
 
  레닌 묘(廟)에서
 
 
  다음날 金위원장은 오전 중에 크레믈린 근처에 있는 무명용사의 墓와 레닌 묘에 헌화한 후 크레믈린궁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頂上회담을 가질 예정이었다. 무명용사의 墓가 오전 10시, 레닌 묘가 같은 날 10시 반, 頂上회담이 11시, 모스크바선언 발표는 오후 1시 반부터 2시까지라는 정보가 전날밤 이미 외교소식통을 통해 흘러나와 이날 일정은 실제로 그대로 진행되었다.
 
  8월4일날 아침, 헌화하는 장면을 멀리서라도 확인하고 싶다고 생각한 나는 무명용사의 墓와 레닌 묘의 주변을 돌아다녔다. 레닌 묘는 「붉은 광장」 중앙에 있다. 마지막으로 「혹시나」 하며 정면으로 들어가 보니 광장에 면한 백화점이 영업하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광장에 면한 상점에는 『창에서 레닌 묘의 방향을 보면 안 된다』는 지시가 내려왔지만 그 외에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백화점은 쇼핑을 즐기는 모스크바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백화점 안에는 유리창 너머로 「붉은 광장」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장소도 몇 군데 있었다. 나는 서둘러 백화점 안의 카메라 가게에서 러시아制 대형 쌍안경을 사들고 레닌 묘 정중앙에 해당하는 1층 출입구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하고 모여들고 있는 모스크바 시민들 사이로 휩쓸려 들어갔다. 레닌 묘는 직선거리로 1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러시아 경찰 2명이 경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출입구 옆에 있는 상점의 점원과 잡담하느라 정신이 없어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경을 전혀 쓰고 있지 않는 눈치였다.
 
  레닌 묘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북한과 러시아의 카메라맨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金위원장의 차량 행렬이 시야에 들어왔다. 金위원장이 탄 대형차와 우리들 사이로 가로막듯 키 큰 왜건 차가 정차했다. 金위원장은 차에서 내렸을 테지만 쌍안경을 사용해도 왜건차에 가로막혀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수십초 후, 레닌 묘 입구 계단을 오른 金위원장이 입구 왼쪽에 놓여진 화환을 마주보는 자세가 쌍안경의 시야에 들어왔다. 묵념을 하고 있는 것일까. 金위원장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奇妙(기묘)한 표정의 옆 얼굴이 확실하게 보였다. 金위원장이 레닌 묘에서 나왔을 때, 차로 향하는 모습을 정면에서 볼 수가 있었다. 몇 분 동안이었지만 러시아 경찰에게 제지당하는 일은 없었다.
 
 
  일반 관객과 함께 한 발레 감상
 
 
  모스크바 공식 방문을 마친 후 들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나는 金위원장의 모습을 좀더 가까이서 볼 수가 있었다. 金위원장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본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과 같은 호텔에 묵고, 일반 관객과 함께 발레를 감상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서 도착했을 때, 나는 20m 정도 거리에서 金위원장을 육안으로 보고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金위원장은 6일 아침, 驛에서 차에 올라탔을 때 플랫폼을 통해 도로 앞에서 발이 묶인 승객과 우리 기자들을 짧은 순간이지만 확실하게 쳐다봤다. 화난 표정도 웃고 있는 것도 아닌 정말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린스키극장이 있다. 金위원장이 마린스키극장에서 발레 공연을 보겠다고 희망하는 바람에 원래 공연예정이 없었던 6일 밤에 급히 「라 실피드」라는 발레 공연이 급조됐다. 그러나 이 발레 공연은 金위원장만을 위한 공연은 아니었고, 그 지방 유력자들만을 초대한 것도 아니었다. 공연을 한다는 사실이 그 지방 신문을 통해 며칠 전부터 홍보되어 티켓을 일반 관객들에게도 판매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 덕분에 「보통은 당일까지 표가 남아 있을 리가 없다」고 알려진 표를 나는 공연 시작 직전에 사서 입장할 수가 있었다.
 
