飜譯글

세계 제조업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이강기 2015. 11. 1. 12:29

세계 제조업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The Economist지 98년 6월 20-26일 판에 특집으로 게재된  "Manufacturing"을 완역하여  KOTRA홈 페이지 "세계 1000대기업 DB"에 올렸던 글임.)

 

 

 

=차례=

 

1. 단일 머신으로서의 세계
2. 과거의 방법
3. 자동차산업의 교훈
4. 캐터필라의 복귀
5. 공장은 섬이 아니다
6. 티우화나 삼각지대
7. 홍콩의 유연성
8. 제조업시대 이후

 

===========================

 

 

 

1. 단일 머신으로서의 세계

 

 

 

변화는 항상 사람들을 섬뜩하게 한다. 오늘날 세계경제는 두가지 엄청난 변화
를 격고 있는데, 둘 다 아시아 금융위기나 유럽 통화통합 보다고 더 규모가
크다.

 

첫째번 변화는, 제조업의 많은 부문이 미국이나 유럽 및 일본으로부터 라틴
아메리카, 동아시아 및 동부 유럽에 있는 개발 도상국들에게로 이전되고 있다
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년 동안 선진국들로부터의 섬유산업
탈출이다. 1950년에 미국은 혼자 세계 총 경제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1990년이 되면 미국의 쉐어는 4분의 1로 줄어든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미국,
유럽 및 일본은 아직도 세계 총 생산량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두 경제학자인 MS DeAnne Julius와 Mr. Richard Brown은 1993년의
한 유명한 논문에서, 큰 시대변화를 지적했다. 그로부터 조금 지난 지금 서구
의 많은 대형 기업들은 선진국 보다는 후진국에서 더 많은 고용원을 확보하고
있다.

 

둘째번 큰 변화는, OECD 선진국들에서 경제활동의 밸런스가 제조업에서 서비
스업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제조업부문의 노동자
들 비율이 약 40%에서 그것의 거의 절반도 안되게 줄어들었다. 심지어 1945
년 이후 많은 공장들을 세운 독일과 일본에서까지 현재의 제조업 부문 노동자
들 비율이 30%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이전은 제조업이 선진국에서 개발
도상국으로 점점 더 옮겨 감으로써 가속화되었다. 개발도상국들의 싼 노임은
대량생산에서 요구되는 반복작업의 많은 부문에서 그들에게 큰 어드번티지를
줬다.

 

이러한 경향은 "서구 산업조직의 파괴(축소)"에  대한 한 어두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1970년대 석유가격이 유럽과 미국에 인플레를 가져왔을 때, 많은 사
람들은 싼 노임 때문에 제조업이 개발도상국으로 급속하게 이전돼가는 상황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많은 미국인들은 그들 국가의 산업
기반이 저임금 지역인 멕시코와 아시아 국가들로 옮겨감에 따라  미국에 산업
공백상태가 생길 것으로 믿었다. 미국 산업의 내부에 급성 암 조직이 퍼져가
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것은 파괴적인 변
화만은 아니었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었다. 1980년대 중
반 이전 여러 해 동안 미국의 산업구조가 변화를 겪고 있었던 것이다. 주식회
사 아메리카의 위대성을 대변하고 있는 IBM,  GM, 포드와 같은 확고한 기반
을 가진 구 회사들의 눈에 익은 그림들이 오래전부터 희색빛으로 변하고 있었
으며, 국제적인 경쟁이 이미 옛날에 미국으로 밀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1985년까지 순진한 미국 소비자들이 "미국제품"이라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실
은 세계 여러 나라들의 공장에서 만든 것들이었다. 1990년까지 IBM 종업원의
40%가 비 미국인이었고, 미국의 일상 가정용품 선두 메이커인 윌풀은 그들
제품의 대부분을 멕시코와 유럽에서 생산했으며 그들의 미국 종업원들을 10%
줄였다. 그리고 제너럴 일렉트릭은 싱가폴에서 가장 큰 민간기업주가 되었는
데 이 곳에선 미국인 소유  공장들이 미국 수출용 전자부분품을 만들기 위해
10만명 이상의 싱가폴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90년대 초순까지 미국기업
들의 총 생산량의 약 5분의 1이 미국 바깥에서 비 미국인들에 의해 생산됐다.

 

미국은, 최근 수년동안 섬유, 의류, 신발, 핸드백, 자동차시트 및 전선같은 저
코스트 제품들이 멕시코로 이전돼 가는 변화를 겪었다.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
는 많은 자동차와 컴퓨터들의 상당수가 실제로는 국제적인 조직망을  가진 부
분품 공급회사들과 조립업자들이 협동하여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러나 정치가
들이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가를 이해하는데는 20여년이 걸렸다.
데트로이트의 자동차 메이커들과 켈리포니아의 컴퓨터 메이커들이  액설에서
마이크로칩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많은 부품과 부분품들을 수입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마침내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하이테크 산업부문에 대한 "일본
의 지배력"과 많은 미국 제조업체들의 "붕괴"를 보고 절망적인 비명소리를 냈
다. 그리고 국민들이 절망에 빠지고 있었던 것은 비단 미국만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어떤 묘한 점이 있다. 왜 프랑스와 벨지움의 정치가들이 다 함께 프
랑스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인 러노가 지난해 봄 브랏셀 근교의 한 자동차 공
장을 폐쇄했을 때 흥분해마지 않았을까? 왜 GM과 포드가 유럽공장의 생산시
설을 늘려 유럽의 덜 효율적인 자동차공장들을 문을 닫게 만든다는 비슷한 항
의에 두려움을 느껴야 할까?

 

특히 유럽에서 이 물음에 대한 광의의 대답은,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막연하
게 어떤 다른 경제활동보다도 제조업을 무언가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는 것
이 될 것이다. 물건을 만드는 일이 손가락으로 컴퓨터 키를 두드리거나 머리
칼을 자르는 일 보다 더 운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OECD국 생산액의 3분의 2 이상과 종업원의 4분의 5 이상이 현재 서비스 부
문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일은 아직도 남자들이 할 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마치 150년 전에 성장부문은 실제로 남자들이 도맡았던 것 처
럼).  전국적인 망을 가진 은행지점에서 3천명이 조용하게 직장을 잃어도 아
무도 놀라지 않는다. 영국 북동부에서 전화 세일즈 센터 하나가 문을 열어 3
천명의 새 직장이 생겨도 지방 뉴스에  겨우 오를가 말가이다. 그런데 철강공
장 하나가 문을 닫으면, 몇 주동안 흥분이 온 나라를 휩쓴다. 반도체 공장 하
나를 건립하면, 몇 달동안 칭송의 소리가 그치지를 않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들에겐, 경제적 성공과  제조업의 성공이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때가 사실상 있었다. 실질적인 추억을  갖고 있지 않은 많은 영
국인들도 아직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버밍햄에 대해서, 그리고 세계의 바다
를 지배한 클라이드(스코틀랜드 남서부 해안)제 거함에 대한 가공적인 아련한
향수를 느끼고 있다.

 

더욱이 제조업에서의 성공은 지정학적 파워와 관련이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
들은 양차대전에서 미국의 산업기계들이 만든 탱크와 군함과 비행기 및 폭탄
의 홍수 덕분에 독일을 이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제조업은 오랜 기간동
안 튼튼한 근육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좋은 평판과 높은 임금을 보장하는 원천
이었다. "우리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그래머가 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을
고용한다."고 크라이슬러의 한 생산담당 책임자는 말하고 있다.

 

<> 제조업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그들의 제조업부문이 저임금 국가들로 빠져나가는 것을 우
려하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선진국으로서, 선박, 자동차, 머신 툴 및 텔레비
젼 세트를 만들어 외국에 수출하는  큰 공장들도 가지지 않고 어떻게  식품과
석유 및 기타 원자재를 사 오고 생활 필수품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한
단 말인가? 1993년 논문에서 MS Julius와 Mr. Brown은 이것을 "제조업은 특
별한 어떤 것"이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상황을 이런 방법으로 보게 되면, 제조
업은 다른 어떤 경제활동 보다도 더 큰 성장, 임금을 많이 주는 직장, 수출증
가 및 더 훌륭한 기술 발전을 가져오는 것으로 된다.

 

줄리어스-브라운의 논문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한 가
정을 예로 들어 보면 구성원이 일생동안 사용하는 자동차나 냉장고 및 접시닦
기 기계는 겨우 수대 및 수개에 불과하다. 나라가 더 부유해 질수록 증가하는
소득은 레저와 건강 및 교육으로 더 많이 소비된다. 바쁜 사람들은 그들의 집
을 청소하거나 세탁 및 다른 일들을 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고용한다. 아
무튼 디자인과 상품의 마케팅과 같이 전통적으로 "제조업"의 부분들로 생각돼
온 많은 업무들은 실제로는 서비스업인 것이다.

 

그들에 대한 수요가 증가되면서 이들 서비스업무들은 더 좋은 임금을 받게 되
었고 공장노동의 고역과 비교하여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서비스업은 세계적
인 규제완화에 힘입어 국제적인 거래의 한 분야로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자
동차, 화학제품  및 컴퓨터를 만드는 딱 바라진 자본집중형의 공장들은 중세시
대 것들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젊음의 생명력을 바란다
면, 통신, 항공, 생명공학 혹은 헬스케어산업 같은 것으로 방향을 돌려야 할 것
이다.

