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데일리 메일 기자가 본 한일합방…'탓의 역사학'은 그만 .매켄지(Frederick Arthur McKenzie)의 "대한제국의 비극"(New York, 1908)과 "한국의 독립 운동"(London, 1919).
우리의 진심이야 어떻든 간에 우리는 조국을 위해서 죽을 수 있 다는 말을 거침없이 한다. 그런데 한국의 현대사, 특히 악연의 한 일관계사를 돌아보면 그 말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알 수 있다. 왜냐 하면 우리는 남들이 한국을 사랑한 것만큼도 우리의 조국을 사랑하 지 않은점도 있고 또 역설적으로는 자기의 조국보다도 한국을 더 사랑했던 이방인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매켄지 가 바로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런던 '데일리 메일'지의 민완 기자였던 매켄지는 본사로부터 러 일전쟁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고 한국에 왔으나 그는 전쟁의 종군 보다는 무너져 가는 한 유서 깊은 국가 한국에 대하여 깊은 연민에 빠지게된다. 그는 결국 자기의 본연의 업무를 버리고 왜 한국은 멸 망해 가고 있는가, 이토록 순박하고 선량한 국가가 제국주의의 먹 이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취재한 결과 를 한 권의 책으로 낸 것이 바로 이 '대한제국의 비극'이다. 이 책 에서 그는 개항으로부터 을미사변, 아관파천, 을사조약과 정미7조 약의 체결에 이르는 격동의 40년을 다루고 있다.
한국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연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919년 에 한국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재차 한국을 찾아온 그는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자기의 책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 권 의 책을 쓰는데 이것이 곧 "한국의 독립운동"이다. 이 책에서 필자 는 합병과 105인 사건의 참상, 그리고 3·1운동의 진상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장래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일본과 한국은 각기 어 떤 길로가는 것이 정도인가를 충고하고 있다. 당시 영국의 상·하원에서 영국의 대일 정책을 논의할 때면, '당 신은 "대한제국의 비극"이라는 책을 읽어 본 적도 없습니까?'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라고 하니까 이 책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한일관계사를 연구하는 기존 역사학의 가장 큰 맹점의 하나는 아마도 스스로에게 망국의 책임을 묻지 않는 비겁함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잘못이 없고 일본은 나쁜 나라라는 식으로 일본을 정죄 하는 데 우리는 현대사 연구의 대부분의 노력을 경주했다. 이런 식 의 '탓의 역사학'에안주하는 한 그러한 비극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대단히 위험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매켄지의 글은 먼저 이 망국의 책임을 묻는 데에서부터 그의 글을 시작하고 있다.
매켄지의 망국의 논리는 단적으로 지배 계급의 부패와 무능이지 결코 일본만을 탓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멸망은 어쩌면 필연이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기본 적인 논지였다.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적개심을 이 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러한 논리만으로써는 망국이 설명 되지 않는다. 그의 말을 빌리면, '아마도 이책은 자기 민족의 고통 에 대해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진 한국의 젊은이들에 의해 읽힐 것 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속에 가득찰 수밖에 없는 그 응어리를 잘 이해한다. 아마도 내 동포가 그들처럼 취급받았더라면 나도 그들과 꼭 같은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독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더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라고 충고한다. 이제 겨우 14∼16세가 된 소년 의병들은 몸에 다섯 군데나 총상 을 입고도 자기의 조국을 구하겠다는 의지에 충일해 있었다. 그들 의 무기란 전근대 사회에서 쓰던 사냥총이었으며 보급은 현지 주민 들이 몰래 제공해 주는 열악한 식량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부상을 치료할 의약품도 없었다. 다만 조국을 건지겠다는 일념에서 맨몸으 로 따라다니는 의병들도 있었다. 백성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소문이 나면 혹시나 일본의 만행을 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교회에 다니지도 않으면서 집앞 대문에 십자가를 그려 넣기도 했고 적십자 기를 달아 놓기도 했다. 그는 의병과 일본군 양쪽으로부터 날아오 는 유탄 속에서 그들을 면담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의 지배 계급은 사태를 너무 안일하고도 무 력하게 대처했다. 그들에게는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교활함(교지) 를 당할 지혜가 없었고, 데라우치 마사다케 총독의 냉혈함을 당할 용기가 없었고, 하세가와 요시미치 사령관의 철권에 대항할 무기를 마련해 두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국가관이나 가치관이라는 면에서도 일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순간에 도 이 나라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통곡하고 자살하 는 비분강개는 있었어도 총을 들고 조국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미 쳐 못하고 있었으며, 국가를 구할 전략도 없었다. 