  金위원장은 시작 부저와 거의 동시에 10명 정도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무대 정면 2층 중앙에 있는 귀빈석에 모습을 드러냈다. 金위원장은 귀빈석 맨 앞 줄 왼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오른쪽 옆에는 안내를 맡은 러시아人, 그 오른쪽에는 군복 차림의 金永春(김영춘) 軍 총참모장의 모습이 보였지만 극장 안은 어두웠기 때문에 그 외에는 누가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지만 金위원장이 들어서자 여기저기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북한의 카메라맨뿐만 아니라 일본 기자와 그 지방신문의 카메라맨들이 플래시를 터뜨려 金위원장의 모습을 촬영했던 모양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자리가 멀었고 소형 디지털 카메라밖에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金위원장의 모습을 촬영할 수가 없었다.
 
  金위원장은 배우들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면서 휴식시간을 포함해 약 2시간 동안 발레를 마지막까지 열심히 감상했다. 커튼콜 때에도 무대에 꽃을 보내 주는 배려를 보인데다, 幕(막)이 완전히 내려갈 때까지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극장에 와 있던 상트페테르부르크市의 한 한국인 유학생(30)은 金위원장에 대해서 『낭만적이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舊소련과는 다르다』
 
 
  나는 모스크바에서 안전보장과 한반도 정세에 관한 러시아人 전문가들과 인터뷰할 기회도 가졌다. 北·러 관계를 질문한 나에게 그들이 異口同聲으로 강조한 것은 『舊소련과 러시아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과 『푸틴 대통령의 외교는 國益을 최대한으로 추구하는 현실주의 외교』라는 것이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미국 캐나다 연구소의 크레메뉴크 부소장은 『푸틴 대통령도, 金위원장도, 모스크바 선언에 서명했을 때 바라보았던 것은 눈앞에 있는 상대방이 아닌 워싱턴이다』고 지적해, 『푸틴 대통령은 ABM(Antiballistic Missileㆍ탄도탄 요격 미사일) 제한 조약의 수정에 최종적으로는 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북한은 對美 교섭에서 러시아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몇 장 있는 카드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이 아카데미 극동 연구소의 사베리예프 한국연구센터 부소장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미사일 방위를 전면 거부한다든가 미국과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외교 정책상 할 수 없다. 러시아는 미국과 이야기할 것이며 대화를 통해 러시아의 입장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舊소련 시대의 공산당 유력자며 1996년 이후 네 차례 북한을 방문해, 그 중 3회 金위원장과 회담했다는 우마라토와씨는 『金위원장은 오픈 마인드한 사람이다. 러시아에 관해서도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잘 알고 있어 놀라게 되었다』라고 격찬했지만 『러시아가 북한과 어떠한 관계를 가져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러시아는 국익을 생각한 결정을 할 것이다. 러시아의 이익이 될지 어떨지가 판단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우마라토와씨는 현재 국회에 의석을 갖고 있지 않는 작은 정당 黨首(당수)다. 작년 8월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에는 평양에서 金위원장과 1시간여 동안, 쌍방에서 한 사람씩 배석시킨 채 회담했다고 한다. 북한측 배석자는 체격 좋은 국제 담당비서였다고 하지만 이름까지는 기억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눈앞을 지나간 金위원장
 
 
  나는 8월7일 밤, 그들의 이야기 내용을 생각하면서 크레믈린 근처의 메트로폴 호텔에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돌아온 金위원장은 이 호텔에 숙박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도착시간과 호텔은 사전에 러시아측 보도로 알려졌다. 유서깊은 최고급 호텔이긴 하지만 이 때도 호텔 전체를 빌린 것이 아니어서 일본 기자 중에는 같은 호텔에 숙박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오후 8시가 지나 나는 호텔 입구에서 엘리베이터 홀로 이어지는 통로에 면한 레스토랑 유리문 너머로 마중 나온 호텔 지배인들과 웃는 얼굴로 악수를 교환하는 金위원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리는 5m 정도였을까. 인사를 마친 金위원장은 내 눈앞을 지나 엘리베이터홀로 사라져 갔다. 내 주변에는 낯익은 얼굴의 일본 언론사 기자가 여러 명 있었지만 나를 포함, 누구도 몸수색이나 소지품 검사는 받지 않았다.
 
  나는 러시아 당국의 경호 체제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 金위원장에 대한 경호체제는 러시아에 있어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좀더 엄격한 경호를 예상하고 있었던 나에게 있어서는 의외였다. 모스크바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북한의 경호원들은 상당히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주위에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월간조선 200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