 

모든 선진국에서 총 생산량중 제조업의 비율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종업원
수도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농업부문에서도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20세기 초
두에 일본 노동력의 68%, 미국 노동력의 44%, 영국 노동력의 약 20%가 농업
부문에서 일을 했다. 오늘날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본 노동자들의 겨우
7%, 미국의 3%, 영국의 2%다. 농업의 쇠퇴가 이들 나라들에게 가난을 가져오
지 않았다. 공장들이 쇠퇴한다고  해서 이들 나라들에  가난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국민들에겐 다른  할 일들이 있으며  그것들이 안정된 수입을
가져다주고 들에서 괭이질을 하거나 생산라인에서 레버를 움직이는 것 보다도
더 흥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 보고서는 제조업이 선진국과 후진국 모두에서 변화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
하게 될 것이다. 제조업의 여러 단계들이 한  지붕 밑이나 한 회사 내에 있기
보다는 오히려 분리되고 흐트러지고 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구별이 점점
불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그들의 개별고객들에
게 서비스하는 업무 여기 저기에서 회사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을 더  잘 유기
적으로 맺어지도록 적지아니 도움을 주고 있다. 이것이 대량생산의 룰을 다시
고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제조업의 구조 속으로  피드백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산업은
70년대에 조선산업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겨간 것 같은 옮겨다님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산업  심장부에서, 멕시코의 마킬라도라 공
장에서, 그리고 홍콩에 있는 제조업 네트워크로부터 에를 들어 가며, 오늘날의
제조업이 진짜로 국제화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낼 것이다. 환상적인 제품은
선진국에서 기량높은 노동자들이 만들고 있으며, 좀  더 단순한 부품은 그 밖
의 지역에서 공급된다. 점점 더 많은  과정들이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처리되
고 있으며 어디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즉각 알수 있게 되고 있다. 여
기에서 두려워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니고 있는 기술을 이용하고자 하는
어떤 나라들도 그기에 참여함으로써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2. 과거의 방법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미국, 유럽 및 일본의  기업들이 그들 자신을 큰 그룹으
로 조립하기 시작했다.  1890녕의 미국의 반 카르텔 법인 셔만 법은 합병부움
에 의한 고의아닌 결과들로  인해 법의 희생물이  되었다. 경쟁자들은 셔만법
때문에 더 이상 결탁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결합할 수는 있었고 그렇게 한
것이다.

 

Robert Reich는 1991년에 쓴 저서 "Work of Nations"에서, 1904년으로 돌아가
면 모든 미국 제조업체들의 3분의 1은 73억 달러(현재의 화폐가치로 치면 1천
210억 달러) 의 결합 자본금으로 된 318개 기업에 의해 지탱됐다고 분석했다.
관세장벽이 국내물가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때때로 공급회사를 인수할 생
각도 갖게 됐다. 유에스 스틸사가 캐나다로부터 수입하는 석탄과 철광석 가격
이 너무 비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 회사는 펜실베니아에 있는  철광석과 석
탄생산회사를 아예 사버렸다. 수직적인 결합 - 대형 회사들은 원자재에서부터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과정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 이 탄생된  것이
다.

 

움직이는 조립라인에다 싸게 먹히는 대량생산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헨리 포
드는 시카고의 도살장을 방문한 후 1913년 조립라인 생산체제를 만들었다. 그
는 시카고 도살장에서 수많은 소들이 라인을 타고 가면서 차례 차례 조직적으
로 껍질이 벗겨지고 살이 저며져서 조각 조각 상품이 되는 것을  구경했던 것
이다. 그는 그 라인에다 소 대신 자동차를 올려놓되, 소잡는 라인을 전혀 반대
로 돌려 작은 부분품(소 살점이나  뼈 조각들)이 마침내 자동차(소)로  변하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GM과 유에스 스틸, 제너럴 일렉트릭, 아메리칸 캔 &  인터네셔널 하베스터가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비슷한 결합으로 미쓰비시와 가와사
끼같은 자이바츄(재벌) 자이언트들을 만들어냈다. 유럽에선 지멘스, 브라운 보
버리, 필립스, 꼼빠냐 제네랄레 델렉뜨리시테 및  임페리얼 케미컬 인더스트리
스같은 거인들이 탄생했다.

 

이러한 회사들은 국가적인 챔피언들이 되었으며 그들의 정부와 문서없는 계약
을 맺게됐다. 미국의 대형회사들은 엄청난 물량의  상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조직을 갖게 됐다. 규모의 경제가 생산 코스트를 내렸으며, 미국의 소비자들은
더 싼 제품을 살 수 있었다. 가격은  물론 새 기계를 사들이고 주주들에게 충
분한 배당을 할 만큼(그리고 직원들과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임금을 주어 그들
이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할 만큼) 비싸게 책정된 것이었다. 아울러
정부는 외국과의 경쟁을 물리칠 수 있게 됐고 국내에서 일부 가격담합을 인정
하고 있었다.

 

1930년대 초 뉴딜시대까지 이러한 자이언트 기업들은 일종의 국가적인 기관들
이었다. GM에게 좋은 것은 결국 어떤  점에선 미국에게 좋은 것이었다. 미국
에서 구입한 자동차의 오직 4% 만이 외국산이었다. 나머지 96%는 데트로이트
의 빅3가 도맡았다.

 

비슷한 과정이 유럽과 일본에서도 행해졌다. 각각의 산업분야에서 둘 내지 세
개의 거대기업들이 그 분야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임금은 회사대 회사로서
보다는 전 산업 공통으로 매겨졌고 이것이 코스트 경쟁을 제한했다. 외국과의
경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격이 조정될 수  있었다. Reich는 다음과 같이 지
적하고 있다. "이 시스텀은 그 자체의 내적 논리를 갖고  있었다. 대형 규모의
사업, 대형 규모의 노동자  그리고 대형 규모의  대중들이 대량생산을 하도록
측면지원역할을 하여 더 큰 규모의 효과를  얻게 되었으며, 성장하고 있는 중
산층들이 대량생산품들을 소비할 수 있게 되고 기업들은 그들을 고용할 수 있
게 되었다. 그야말로 네셔널 바게인이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이 내려졌다. 이러한  미국형 회사들이 단게적으로 외국에
도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곧 그들은  그들의 외국 자회사들에게 제품을 만들
게하여 미국으로 가져와서 팔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미국 자본주의의 교훈을 배운 외국인들은 미국과 겨룰 준비를 하고 있
었다. 미국 소비자들은 일본제 카메라와 텔레비젼  세트가 더 싸다는 것을 알
기 시작했다. 컨테이너선과 더 좋은 통신시설이 세계를 좁혔다. 점점  더 많은
상품들이 세계 어디에서나 가격만 싸게 먹히면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그것들
을 세계 어디에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마침내 실질적인  경쟁의 시대가 온
것이다.

 

 

 

<> 붉은 잉크로 쓰여진 교훈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은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차츰 알게 되었다. 오래
동안 실체가 대형기업들의 계산 속에 묻혀있었던 것이다. Richard Schonberger
는 그의 새 저서("World Class Manufacturing:Thh Next Decade", The Free
Press, $30)에서 이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한 회사가 일년에 몇번이나 원자재
와 기타 것을 완제품으로 턴오버시킬 수 있을까?  턴오버가 빠를수록 회사의 효
율성이 높아지고, 다른 상황이 동일하면, 회사는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

 

1945년 이후 지금까지 제조업자들의 영업결과는 V자 형을 그려왔다. 20여년동
안 그들의 스토크 턴오버가 점점 성장이 느려지게 되었다. 재가속화할 필요성
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일본에서  이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
다. 일본에서 "군살빼기(lean)" 제조기술 - 최소한의 재고를 가지는 습관, 부분
품을 바로(just in time) 조립라인에 투입하고, 약속한대로 확실한 품질의 제품
을 만들어내는 것 -  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이 급작히
높아지기 시작하자 거의 1975년이  지나서야 미국기업들이 이 방법에  주목했
다. 일부 다른 대형기업들의 쇠퇴보다도 늦게  시작된 IBM의 쇠퇴가 더 오래
계속되어 1984년에는 바닥에 이르렀다.  Schonberger씨는 "그것은, 어떻게 그
처럼 한때 이름을 떨치던 회사가 컴팩과 같은 개인용  소비시장의 신참자들에
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일이 일어났을까를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Schonberger씨는 일본식의 "군살빼기 방식(lean methods)"이 미국 기업들에게
접목되어 1970년대 말 부터는 미국에서도 눈에 띄게 개선점이  보이기 시작했
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포드자동차, 죤  디어(농기구회사), TRW(전자 엔지
니어링 복합회사), 이튼(액설생산회사) 그리고  펩시사가 이  방법을 도입하여
성공한 회사들로 들고 있다. 그는 또한  커민스 엔진, 캐터필라, 블랙 &  덱커
스, 모토롤라, 제너럴 밀스(식료품회사) 및 허니웰(산업제어기계)사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는 1970년대 10년을 일본의 시대로 보고 있다. 군살빼기 제조기술을 개발함
으로써 일본은 철판과 선박에서 자동차, 게산기 및 텔레비젼 세트에 이르기까
지 가공할 경쟁력으로 미국과 유럽시장을 휩쓸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은 그 요
점을 잘 알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10년은 미국의
시대였다. 미국의 잡지들은 미국산업의 "공백"과 그들 나라들의 경쟁력 상실에
대한 어두운 이야기를 줄줄이 역어대고  있을 때, 미국의 기업들은 그들(잡지
들)의 슬픈 노래가 잘 못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보고서의 다음 장들에서는 이러한 압력이 세계 다른 나라의 제조업엔 어떠
한 영향을 미쳤으며 기업들이 그기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출
발이 가장 좋았던  곳은 한때  "rust-belt" 로  불려진 미 중서부인데  이곳은
1970년대에 자동차산업과 엔지니어링기업들이 쇠퇴기를  맞았던 곳이다. 여기
에 새로운 자본 - 그리고 새로운 아디어  - 이 들어와 그들을 구제했던 것이
다.

 

 

 

3. 자동차산업의 교훈

 

 

 

5월 초 클라이슬러가 독일의 다임러 벤즈와 합병한다고 발표했을 때 데트로이
트에 준 충격은 세계 자동차산업의 심장부인 이곳에 가한 일련의 충격중 가장
최근 것이었다. 자동차산업은 단순히 덩치만 큰 제조업일 뿐만이 아니고, 현재
다른 산업의 일부 부문들이 눈여겨 보고 있는 어떤 것이기도 하다. 자동차 세
계가 하는 일은 때때로 다른 산업의 열성적인 모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70년대에 대부분의 자동차공장들은 혼돈의 장소였다. 공장 바깥에는 수만대
의 완성차들이 먼지를 둘러쓰고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고, 공장 내부에는 자동
차에 쓰일 비트와 부분품 조각들이 마루바닥의 허접쓰레기들 사이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었다. 삑삑 소리를 내고 있는 포크리프트  트럭들이 그 위를 왔다
갔다 했다. 종업원들은 절반으로 나뉘어 작업을 하는데, 한쪽 절반은 힘든  육
체노동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다른 쪽 절반은 멀뚱히 서서 그들을 지켜
보고 있었다.  겨우 10년 전만 해도 어디고 없이  자동차 공장들은 이처럼 혼
란 투성이었다.