양반들은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운명을 걱정하기에 앞서 족보가 불탄 것을 애통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매켄지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매켄지는 결국 한국 사람 자신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다는 것 이 현실적으로 무망하다고 판단하게 되었고 이것을 국제적으로 호 소하기로 결심했다. '이 세상의 어느 국가도 자신의 힘으로 제국주 의로부터 독립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은 사라졌다'는 세이뇨보(C Seignovos)의 말처럼, 매켄지의 그러한 판단은 옳은 것이었을는지 도 모른다. 그가 세계 열강에 던지는 질문은 '너희가 일본을 아느 냐?'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일본의 부도덕을 지탄하고 있다. 의병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남편에게 총을 겨눈 채 그 아내를 윤간하고, 어린 아이를 살해하고, 한국의 그 순진 무구한 백성들을 표적으로 내기 사격을 했다는 일본군의 만행을 들은 그는 이 일만은 세계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다른 나라 같았으면 벌써 멸망했을 실수를 치르고서도 끈 질기게 살아남는 저력이 있는 민족이라고 매켄지는 생각했다. 그 저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군벌 위주의 맹목적 애국심과 서양 문물의 신속한 수용, 그리고 지배 계급의 용의주도한 책략이라는 것이다. 왜 일본은 한 국에 대하여 이토록 표독스러운가? 그것은 내재적 모순을 밖으로 수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매켄지의 판단이었다. 일본 은 기본적으로 부존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다. 게다가 도서 민족으 로서의 폐쇄공포증은 늘 공격성을 유발했다. 시대적으로는 미발달 된 초기자본주의의 모순을 국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지난날 장검을 차고 거리를 횡행하며 무례한평민을 아무 런 형사책임도 없이 처단할 수 있었던 특권도 사라졌고 은급을 받 고 충성을 맹세할 수 있는 영주도 사라졌다. 지난날 같으면 키모노 를 입고 무릎을 꿇은 채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지금 공장에서 일급 몇 펜스의 고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무사들의 만성 적 불만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조선을 정벌하는 길밖에 없 었기에 일본은 더욱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이렇게 용의주 도하게 조선 병합을 획책하고 있을 때 한국의 지도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매켄지는 묻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멸망한 한국 민족은 독립을 얻기 위해서 장차 무 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이에 대하여 네 가지 측면에서 권 고하고 있다.
첫째로는 한국인에게 대한 충고인데, 한국인은 낡은 화승총 몇 자루로써 독립이 해결되리라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한국인들은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경멸받을 행위를 스스로 멈춤으로 써 '당신들은 식민지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열등한 나라'라는 일본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는것이 독립의 첫걸음이라고 그는 말한다. 무속적인 행사에 쓰이는 엄청난 낭비를 국력에로 전환해야 하며, 위정자는 솔선하여 국민들이 조국을 사랑하고 조국에 대해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희망의 정치를 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 들이 무한한 수탈 앞에서 삶의 의지를 상실한 것이 망국의 원인이 라고 그는 지적하고 있다. 둘째로 그는 세계가 한국의 독립을 돕기 위해서는 미국과 영국 과 캐나다의 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천황 숭 배라는 일본 특유의 군국주의 앞에 동방의 모범적 교회가 탄압 받 는 것을 용서해서도 안되기때문이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도 이는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 서구라파가 할 수 있는 도움 은 '우리가 당신 곁에 있다'는 것을 한국인에게 알려 주는 일이라 고 매켄지는 호소하고 있다. 셋째로 그는 세계 열강에게 일본의 팽창을 좌시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조선 정복에 성공한 일본은 결국 만주에 서 전쟁을 일으켜 이를 침탈하게 될 것이고, 여기에서 성공하면 향 후 '30년이내에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참혹한 전쟁의 주역이 될 것' 이라고 매켄지는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매켄지가 이 말을 한 때가 1919년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 요가 있다. 넷째로 그는 일본의 조선 정벌은 일본에게도 불행한 일이었다고 충고한다. 일본의 내재적 모순은 조선의 침탈로서 극복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그는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이 주변 국가로부 터 존경과 사랑을 받도록 노력하는 것이 침략을 통한 소득보다 더 값진 행복을 일본에게 안겨 주리라는 말로 그는 이 책을 마치고 있 다. 이것이 백년 전의 충고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하기에 우리를 더욱 찬탄케 한다. (신복룡/ 건국대 정외과 교수) | ||||||||||
주간조선1999.08.12 /156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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