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放前 雜誌記事 모음

一莖草, 海村의 夕陽 - 한용운

이강기 2015. 9. 28. 09:55

一莖草

    한용운
     
나는 소나무 아래서 놀다가
지팡이로 한 줄기 풀을 부질렀다.
풀은 아무 반항도 원망도 없다.
나는 부러진 풀을 슬퍼한다.
부러진 풀은 영원히 이어지지 못한다.

내가 지팡이로 부질르지 아니하였으면
풀은 맑은 바람에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은(銀) 같은 이슬에 잠자고 키스도 하리라.

모진 바람과 찬서리에 꺾이는 것이야 어찌하랴마는
나로 말미암아 꺾어진 풀을 슬퍼한다.

사람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한다.
인인지사(仁人志士) 영웅호걸의 죽음을 더욱 슬퍼한다.
나는 죽으면서도 아무 반항도 원망도 없는 한 줄기 풀을 슬퍼한다.
 
                                (1936년 4월3일, 조선일보)


海村의 夕陽
 
 
석양(夕陽)은 갈대 지붕을 비춰서
작은 언덕 잔디밭에 반사되었다.
산기슭 길로 물 길러 가는 처녀는
한손으로 부신 눈을 가리고 동동걸음을 친다.
반쯤 찡그린 그의 이마엔 저녁 늦은 근심이 가늘게 눈썹을 눌렀다.

낚싯대를 메고 돌아오는 어부는
갯가에 선 노파를 만나서
멀리 오는 돛대를 기리키면서
무슨 말인지 그칠 줄을 모른다.

서천(西天)에 지는 해는
바다의 고별 음악(告別音樂)을 들으면서
짐짓 머뭇머뭇한다.

                                (1936년 4월2일, 조선일보)