 

동경만 근방에 있는 닛산의 옛날 공장들에선 로봇들이 불꽃을 튀기며 바디 패
널을 용접하고, 쇳조각들이 부딛치는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 오늘 날 러시아의  자동차공장에 들어가 보면 같은  장면을 구경할
수 있다. 브라질의 상파울로 교외에 있는 GM의 좀 오래된 메인 어셈블리공장
에 들어가 보면, 점보 제트기를 띄울 수 있는  300톤의 거대한 프레스기로 바
디 패널을 쾅쾅 찍는 소리 때문에 가이드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려면 헤드폰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이나 북동 잉글랜드에  있는 닛산의 최신식 공장에  들어가 보면,
조용하기 그지없다. 비 일본계 최신 공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남 이태리의 멜피
에 있는 유럽에서 가장 최신식인 피아트 자동차 공장에선 거의 시끄러운 소리
를 듣기 힘들다. 패널 용접용 로봇  작업장도 반지하로 된 장소에 두고  있다.
엔진과 기어박스 및 액설이  고정돼 있는 컨베이어를 조용하게  타고 다닌다.
어셈블리 라인의 마지막 부문을 제외하곤 거의 일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다. 이 마지막 부분에선 사람들이 손으로  바퀴와 윈드스크린, 대시보드, 시트
및 인테리어 라이닝등을 산뜻하게 만들어진 차체에 갖다붙여 피아트 완성차를
만든다. 매 1분마다 한 대의 완성차가 라인을 타고 굴러 나온다.

 

 

 

<> lean 프로덕션

 

시끄럽고 혼란스런 구식공장과 현대공장의 매끄럽게 흘러가는 세계와의  차이
는, 지난 20년간의 제조업에 관해  쓴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를
한 책의 주제가 되고 있다. James Womack,  Daniel Jones 및 Daniel Roos가
1990년에 "The Machine that Changed the World"를 공동으로 썼을 때, 그들
은 자동차 자체에  대해서는 쓰지 않고,  Toyota Production System(TPS)을
세계에서 가장 효율성이 높은  자동차 제작 시스텀이라고 쓰고  있다. 그들이
그 책에서 처음 묘사한 것 중 많은 것들이 오늘날 일상 사용하는 비지네스 랭
귀지의 일부분이 되고 있다.

 

그들은 도요타 시스텀의 핵심을 "lean production"이란 말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시스텀은 1950년대에 다이이찌 오노라는 한 도요타 간부가 개발했던  것이
다. 유도경기를 들여온 이후 영국에 유입된 일본식  용어중 가장 유명한 것이
"just-in-time" 델리버리라는 것이다. 곧 미국과  유럽에 있는 공장들이 "칸반
(看板) 컨트롤" - 부품의 흐름을 컨트롤하는 태그를 체크하는 것 - 이라는 말
을 사용하게 되었고, "카이젠(改善)"이란 말도 일반화 되었는데, 이것은 더 높
은 효율성, 더 나은 인간환경공학적  조건 및 더 높은  품질을 추구하기 위해
계속 작은 개선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womack, Jones 및 Roos씨들은 이  lean 매뉴팩츄링과 옛날의 장인작업 시스
텀을 비교하고 그리고 헨리 포드 스타일의 매스 프로덕션 시스텀과도  비교하
고 있다. 장인 제작자들은  기술이 뛰어난 노동자와 유연한  연장을 사용하여
고객이 원하는 그대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한때  유행하던 주문형
가구 같은 것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것은 좋긴 하지만 값이 비싼게  흠이었다.
매스 프로덕션은 상품의 가격을 싸게 만들었다. 그것은 각각 하나씩의 특정작
업을 하는 노동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들을
사용했다. 이 비싼 기계들을 들여논 보람을 찾기  위해선 가능한 한 생산성을
높이고, 또 그러기 위해선  그 기계에다 게속적으로 원자재를  밀어넣어 줘야
했다. 코스트는 극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제품  종류를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이
떨어졌다. 즉 모양을 약간만 바꿀려 해도 비싼  기계를 새로 들여와 설치해야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lean 매뉴팩츄링의 목적은 장인작업과 매스 프로ㄷ션 시스텀  둘 다에서 가장
좋은 점만 취하는 것이다. 그것은 각각의 인푸트를  줄여 사용하도록 돼 있는
데, 이른바 노동력도 줄이며, 기계도 줄이고,  스페이스도 줄이고 제품 개발시
간도 줄이는 것이다.

 

매스 프로덕션은 결점을, 허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lean 프로덕션은 모든 결점들을 없애려 한다. 즉, 만약 어떤 것이 잘 못
돼 가면 작업인부는 tandon이라는 줄을 잡아당길 수  있다. 그러면 모든 라인
이 멈춰지고 잘 못된 부분이 확인되고 바로잡혀진다. lean 공장은 미스테이크
가 미연에 방지된다.

 

그것은 또한 더 경제적이다.  lean 매뉴팩츄링은 생산과정의  각 단계 사이에
자재와 부분품들을 가득 가득 쌓아 놓는, 거대한  완충재고를 두고 물건을 만
드는 낡은 아이디어를 배척한다. 현재 공장에서 수행되는 하나 하나의 행동은
말하자면 꼭 필요에 따라 행해진다.  여차 여차한 한 모델의  차를 많이 주문
받았을 때는, 바디 패널, 엔진, 기어박스 및 바퀴는 완성차조립 속도를 맞추기
위해 just in time으로 제작라인에 투입된다. 이 과정은 주어진 시간에 원하는
것 만큼만 만들기 때문에 낭비를 없앤다. 예전처럼 공장 바닥 여기 저기에 값
비싼 허접쓰레기들이 널려 있는 광경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과
유럽에서, 전과 같은 공장에서 생산성을 2배로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lean 프로덕션은, 일본의 혼다, 도요타 및  닛산자동차회사들이 미국과 유럽에
조립공장을 만든 후 미국인과 유럽인들이 가까이서 이 일본식 방식을 직접 눈
으로 보고 배워 도입한  것이다. 최초의 것은 샌프란시스코  근교 프레몬트에
있는 도요타와 GM의 합작공장에서였다. 이  공장에서, 도요타 시스텀은 검소
하고 꼼꼼한 일본인 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란 그 당시까지 널리 퍼져  있던
고정관념이 깨어졌다.  프레몬트의 실험은 미국인들도, 만약 그들이 어떻게 하
는지 그 방법만 알게 된다면, 일본들 처럼 효율적으로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처음에 미국회사들은 그 교훈을 습득하는 것이 느렸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지
금 미국에 수많은 그들 자신의 자동차공장들을 갖고 있다. 일본인들은 데트로
이트에 가까이 가지 않고 있다. 이 미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에 가장 가까이
간 것이 오하이오 메리스빌에 있는 혼다 공장이다. 그 후 닛산과 도요타는 더
남쪽으로 내려와 테네시와 켄터키주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 자동차 노동조합
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미국에 16개 외국인 소유 자동차 공장들 가운에
다만 3개가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은, 미국의 일본인 자동
차 공장들은 1989년에 한 해 100만대를 생산하던 것이 지금은 250만대를 생산
하고 있다.

 

미국의 빅3는 그들의 방법을 바꾸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미국에서 생산
되는 일본자동차들이 수입관세를 무는 것도 아니고 자율규제를 하는 것도  아
니어서 데트로이트와 1대 1로 경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미국자동차
회사들은 제작기술상 일대 혁명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설사 아직도 일
본보다 덜 효율적인지는 몰라도,  오늘날의 미국 자동차 생산은  전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유럽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lean 매뉴팩츄링 기술
은 공장에서 다른 사업분야로, 그리고 자동차의 세계에서 다른 산업으로 번져
가고 있다. 다시 한번, 내일은 어제 보다 더 밝아질 것처럼 보인다.

 

 

4. 캐터필라의 복귀

 

 

 

만약 귀사의 주 경쟁회사가 강력한 일본회사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만
약 귀사의 중요 공장들이 자동차노조연합(UAW) 관리영역 안에 있다면, 그리
고 만약 귀사가 3년간 하루에 100만 달러씩 손해를 보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
인가?

 

이것은, 1987년 이전에 몇몇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목건설 중장비를 만들던 회
사인 캐터필라사가 직면하고 있던 문제들이었다. 이러한  일을 당한 캐터필라
사는 어떻게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파산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
했다.

 

그래서 캐터필라사의 경영진들은 노동조합과 대결하게 되었고 미국에서  가장
긴 파업이 일어났다. 즉 1991년부터 1995년 말까지의 기간에 쉬엄쉬엄 파업을
벌이는 간헐파업이었다.

 

올 3월에 회사는 마침내 노동조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7년
간 끌어온 노동조합과의 싸움을 타결, 임금과  작업환경을 개선해주기로 하고
파업자들은 다시 고용이 되고 있다.  4월에 캐터필라사는  190억 달러의 매출
액에 24억 달러의 세전익을 냈다고 보고했다.  5년 동안에 수익이 155% 치솟
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비록 판매의 거의 절반이 미국 밖에서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 이 회사는
브라질, 벨지움 및 일본에 공장을 가지고 있다 -, 캐터필라의 본 고향은 일리
노이주다. 미국에 있는 38개의 공장중 12개가 이 곳에 있다. 20년 전 사람들은
연기 때문에 일리노이주 오로라에 있는  공장의 웰딩 홀을 구경할 수가  없었
다. 오늘날 이 웰딩 홀은 완전히 깨끗해졌다. 두꺼운 철판에서 나오는  엄청난
슬랩들이 하이 볼테이지의 플라스마 건으로 조용하게 잘려져 나간다. 아주 정
교한 커팅을 하고 연기도 내뿜지 않는다.

 

공장에서 한 대의 대형 백 로우더(굴착기)를 만드는데 25일의 시간과 6천명의
손이 필요했다. 그것을 지금은 3천명이 6일 만에 만들어 낸다. 그들은  수퍼맨
들이 아니며, 방랑성이 있고 그렇게 서둘지 않는  타입의 미 중서부 사람들일
뿐이다. 단지 그들의 작업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더 이상 쇳조각들이 공장 여기 저기에  굴러다니지 않는다. 재고가 60% 가량
줄어들었으며, 공장 바닥은 깨끗하다. 가벼운 부품들은 컨베어 벨트가  조용히
옮겨주고, 무거운 하위 부품들은 유령같은  셀프 가이디드 비히클(SGV)이 옮
겨준다. 이러한 일들은 컴퓨터  터미널에 있는 한 사람의  오퍼레이터에 의해
처리되는데, 그는 장비의 일부분이 될 쇳덩이가 한 파트에서 연마되고 낫트구
멍들이 다 뚫려 다른 파트로 옮겨야 할 때가  되면 SGV를 동원해 그 쪽으로
옮긴다. 또 옮긴 곳에서는 47개의 로봇 가운데  하나가 그것을 다른 부품에다
가 용접시킨다.

 

SGV는 프로덕션 라인에서 매 접합점 때 마다 레이저 빔과 바 코드의 도움을
받아 그가 가야 할 길을 찾게 된다.  캐터필라는 10년 전에 오로라의 "미래공
장"을 만들기 위해 그러한 장비를 설치하는데 2억 5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오로라 공장에서의 대형장비 제작은  프로덕트 매니저인 봅 웽씨의  책임하에
이루어진다.  그는 또한 전 세계 캐터필라공장들의 대형장비 생산을 관장하고
있기도 하다. 캐터필라사가 개혁을 할 때까지는 그는 엔지니어링과 생산, 마케
팅 등을 담당하고 있는 동료들의 측면지원 없이는 그 직을 원할하게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혼자서 해내고 있다.

 

옛날에는 캐터필라사가 어떤 새로운 장비를 디자인하여 완성품을 만들어 낼때
까지는 10년도 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27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그 일을 해낸다. 엔지니어들은 세계 도처로 돌아다니면서 고객들을 만나 그들
의 장비에 개선점이 없는지를 체크하고 있다.  캐터필라 사람들은 "고객을 위
한 여행"이란 말을 쉽게 입밖에 내뱉을 줄을 모른다. 그러나 죽음에서 되살아
나온 캐터필라사의 성공은 현대 제조업에서 성공적인 글로벌 경쟁자가 될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가 될 것이다.

 

 

5. 공장은 섬이 아니다

 

 

 

매뉴팩츄링은 아주 단순한 작업으로 취급받곤 했다. 공장장이나 혹은  제작책
임자는 원부자재 공급자나 고객들에게 거의 신경을 써서는 안되었다. 그가 하
는 일 전부는 기계가 시간당 비율로 최대한으로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일단 생산이 "표준 수준"에 이르게 되면, 그는 의자에 느
긋하게 앉아서 쉴 수 있었다. 고객들의 요구조건이나 인도시기, 혹은 효율적
인 원부자재 구매같은 것은 구매부서나 판매부서에서 알아서 할 일이었다. 원
자재나 완성품이 쌓여서 여기저기 나뒹굴어도 그가 알 바가 아니었다.

 

지금은 어떤가? 1980년대는 lean 프로덕션과 right-first-time 퀄리티 매니지
먼트의 시대였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게임은 더욱 거칠어졌다. 고객들의
요구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들은 얼마간 개별적인 다양성에 맞는 기본제품이
나 특별한 서비스를 점점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 기업들은 생산과 델리버리
양면에서 그들의  요구에 어떻게  잘 부응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Deloitte
Consulting사가 전 세계 900개 제조업체를 상대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비록
기업들의 생산품이 전보다 훨씬 나아졌는데도 고객들의 불만이 점점 더 높아
졌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mass customisation" 안에 있다. 이것은 100가지든 심지어 1,000가
지든, 기본적으로 고객들의 특정한 요구에 근사한 제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
다. 일부 고객들은 물품을 작은 단위로하여 짧은 텀으로 인도해주기를 원하고
있고, 다른 고객들은 텀을 넓게 잡고  큰 단위로 인도해 주기를 원하기도  한
다.  물론 어느 방법이든 그들은 대량생산에서 얻을 수 있는 낮은 가격을 원
한다. 그러한 고객들을 만족시키는 어떤 챤스를 잡는 유일한 길은, 비단 공장
뿐 아니라 회사내 전 부서에 lean 프로ㄷ션 기술을 확산시키는 일이다.

 

공장은 이제 더 이상 원부자재 공급자들 및 고객들과 값을 깎느라 옥신각신
하는 골치아픈 업무에 초연할 수가 없게됐다. 시카고의 한 생산활동 전문 컨
설턴트회사 간부는 "약 15년 전부터  우리들은 디스트리뷰션과 매뉴팩츄링이
실제 물리적으로 분리될수 없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사실 그들
양 부서를 한 공급 체인의 일부로 보아야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새로운 방법은, 공장을 생산단계에서는 원부자재 공급회사에게, 수송 판매단
계에선 고객들에게 각각 연결시키는  일이다. "The Machine that Changed
the World"의 저자들인 다니엘 죤즈와 제임스 워맥은 2년 전에 lean 테크닉
에 관한 두 번째 저서 "Lean Thinking"(Simon & Schutter, $26)을 내놓았다.
그들은 영국의 한 수퍼메킷 체인인 Tesco의 선반에 놓인 캔 콜라가 그 자리
에 놓이기까지 필요한 여러 과정들을 조사했다. 그들은 그것을 "value chain"
이라 불렀다.

 

Cardiff 경영대학원의 한 연구팀은, 그 캔 콜라를 만드는데 필요한 일련의
행위들이 - 호주의 보크사이트 광산에서 시작하여, 여러 가지 용해작업을 거
쳐 캔 그 자체를 만들고, 라벨을 인쇄하고 콜라를 채워 어떤 가정의 냉장고에
놓일 때까지 - 총 319일 이상이 걸린다는 것이다. 콜라를 만드는 것 보다 캔
을 만드는 것이 훨씬 오래 걸린다. 그러나 319일 이상이라는 긴 시간 중 오직
3시간 만이 실제로 그 캔 콜라의 실질적인 가치를 살리는데 소요되었다. 나머
지는 저장과 수송에 시간을 다 보냈다.  최소한 14개 이상의 저장 랏트와 창
고가 개입되었다.

 

이처럼 분명히 낭비적인 업무추진 방법에 대한 비난은, 규모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긴 제작 여정에 필요한 거대한 그리고 유연성이 없는 기계가 받아야 한
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batch and queue" 시스텀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매뉴팩츄링 형태에 공통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러한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
서는, 기계가 계속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원자재와  부분품을 완충재고
로 엄청나게 쌓아두어야 한다. 콜라 바틀링 체인에서의 7개의 메인 링크 각각
이 자연적으로 그 자신의 자본회수를 최대화하려고 한다.

 

Tesco 분석의 목적은, 그러한 7개 링크의 한  두 개에서 이러한 규모의 경제
의 얼마가 핸들링이나 스토어링과 관련된 낭비로 큰 영향을 받는지 어떤지를
알아보려 하는 것이었다.  그 책이 나온 이후, Tesco사는 시간낭비를  줄이기
위해 공급조직을 재정비하는 일부 진보를 보였다고 저자의 한 사람인 다니엘
죤즈씨는 말했다. "이것을 하는  방법은 원자재 부문에서 시작해서는 안되고
상점에서 체인을 따라 역추적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조만간, 공
급자들의 일부가 더 작고 더 싼 기계를  사용하여 대량생산보다는 덜 경제적
인 방법을 사용할지도 모르며, 그럼에도 그것이 전체 경영코스트를 낮추게 될
지 모른다고 예상하고 있다.

 

 

 

<> 소프트웨어에 의한 요술

 

기업들이 그들의 업무영역의 차이에서 오는 벽을 허물므로써 그들은 여러 업
무부문이 동일한 정보의 흐름에 동참케 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매뉴팩츄
링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서의 일대 폭발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이것은  기업
들로 하여금 파이넌셜 데이터와 임금지불, 매뉴팩츄링, 재고기록, 구매정보 및
그외 여러  업무사항들과 통합하게  했다. 이것이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로 알려진 것인데, 공장 전체에 lean thinking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는 마법적인 툴 키트가 필요했다. 도요타에서 최근에 설립된 회사들에 이르기
까지 lean 기업으로 불릴 수 있는  회사들은 그들의 퍼스널 컴퓨터 시스텀에
ERP를 설치하느라 야단들이다.  여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들은  SAP, Baan,
및 PeopleSoft 및 오라클등이 공급하고 있다.

 

ERP는 모든 종류의 숫자를 계산해 내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기업
들은 그들의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리소스 이를테면, 인력, 돈,
기계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만약
회사의 여러 가지 상황들이 같은 소프트웨어에 기록되어 있다면, 모든 매뉴팩
츄링 오퍼레이션을 더 균형맞게 할 수 있을 것이며, 공장내의 작업흐름을 더
스므스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병목현상과 불균형이 재빨리 체크되어 시정될
수 있다.

 

기업들은, ERP 프로그램을 사기 위해 소프트웨어 회사들에게 1달러를 지불한
다면, 그들의 공장에 알맞은 프로그램 적용을 위해 매니지먼트  컨설턴트회사
들에겐 6달러를 지불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들 컨설턴트 회사들이
ERP에 대해 경건한 톤으로 얘기해 주는 것이 이상할 것 없다. 그러나 회사의
모든 정보를 하나의 대형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입력하는 것은 위험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귀사의 비지네스 플랜에 콘크리트를 쏟아붓는  것과 같
다."고 하바드 경영대학원의 데이비드 업톤교수는 말했다.

 

ERP는 군살을 더 빼고 더 민첩해 지려는 회사들에  대한 회답이 될 수도 있
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부분품과 원자재를  구매하는 방법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있다. 인터넷이 그 과정을 크게 부양시켜주고 있
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인터넷에 기반한 여러 개별 엑스트라넷을  사용함으로
써 기업들은 그들의 델리버리와 재고수준, 디자인 및 리드 타임을 개선시키기
위해 원부자재공급회사들과 더욱 직접적인 방법으로 거래할 수 있다. 더욱 잘
하려면 그들은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기본 부분품 공급에 대한 인터넷 입찰을
함으로써 더 싼 가격을 찾을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Automotive Network Exchange로  알려진 시스
텀인데, 이것은 미국의 빅3 자동차 회사들이 올 1월에 예비  테스트를 시작하
여 올 여름에 대부분의 그들의 공급회사들(원부자재 및 부분품)과 운용할 예
정으로 있다. 빅3는 내년에  이것을 유럽에까지 연장시킬 작정이다. 빅3에게
납품을 원하는 어떠한 회사도 온라인을 통해 일부  중대한 거래를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다른 산업들에서도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보잉은 이미 엑스트라넷을 통해 부품공급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제너럴  일렉
트릭은 전 제조업회사중에서 가장 큰 원부자재구매시스텀을 갖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수익을 올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조립회사들
과 그들의 공급회사들의 거래관계를 훨씬  쉽고 신속하게 해주고 있다. 웹을
통한 엔지니어링 디자인은  잦은 회합과 컨설테이션을 줄여줌으로써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수많은 자동차 부품을 입찰을 통해 사고 팔 수 있는 상
품으로 만듦으로써 웹은 시장을 더욱 개방적이고 경쟁적으로 만들었으며 거
래가격을 싸게 했다. 옛날방식의 매매는  시간도 많이 잡아먹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것이다. 새 방법은  현재 lean 프로듀서들이 바라고 있는 "mass
customisation"에게 문호를 활짝 개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어느것도, 기술이 제공하고 있는 기회를 잡을만큼 제조회사들이 충
분히 민첩해지지 않으면 바이트 가치의 차이점을 모르게 된다. 수년간에 걸친
다운사이징과 라잇사이징(rightsizing) 등을 하고 나면,  이것은 또 다른 무의
미한 조직표의 재작성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천만에"라고 Schonberger씨는
딱 잘라 대답하고 있다.

 

근는, 본질적인 것은 회사내 모든 사람들이 비지네스 그 자체를 어떻게 성공
적으로 운용하는 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명령이나 경
과에 따른 경영은, 보스들이 자기 휘하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
고 말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Schonberger씨
는, 21세기에는 제조업이 단지 고객들의 필요성에  충족하고, 여러 종류의 노
동자들이 업무에 직접 참여했다고 느낄수  있게, 그리고 그들이 전자  플랫터
(platters)에서 공급되는 사실과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진행되기
를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이 방법을  택하는 것일까?  별다른 방법이 아니고,
프로덕션을 고객위주로 주선함으로써 가능하다. 기업들은 그들의 새로운 글로
벌 공급체인의 더 단순한 부서업무를 위해서는 싼  노동력을 찾아야 할 것이
며, 또한 문지방까지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해 달라는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해
야 할 것이다.

 

 

6. 티우화나 삼각지대

 

 

 

1959년 어느날 저녁 멕시코 틴에이저 한 명이 남부 캘리포니아 산디에고에서 개
최된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 행사를 준비한 19살의 Enrique Mier y Teran은 그
날 저녁 참석한, 잘 나가는 미국 친구 가운데서 사업을 한다는 20대의 미국인 한
명을 만났다. "무슨 사업을 합니까?" "나는 pincurl(헤어핀 따위로 말아서 만든
고수머리) clip을 만드는 공장을 갖고있습니다." 라고 미국인은 대답했다. 때는
1950년대였다. 당시 Rita Hayworths와 같은 유명 배우의 유행을 따르려면 거대한
머리모양을 다루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Enrique는 큰 소리로 비웃었다. 기분
이 상한 그의 새 친구는 다음날 자기 공장을 방문하도록 초청했다.

 

그가 공장을 돌아보면서 미국친구에게 간단한 기계를 작동하여 플라스틱 클립을
조립하는 500명의 여직원에게 봉급을 얼마나 지불하는지 물어보았다. 1주일에
$65이라고 했다. "나는 1주일에 16멕시칸달라만 주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들을 구할 수 있다."라고 Enrique가 말했다 - 미국인이 지불하는 액수의 50분의
1이었다.

 

그래서 그 미국인은 Enrique에게 두대의 기계를 빌려주었다. 그는 티후아나국경
근처의 헛간에서 미국에 판매하기 위해 pincurl clip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국경지대의 자유무역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수입부품에 관세를 지불하지 않았다.
미국세관당국에는 재수입시 미국관세를 피하기 위해 "수선"을 위해 남쪽으로 간
다고 설득했다. 비즈니스가 번창하자 사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가 합류했다.

 

이렇게, 미국과 멕시코와의 국경지대에서 최초의 maquiladora공장중의 하나가
탄생한 것이다. 현재 Mier y Teran씨는 산업공단을 소유하고 세계의 다국적기업
들에게 그가 39년전 시작했던 것을 오늘날 어떻게 할 것인지 자문하는 컨설팅회
사도 갖고있다.

 

 

 

<> Maquiladora에서 4천개 기업활동, 부가가치 $70억 창출

 

현지인들에 의하면 maquiladora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국경이다. 지난해 5천 6백
만명의 사람들과 1백만대의 화물트럭이 멕시코에서 산디에고로 들어왔다(그들은
미국에서 멕시코로 가는 것은 계산하지 않는다). maquiladola 공장들의 거창하고
무질서한 확산은 이와같이 pincurl clip과 같은 것에서 성장해 온 것이다.

 

오늘날 4,000여개의 그러한 기업들은 멕시코에서 1백만명의 근로자를 고용하여
이들이 제조한 상품의 부가가치는 연간 $70억에 달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을 멕
시코에서 석유 다음 가는 2대 산업의 위치로 올려 놓고 있다. 이들중 절반가량은
섬유나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들이 여기에 있는 이유는 이 국경이 부자와
빈자의 세계가 손을 맞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임금의 1/4에 불과한 멕시코 임
금으로 거기서 경쟁우위의 법칙이 찬란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면으로 살펴보자. 신규공장 입지를 결정하는 대기업은 두가지 사항을 고려한
다. 첫째는 임금이 가장 싸야 한다. 둘째는 시장에 가까이 위치하여 시장에 신속
하게 대응하고 공급하는데 지출이 너무 많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멕시코 국경은
미국기업들에게 이와같은 두가지 바람직스런 일들을 훌륭하게 결합시켜준다.

 

물론 1959년 이래 상황은 변하였다. 생산이 극히 기초적인 pincurl clip시절 미
국기업은 반제품 섬유 또는 장난감을 보내 수백개의 소규모 멕시코 (싼임금으로
장시간 작업시키는) 노동자 착취공장에서 제조과정 중 노동력 집중부문을 마무리
하여 같은 날 해가 지기전에 미국으로 다시 보냈다.

 

비즈니스는 점점 더 정교하게 성장, 제조에 필요한 물자와 부품을 1년까지 무관
세로 수입할 수 있도록 합의가 이루어졌다. 멕시코 노동력으로 생산한 완제품이
멕시코에서 수출될 때 관세부과는 멕시코에서 부가가치가 발생된 분에 한하고 있
다. 초기의 진출업체 가운데는 미국 자동차 부품 메이커들이 있다. 이들은 값싸
고 손재주 좋은 멕시코 수작업 인력을 찾아 씨트카버를 조립하거나 현대식 자동차
에 들어가는 보든 전기와이어를 매듭짖게 했다.

 

 

 

<> 미국시장, 아시아투자, 티후아나생산의 삼각지대 형성

 

그 다음 미국의 자동차 조립업체들이 있다. 지난 수년동안 미국기업의 뒤를 이어
일본과 기타 아시아 국가들이 밀고 들어왔다. 미국인을 끌어드린 두가지 이유는
값싼 노동력과 비싸지 않은 수송코스트이다. 일본인들은 현지 근로자에게 지불하
는 임금이 동남아의 것이나 별차가 없거나 그 이상 높지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
다. 한국도 국내 임금이 상승하기 시작할 때 합류했다. 한.일 양국은 미국의 문턱
에서 비싸지 않게 제품을 생산하는 아이디어를 즐기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미국
시장, 아시아투자, 티후아나 생산이란 티후아나 삼각지대를 갖게 되었다.

 

Baja 켈리포니아의 멕시코 주 안에서 티후아나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은 maquila-
dora 최대 그룹의 중심지로 1,000여개 기업이 20만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다.
티후아나 동부 외곽지역에 새로운 공장과 주택개발이 확산되고 있다. 대종 제품은
가전제품, 특히 텔레비젼이다. 매년 1천 5백만대가 수출되는데 대부분의 목적지는
미국이다.

 

이 지역에서 가동중인 한국업체 가운데는 삼성이 있다. 삼성은 1988년 이래 거대
한 $20억 규모의 공장에서 카메라와 TV모니터를 제조하고 있다. 현대는 컨테이너
와 로리트렐일러를 제조하는 대규모 공장을 갖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단지를 둘
러싸고 있는 경비가 지키는 감시탑은 노동캠프와 유사한 불편감을 준다. 한국인들
의 관리스타일은 거칠어 보일 수 있다. 이에 대한 항의는 수차의 격렬한 노동분쟁
을 유발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은 소니, 히타치, 마쓰시타, 산요와 같은 가전기업이다. 산
요는 최대의 고용주로 4,500명을 고용하고 있다. 18개월전 SANYO NORTH AMERICA는
본부를 뉴욕에서 산디에고 외곽으로 옮겼다. MOTOHARU IUE회장은 국경의 미국쪽
산요의 조그만 공장 코너에 머물고 있다. 100명의 근로자들이 매일 800개의 미니
냉장고를 생산하고 있다. 650도로를 1마일 내려가면 멕시코인들이 같은 물건을 매
일 6천개 생산하고 있다. 임금은 미국공장 근로자들이 받는 것의 1/5정도이다. 미
국공장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게 보인다.

 

산요가 티후아나에서 생산하는 최대 제품은 TV이다. 연간 생산량은 3천 5백만대
고 이 보다 더 생산하는 기업은 소니로서 6백만대를 생산하고 있다. 산요의 IUE
회장은 과거 모든 TV생산작업을 미국내에서 했지만 이제는 아칸소에서 최종조립
작업만 하고 있다고 했다. 티후아나의 많은 보스들과 같이 그는 임금은 총생산코
스트의 10% 밖에 차지하지 않는 얼마되지 않은 몫을 점한다고 열심히 말하고 있
다. 티후아나의 실제적인 매력은 값산 자재와 부품이며 JUST-IN-TIME생산시스템
을 가동하기 용이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다소 앞뒤 말이 맞지 않는 소리
다. 왜냐하면 임금이 총 생산코스트에서 점하는 몫이 적다는 이유는 임금이 그만
큼 낮다는 것이다. 공급자가 부품을 값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도 임금이 낮은
것이 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 그러나 황혼이 깃들고 있다

 

산요의 텔레비젼 공장을 걸어가면서 보면 제품의 전자내장품인 "MOTHER BOARDS"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는 자동화 정도에 놀라게 된다. 줄줄이 늘어선 최신의 자동화
삽입기계는 조그만 작업헤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매시간 1만 6천개의 회로와 마
이크로 전자 디바이스를 움직인다. 아래층에는 아스피린 크기만한 정교한 물건들
을 손으로 채워넣고 있는 데 자동화가 스며들 수 있는 또다른 징조가 보인다. 한
라인에는 20명의 근로자가 있다. 또 다른 라인에서는 이전에는 18명의 근로자가
일하던 것을 기계가 하고 있는 데 단지 한명의 근로자가 모든 것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맨 끝에 자리잡고 있다.

 

maquiladoras의 심장부인 티후아나와 같은 곳에서 조차 보여주고 있는 것은 준엄
한 경제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순전히 저임금에 부가가치가 낮은
생산지역이었으나 이제는 보다 개발된 형태의 산업화로 이행하고 있다.

 

실업율은 1%를 상회하는 수준이다(이는 멕시코 전체의 공식적인 실업율인 4.5%와
비교된다). 근로자들이 이공장에서 저공장으로 좋은 조건을 찾아 뛰어다니기 때
문에 노동 매출은 15%를 상회한다. 산디에고대학교 경제학자들은 Baja California
근로자 12% 이상은 테크니션으로 분류된다고 했다. 산요의 멕시코관리자들은 점증
하는 자동화로 값비싼 설비를 설치하고 유지할 강력한 전문가집단이 요구된다고
말하고 있다. 기업간 임금경쟁은 아직도 각종 수당형태를 띠고 있지만 총 노동코
스트는 야금야금 기어오르고 있다.

 

티후아나지역이 처음 시작한 단순, 노동집약적인 작업은 (PROCTER & GAMBLE 사의
SOAP-POWDER COUPON분류작업, GENERAL MOTORS사의 WIRING LOOM작업 등) 오랜동안
멕시코의 보다 빈한한 지역이나 과테말라와 같은 기타 임금이 싼 중남미지역으로
흘러갔다.

 

압력은 점증하고 있다. 미국, 멕시코, 캐나다를 포함하는 북미자유무역지대(Nor-
th American Free-Trade Agreement:NAFTA)규정은 다수의 이런 공장들이 자유무역
지대내에서 원자재와 부품의 60-80%를 구입하도록 곧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렇
치 않으면 수입관세를 내게 된다. 미국과 캐나다는 이제 실제적으로 소비자 전자
제품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생산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NAFTA규정이 바뀌지 않는
한(그리고 아시아의 최근 경제문제로 발생한 동남아 화폐의 평가절하가 새로운
관세코스트를 제거해 버리지 않는 한) 산요와 같은 기업이 아시아에서 수입하는
텔레비젼 튜브와 기타 부품 코스트를 인상시킬 것이다. 텔레비젼 수상기의 격심
한 경쟁시장에서 이것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더구나 아시아통화의 평가절하는 maquiladoras에 대해서 아시아를 보다 더 날카
로운 경쟁상대로 만들었다. 그들의 저임금은 현재 도전을 받고 있다. 산요의 IUE
씨는 일본에 있는 동료들을 위해 이런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그는
생산을 아시아로 환류할 생각은 없다. 그 이유는 주로 공장과 미국내 시장간 거리
를 너무나 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큰 문제이다"라고 그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 5년이나 10년후 티후아나는 분명히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3억9천만명
의 인구와 생산규모가 $8.8조(일본의 2배)에 달하는 자유무역지대인 NAFTA는 서서
히 티후아나를 훨씬 더 발전된 경제로 만들 것이다. 멕시코의 국경지대는 이 이상
더 maquiladoras를 위한 본바닥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maquiladoras
가 제공한 교훈에 사의를 표명할 것이다. 따라서 세계의 다른 지역은 그들의 후계
자가 이익을 찾아 이주하는 곳이 될 것이다.

 

 

7. 홍콩의 유연성

 

 

 

사람들은, 홍콩이 중국의 관문에 자리잡고 있어 국제무역의 허브역할을 할 수
있다는 특정한 이점 때문에, 650만 홍콩 주민들이 홍콩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
한 곳의 하나로 키워 온 것으로 생각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분명해 뵈는
경제낙원 마져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두고 우려 섞인 논쟁을
벌이고 있다.

 

논쟁의 한쪽엔, 지난 해 "The Hong Kong Advantage"(Oxford University Press
20 파운드)를 썼으며, 서비스-이코노미 개념을  위해 싸우고 있는 저작 팀이
있다. 그들은 만약 홍콩이 금융과 비지네스서비스에 집중하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위한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공급기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한다면, 이 도
시국가의 번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팀을 이끌고 있는 하바드대
학 교수인 마이클 엔라이트씨는 아예 홍콩대학으로 옮겨 앉았다. 논쟁의 다른
한쪽엔, MIT에서 온 "Made by Hong Kong"(Oxford University Press, 20 파운드)
의 저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홍콩이 다만 자체의 제조업 솜씨를 유지하고 제조
업시장을 하이테크제품으로 승화시킬 때 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홍콩의 행운을 가져온 것은 제조업이었다. 중국 내전에서 1949년 공산당이
승리함에 따라 100만명 이상의 피난민들이 국경을 넘어 밀어닥쳤고, 영국 식
민지당국은 그들을 살리고 홍콩을 침몰시키지 않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했
다. 공장과 공동주택을 지을 수 있는 싼 땅이 그 응답이 되었다. 본토에서 도
망쳐 온 기업가들의 재능에 도움을 받아 구제작업이 시작됐다.

 

1950년대 초까지 홍콩은 티 셔츠와 플라스틱 조화 및 플립플로프 샌달을 온
세계에 수출했다. 큰 산업이래야 섬유산업이었지만  핸드백, 장난감, 시계 및
신발 또한 영세한 노동착취공장에서 쏟아져 나와 미국과 유럽에 수출되었다.
1961년까지 노동자들의 거의 절반이 홍콩 GDP의 4분의 1을 생산해 내는 제
조업에 고용되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들이 국민들의 해외탈출을 엄금하자 홍콩에서 노동력이 모
자라기 시작했다. 중국정부가 취한 역사적인 결정이 이 세계의 한 부분인 홍
콩의 제조업 방법을 변화시킨 것이다.

 

1978년애 중국은 홍콩 국경 인근지역을 포함하여 일부 해안지역을 서방 투자
가들에게 개방했다. 갑자기 홍콩의 기업가들이 새로 싼 노동력과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싼 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홍콩에서 운영되던 경공업 대부분이
국경을 넘어 중국 본토로 들어갔다. 1997년까지 홍콩의 일자리중 제조업이 차
지하는 비율은 거의 절반으로 떨어져 단지 15%밖에 되지 않았다. 제조업의
생산량 비율은 단지 8.8%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경넘어 진주강(Pearl River)
삼각주 근방에는 500만명의 중국인들이 현재 홍콩 기업가들 소유의 공장에
고용돼 있다. 현재 홍콩은 중국에 720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제조업이 거의 전
부를 차지하고 있다.

 

국경을 넘어 이룩한 사업들 중 두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알렌 웡씨는 세계어
린이용 컴퓨터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홍콩회사인 VTECH를 경영하고
있으며, 또한 무선전화도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의 연간 매출액은 10년 전에
1억 5천만 달러이던 것이 지금은 8억 달러로 성장했다. 1987년에 그는, 홍콩에
서는 싼 노동자들도 싼 공장부지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공장들을 광
동지역으로 옮겼다.

 

지금 그는 두 공장에 2만 2천명의  중국인 부녀자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그들
의 대부분은 중국 내륙에 있는  사천성에서 버스로 싣고왔다. (현지인의 임금
이 이미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부녀자들은 500위안($60)의 월급에 잠자리를
제공받고 있는데, 이것은 홍콩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주는 월급
6천 홍콩달러($770)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현재 웡씨는 태국에서 더 싼 노동
력을 스카우트하고 있다.

 

홍콩은 그의 회사 제품의 수출 통로이다.  최종시장과의 먼 거리가 그에게 그
렇게 문제가 안된다. 그의 회사 제품은  대부분 부모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위
해서 구매하는 것이어서 수요가 아주 안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약 2년 후
의 판매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홍콩기업들이 시장과의 먼
거리에 대해 그렇게 마음 편해하는 것은 아니다.

 

역시 중국 본토에 들어가 있는  Johnson Electric은 전자치솔과 CD  플레이어
및 많은 다른 제품들에 사용되는 소형  모타를 생산하고 있다. 메르세데스 승
용차 한 대가 평균 80개의 이런 종류의 마이크로 모터를  부착하고 있는데 썬
루프를 연다든가, 백밀러를 조정하든가 좌석을 움직인다든가 하는데 사용된다.

 

패트릭 왕씨(그의 아버지가 39년 전에 이 회사를 세웠다.)가 경영하고 있는 죤
슨사는 지난 10년 동안 규모가 3배로  커졌다. 현재는 20개국에서 한 해  26억
홍콩 달러($3억 3천만)치를 팔고  있다. 총 1만 3천명의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데, 그들 대부분은 죤슨 일렉트릭 시티에서 살고  있다. 이 시티는 홍콩에
서 50마일 떨어져 있는 진주강 삼각주에 있는데 두 개의 거대한 공장과  숙소,
식당 및 스포츠센터를 갖추고 있다. 일렉트릭 시티에서 일하고 있는  농촌출신
처녀들은 한 달에 500-600위안을 받고  음식과 숙소를 제공받고 있는데, 홍콩
의 비슷한 수준의 노동자가 받고 있는 것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들이
버는 돈중 대부분을 저축한다. 공장에 몇 년을 다니면, 그들은 좋은 신랑을 찾
는데 도움이되는 상당한 액수의 결혼 지참금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홍콩 자체에서 죤슨사는 단지 200명의 종업원만 두고 있는데, 대부분이  새 제
품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들이다. 그들은 팀을  만들어 일하며, 고객회사들과 가
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회사들은 죤슨이 어떤 특정
한 자동차에 사용될 모터 샘플을 가지고 자기 회사를 방문해주기를 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왕사장은, 10년 전에 디자인 변경을 요구한 고객들이 텔렉스로 2
주만에 그 회답을 받아보고는 대단히 기뻐했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날 그들은 2시간 이내 이메일로 회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왕사장은 그의 조직을 바꿨다. 거리의 문제가 매일 더 큰 문제가 되
고 있다. "컨테이너로 바다에서 2주를 보낸다는 것은  텔렉스 회신시대에도 고
약한 것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그는  멕시코의 마킬라도라에 새로운
공장을 세우고 있다. 이곳은 그의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의  문지방에 해당되는
곳이다.

 

거기서 그는 시간당 약 2달러의 임금을 지급하게 되는데, 중국에서 보다 약 3
배가 더 비싸다. 그러나 그것은 고객들이 원하는 대로 즉각 바꾸어 공급할 수
있는, 그의 주 시장(미국)의 문지방에 머물고 있는 대가인 것이다.

 

 

 

<> 분산 더욱 분산

 

간단히 말해, 홍콩에서 시작한 것 중 대부분이 중국 국경 너머로 옮겼고, 지금
은 더 먼 곳으로 옮겨갈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섬유와 장난감
산업에 적용된다. "The Hong Kong Advantage"의 공동저자중  하나인 데이비
드 도드웰은, 홍콩의 약 3만명의  의류업자및 장난감 제조업자들이 지금껏  두
지역(주로 홍콩과 중국)에서 사업을 해 왔는데, 현재  그들중 약 5분의 1이 홍
콩 이외의 두 장소에서 공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싼 노동력을
찾는 계속된 탐색이 이 다이에서포라(분산)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홍콩을 통해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파는  데는 두가지 이점이 있다. 섬유회
사들로선 수출을 하기 위해선 고색창연한 옛 Multifibre  Arrangement의 적용
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노동력이 중국보다  훨씬 더 비싼 선진국에서 섬유산
업을 보호하기 위해 아직도  적용하고 있는 법률이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과
유럽에의 수출 쿼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으로부터 어떤 제품을
수출하려는 어떤 사람도, 언젠가 미국의회가 중국에 대한 무역 최혜국 대우를
철회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무역 최헤국 대우는 현재 미국시장
에 대한 접근을 훨씬 용이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제조업자들
은 중국산을 위장시킬 수 있는 나라들에 적어도 자기들의 제품 일부를 중국으
로부터 갖다놓기 시작한 것이다.

 

Hong Kong Trade Development Council과 가족회사인 Li &  Fung의 회장인
빅토르 풍이 이러한 새로운  다이에서포라의 한 좋은  사례가 되겠다.  Li &
Fung은 동남아와 라틴 아메리카, 동 유럽, 카리비아 및 모리셔스에서 여러 가
지 부품을 생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총 23개국에 거미줄 처럼 제조업 망을 형
성하고 있다.

 

풍 회장은 이 시스텀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 지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
다. 한 외국기업이 그에게 적당한 제품 - 예를 들면, 볼 포인트 펜이나 간소복
-을 들고 찾아와서 현재 알려져 있는 것보다 더 싸게 이것을 만들 수 있는 곳
이 없느냐고 묻는다. 풍 회장의 사람들은 임금이  더 싼 곳을 찾아줄 뿐 아니
라 중국산 제품에 대한 무역제한으로부터 안전한 어떤 곳을 찾아준다.

 

간소복을 예로 들어보자. 원사는 한국산을 쓰고,  직조는 대만에서, 지퍼는 일
본 것을 사용하고, 옷의 부분품들은 중국에서, 그리고 최후의 바늘뜸은 인도네
시아 공장에서 하면 된다. "우리들이 하고자하는 것은 제조의 각 단계를 나누
어 각각 최적지를 찾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들은 제작의 각 팩터를 미리 예약
해 리드 타임을 3개월에서 5주로 앞당길 수 있다."고 풍 회장은 말했다.

 

Li & Fung사는 평균 200명을 고용하고 있는 7천 500개의 정규 공급회사 네트
워크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약 150만명의 노동자들이  어떤 의미에선 이
회사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풍 회장은 보통  그의 네트워크의 약 3분의 1 만
을 이용하고 있지만, 그 시스텀은 그에게 - 그리고 그의 고객들에게 - 뛰어난
수준의 유연성을 주고 있다. 이 시스텀의 허브는 홍콩에 있는 그의 팀인데, 그
는 이것을 "연기안나는 공장"이라고 부른다.  의류사업은 항상 기호변화에 가
장 신속한 대처를 해야하는 업종이다. 풍  회장은 지금은 이러한 경향이 다른
산업분야, 심지어 퍼스널 컴퓨터  같은 기기를 만드는  분야로 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도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최종제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부품들이 스무스하게 흘러갈 수 있게 하고,
또 재고를 경제적으로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풍 회장의 회사는 수년간 이
업무를 해 왔는데, -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이러한 업무를 스플라이 체인 메
니지먼트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이러한 회사들이 홍콩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제품개발과  엔지니어링의
중심적 기능  - 말하자면 매뉴팩츄링 스플라이 체인의 최전선 역할을 하고 있
는 것이다. 후미의 업무, 즉  마케팅과 디스트리뷰션 역시 홍콩에서  행해지고
있다. 비록 이러한 것은 공식적으로는 "서비스 활동"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그
들은 실제로 현대 lean 센스의 각도에서 보면 제조업의 일 부분인 것이다.

 

몇 년전 Swire 재벌에서 인수한 Thai Hana Group의 계열사인, Hana Technolo-
gies사는 옛날 방식으로 아직 홍콩을 활용하여 일부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이
회사의 공장은 마이크로칩을 플라스틱 패키지속에 넣어 컴퓨터나 기타 최종 제
품의 일부에 그것들을  결합시킨다. 그것은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그러나 정
교한 기계를 필요로하는 고도의  정밀작업이며, 때로는 전혀 새로운 작업이 필
요할 때도 있다.

 

일단 어떤  주어진 작업이 스무스하게 진행돼 나가면, 회사는 이 생산을 태국
이나 중국으로 이전한다. 이런 면에서 홍콩은 또 다른 의미로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홍콩은 개발과 초기 제품생산이란 어려
운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후 그 과정을 다른 사람들 손에 넘겨주는 것이
다.

 

 

 

<> 대만 역시 그것을 할 수 있다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쉬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
만사람들이 눈치 빠르게 그 내막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1950년대로 돌아가
면, 대만 역시 플라스틱 조화와 플립 플롭 샌달을 수출하여 경제를 꾸려가는
지역이었다. 경제가 게속 발전하여 대만정부는 국가 계획으로 섬의 해안지역
에 잇달아 인더스트리얼 파크를 조성해  나갔으며, 지역별로 석유화학하과 플
라스틱(처음엔 원자재 수입에서 시작하여), 시멘트, 철강 등으로 특화했다.

 

그러나 대만경제는 정부가 단계적으로 간섭을 줄임으로써  실질적으로 살아나
기 시작했다. 이제 관료들은, 비록 저렴한 공장부지의 사이언스 파크를 공급하
고 일부 세금감면을 해주고는 있지만, 더 이상 기업들의 제상에 감놔라 배놔
라 하지는 않는다.

 

이 바람에 에이서(Acer)같은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게 되었다. 에이서
는 대북에서 자동차로 2시간정도의 거리에 있는 Hsinchu 사이언스 파크에 주
공장을 갖고 있는 컴퓨터 회사인데, 현재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퍼스널 컴퓨터
회사로 성장했다. 이 회사의 Stan Shih회장은 오리알 좌판 행상으로 기업생활
을 시작했다.

 

1993년까지는 에이서의 모든  컴퓨터 주기판은 대만에서  조립되었다. 그러나
대만 임금이 월 평균 600달러 가까이 오르고 더욱이 구인란이 겹치자, 에이서
사는 수백명의 필리핀 노동자들을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어서 중국
광동성 Zhongshan과 필리핀의  수빅만에 공장을  설립했다. 지금은 멕시코에
다른 공장을 세웠으며, 말레이시아, 싱가폴, 인도네시아, 두바이 및 유럽에 조
립공장을 갖고 있다.

 

필리핀 공장에서의 생산성은 본국의 Hsinchu  사이언스 파크에서의 생산성에
비해 절반밖에 안되며, 중국공장에선 3분의 1밖에 안된다. 그러나 임금은 필리
핀의 경우가 대만보다 3분의 1 이하이며, 중국은 10분의 1  정도다. 그리고 다
른 계산에서, 에이서는 현재 영국, 프랑스 및 이태리에  조립공장을 가지고 있
다. 이들 나라에선 물론 비싸게 먹히지만, 그러나 물리적으로 시장과 가깝다는
이점이 있다. 즉 현지 요구에 즉각 부응할 수 있는 이점이 있는  것이다. Shih
회장은 디스트리뷰티드 매뉴팩츄링 네트워크에  대한 교훈을 알고 있는  것이
다.

 

앞으로 대만 Hsinchu에 있는  공장은 더 이상 확장하지  않고 해외 공장들만
확장할 에정이다. 이미 주기판의 3분의 2와 컴퓨터의 10분의 9가 해외에서 생
산되고 있다. 홍콩의 공장들처럼 Hsinchu에 있는 공장은  연구와 제품개발 및
신제품의 파일롯 프로덕션에 치중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변경시키고 있다. 아
마도 일부 고가제품들은 게속 대만에서  생산되겠지만, 대부분의 다른 제품들
은 일단 생산이 스무스하게 진행되면 해외로 나가게 될 것이다.

 

에이서가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기까지는  1976년 설립후 거의 20년이 걸렸
다. 다른 기업들은 그것을 더 신속하게 처리하고 있다. 약 10년 전 Kou Feng
Corporation과 Shamrock Technology는 대만에서 PC 모니터를 생산하기 시작
했다. 곧 대만이, 연간 150억 달러치의 세계 PC 모니터 시장의 60%를 차지하
게 되었다. 현재는 수요가 안정상태가 되고 수익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대
만에선 모니터 생산이 해가 지는 산업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러나 해는 바다
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임이 아주 싼 중국의 바다 속에서 떠
오르고 있는 것이다. Kuo Feng과 Shamrock 두 회사 모두  앞으로 12개월 이
내 그들의 생산시설을 중국으로 옮겨갈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은 10년 만에 이 부문에서 세계의 리더가 되었다가 지금 그것을  거의 포
기하고 있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Clydeside가  3 세대동안 세계 조선산업을
석권한 후 그 바톤을 한국과 일본에 넘기는데 사반세기가 걸렸다. 오늘날에는
지구가 더 빨리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8. 제조업시대 이후

 

 

 

  - 제조업과 서비스를 구분하던 옛날이어 안녕 -

 

 

 

 매뉴팩츄링의 구식 정의는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어떤 사전은  그것을
"물리적인 노동력과 기계에 의해 상품을 만드는 것"으로  플이하고 있다. 미국
의 1987년도  표준산업분류(Standard Industrial  Classification)편람은 공장을,
"원자재를 기계적 혹은 화학적으로 새 제품으로 변형시키는 체제"로 해석하고
있다.

 

이제 맥도널드 햄버거점에 가 줄을 서서, 카운터 아래에서 무엇이 행해지고 있
는지를 살펴보자. 몇몇 종업원들은 잘게 저며진 동그란 쇠고기 조각을 굽고 있
고, 다른 종업원들은 뜨거운 기름  솥에 포테이토 칩을 넣어  튀기고 있다. 또
다른 종업원들은 주문을 받고 마분지 상자에  그들의 동료들이 만든 생산품과
그 외 고객이 주문한 것을 담고 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서비스활동이라 부르겠는가 아니면 주문을 받아 쇠고기 제
품을 요리하는 생산활동이라 부르겠는가? 쿠킹 머신을  들어올렸다 내렸다 하
는, 상이한 업무의 열성적인 반복은, 자동차 조립라인  보다 더한 것을 떠올리
게 한다. 만약 챌리 채플린이 지금 살아있다면, 그는 아마도 패스트푸드점에서
"모던 타임즈"를 찍었을 것이다.

 

포드 자동차 회장인 알렉스 트롯트만은 4년전 그가 포드를 개혁하기로 작정을
했을 때 기동팀을 맥도널드에 보내어 어떻게  맥도널드가 꼭같은 햄버거를 온
세계에 공급할 수 있는 가를 배워오라고 지시했다. 포드도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고싶었던 것이다. 즉 지금까지 여러 지역에 나뉘어져 지역회사들의 집합체였
던 것을 바꾸어, 글로벌 베이스로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한 홍콩 섬
유회사 사장이 생각해 낸 글로벌 공급체인을 가진 회사로 만들고자 했다.

 

트로트만회장은, 앞으로 자동차 회사는 판매차량의 모양이나 엔진의 성능 따위
로 라이벌들과의 경쟁은 그렇게 심하지  않을 것이고, 그 대신 고객들이  차를
사서 타고 다니는 동안 고객들을 위해서 회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데 승
부가 날 것으로 오래 전부터 믿어왔다. 메르세데스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들도
여기에 동의하고 있다. 올  여름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메르세데스
신차인 2인승 Smart 타운카는 대형차 하나를 연간 베이스로 렌탈하면 수주동
안 렌탈 페키지의 일부로 제공될 예정이다.

 

 

 

<> 가정으로 오고 있는 산업혁명

 

꼭 자동차 만이 아니다.  IBM의 회복은 IBM이  컴퓨터 메이커이면서 동시에
서비스회사가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가능했다. mass-customization은 이 용어
가 말해 주듯 다른 많은 것에도 적용된다. 작업복 면바지인 진을 예를 들어보
자. 몇 년전 섬유산업게는, 본래 미국과 유럽에서  주로 입던 평범한 아이텀인
이 제품의 생산거점을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은  다른 여러 나라로 옮겼다. 그
러나 지금은 온 세상에 진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체
격치수를 위성을 통해 먼 타국의 공장에  보내어 만들어진 진을 입을 수도 있
다. 새로운 퀵 리스폰스(quick-response) 마킷은 공장들을 고객과 더욱 가까워
지게 하고 있다. 그래서 섬유산업은 지금 조금씩 미국과 유럽쪽에서도 살아나
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맞춤구두의 경우를 보자. 엣날에는  그러한 구두의 가격은 수제작업
이기 때문에 비쌌다. 그러나 지금은 새 기술의 결합과 lean 프로덕션  및 스플
라이-체인 경영으로 mass-customised 구두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태
리의 구두산업의 발전이 이를 잘 말 해 준다. 많은 제조품들의 경우 원자제를
어떤 물건으로 물리적으로 변형시키는 비용은 아마도  소매가격의 10분의 1에
불과할 것이다.

 

이것은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에겐 좋은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수년간 자동차
에 들어가는 부품, 진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부자재, 컴퓨터에 들어가는 서킷
보드 등의 제조가 임금이 낮은 후진국으로 이전돼 갔다. 다국적기업들은 심지
어 제법 복잡한 제품까지도 상대적으로 기술이 뒤떨어진 노동력을 가진 나라
에서 효율적으로 제작하는데 필요한 제작기술과 관리기술을 연마했다. 멕시코
의 티화나와 중국 광동성의 노동자들 임금이 너무 비싸지자, 공장은 멕시코,
중국 및 인도의 더 깊은 내륙지역으로 옮겨갔다. 만약 어느날 그러한 곳에서
마져 노동자들의 임금이 비싸지면 매뉴팩츄링이 더욱 자동화되어야 할 것이
다.

 

그러나 제조업이 옮겨가는 것은 꼭 지리적인 것 만이  아니다. 제조업의 성격
- 글자의 뜻 - 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부유한 소비자들도 당연히
물건을 사고있다. 그들은 더 정교한 것을 찾으며 대량생산으로 나온 제품에
만족을 못한다. 그들은 2주 걸려 태평양을 넘어서 오는 컨테이너 선박을 기다
리지 않는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제조업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글로벌 체인 가운데서 일부 고가품제조업이 미국과 유럽에  살
아 남을 수 있는 이유는 충분히 있다. mass customization의 시대에 제조업자
와 고객 및 공급자들 사이의 스무스하고 편안한 관계가 실리콘 벨리의 전자세
계에서 - 아니면 에밀리아 로마냐의 섬유 및 구두 세계에서,  혹은 바덴-부루
템버그와 바바리아의 자동차제조 세계에서, 그러한 곳에서 제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새로운 어드빈티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20년전 대서양 세계의 경제학자와 정치가들은 해가 지고 해가 떠오르는 산업
에 대해서 얘기했다. 즉 조선업은 사양화하고 전자산업은 부흥할 것이라고 했
다. 그런데 그들은 비록 일부 해가 떠오르는 산업도 임금이 낮은 곳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선진국들의 파멸이 가까워지는 것 처럼 보였다.

 

최근까지 그들은, 어떤 종류의 산업이든 제조업이 지구적인 구조가 된다는 것
을 미쳐 몰랐던 것이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은 항상 어디든 임금이 싼 곳으로
공급체인의 가장 낮은 부가가치(lowest-value-added)의 일부를 몰아가는 것이
다.  홍콩의 테니스 코트는 매주 토요일이면 땀을 뻘뻘 흘리는 유럽과 미국인
들로 만원을 이루는데, 그들은 꼴로냐나  시카고에 있는 다국적기업들의 직원
들로서 그들의 회사가 디자인한 소형장치들을 가장 싼 가격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을 찾아 이 곳에 와서 근무하며 짬을 내어 스포츠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농업이 이미  많은 나라에서 그러했듯이, 유
럽과 미국에서의 제조업이 거의 완전히 쇠퇴해 질 것이라는 비관론자들의  주
장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계를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
은 이미 구식이 되었다. 새로운 기술이 소개한 새로운 의미의 세계에서는, "서
비스 업"이라 불리곤 하는  많은 것이 "매뉴팩츄링"이라 불려지곤  하는 것과
서로 뒤얽혀 일부 같은 의미가 되고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토털 비즈니스의 실질적 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을 실
행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대가를 가져다 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이 할 수 있음으로 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세계의 제조업자들이 통합
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공급체인 외에는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